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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들의 복장과 의미

愚悟 2008. 1. 8. 23:02

성직자들의 복장과 의미

지구상의 모든 종교의 성직자들은 자신의 종교의 사상과 가치를 잘 나타내는 복장이 있다.

각 종교별 성직자들의 복장에는 그 종교가 지향하는 정신이 그대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성직자들에게 사제복은 ‘입을 수 있는 경전’이자, 끊임없이 자신을 돌보게 하는 ‘단추 달린 거울’이라고도 한다.

불교 즉, 조계종 스님들이 입는 황토 물들인 가사의 의미는 ‘무소유’를 의미하고, 천주교의 <로만칼라>는 ‘주의 뜻대로 끌려가다.’는 뜻이라고 한다. 또 원불교의 교무님들이 입는 옷은 ‘형식보다 본질을 붙들라’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신교 성직자들은 특정한 복장이 없다. 자유롭게 입는 이유는 ‘계급과 차별을 타파, 하기 위하여 자유롭게 입는다고 한다.

얼마 전 조계종 원로회의에서 ‘비구니 스님의 가사’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지난 해 10월 한국불교사상 처음으로 명사(대종사)법계를 받은 여섯 명의 비구니 스님에게 ‘25조 가사’를 내릴 지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의 모든 종교가 양성평등을 이루지 못하고 남성들만 우월적 지위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 종교의 이념과 가치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그 누구도 시정하려고 하지 않으며, 종교 내 여성들 또한 침묵하고 있다.

불교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비구와 비구니의 차별은 엄청나다는 것을 ‘비구니 8조법’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한 관계로 비구니에게 ‘25조 가사’를 내린다는 것은 남성 즉 비구의 존엄성에 대한 비구니의 도전이라 여겼을 것이므로 이번 격론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격론 끝에 비구니 스님에게도 ‘25조 가사’가 내려졌다.

그러면 ‘25조 가사’가 무엇이기에 비구는 되고 비구니는 안 된다고 떠드는 것일까?

‘25조 가사’란 25조각의 천 조각을 붙여서 누더기처럼 기운 가사다. 승가에서는 천 조각이 많을수록 높은 지위를 상징하므로 승철 스님 같은 분은 누더기 같은 가사를 입고 계셨다.

부처님이 처음 입은 가사는 분소의糞掃衣라고 불렀다고 한다. 즉 “똥이 묻어 버린 천으로  만든 옷”이라고 했다. 이런 정신을 이어받은 인도의 승려들은 시신을 쌌던 천이나 버려진 천 조각을 기워서 가사를 만들어 입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누더기 가사를 잘못 이해하여 스님들의 검소한 생활을 느끼곤 하였지만 알고 보면 스님들의 서열을 나타내는 계급장인 것이다. 그래서 출가한 지 오래된 스님의 가사일수록 누더기처럼 기운 천 조각이 많은 것이다.

현재 조계종의 품계는 7조 가사부터 25조 가사까지 있다. 그런데 가사의 색깔에는 더욱 의미 있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조계종 승려의 가사는‘괴색壞色’이다. 원래 색이 아니라는 뜻의 색이다. 부처님 가사나 인도의 승려들의 가사들은 황토 물에 빨아서 똥을 씻어 내거나 시신의 때를 벗겨내면서 황토 물을 들였다고 한다. 즉, 이러한 행위는 내가 가진 모든 상相을  다 버리는 의미를 나타내며 그 색이 괴색이라고 한다. 즉, 무아無我와 무소유無所有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태고종의 가사는 붉은 색이다, 이 붉은 색은 부처님의 붉은 피를 의미하고, 피가 나도록 수행에 정진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에선 가사를 적혈색의赤血色衣 즉, 붉은 핏빛의 옷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면 천주교 신부님들의 옷은 왜 검정색일까? 검정색은 오방색 중에서 죽음을 의미한다. ‘수단’이라고 부르는 검정옷은 신부님들에겐 상복喪服이라고 한다. 신부는 그 옷을 입고서 자신의 죽음을 향해 가는 것으로, 세속에서의 죽음을 뜻하며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포기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러나 추기경의 붉은 수단은 ‘순교자의 피’를 의미하고, 교황의 흰 수단은 ‘하느님의 대리자’를 나타낸다고 한다.

또 신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만칼라’ 앞에 트인 네모난 모양은 ‘내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소서’란 간절한 기도가 담긴 뜻으로 신부들 사이에선 개 목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반면 개신교의 목사들은 복장이 자유롭다. 간혹 설교 때 가운을 입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자유복장이다, 이것은 “청교도 전통에선 사제라는 중간 매개 단계가 없다. 만인이 제사장이란 입장이란 의미라고 한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일대일 관계라는 뜻이다. 그래서 목회자도 성도 중 한 사람일 뿐이므로 굳이 사제복이란 유니폼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고 한다. 이 말은 결국 형식과 계급, 차별에 대한 타파를 의미한다고 한다.

민족종교의 성격을 띠고 있는 원불교 교무님들의 복장은 초기에는 파격이었다. 긴 옷고름을 짧게 잘랐고, 머리도 쪽지는 대신 짧게 말아서 올렸다. 이러한 것은 생활화와 간결화를 중시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원불교의 복장은 ‘불상을 일원상으로(동그라미) 기다란 가사를 목에 거는 간결한 법락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복장은 형식을 붙들지 말고 본질로 바로 들라는 원불교의 가르침이 녹아있다고 한다.

이렇게 모든 종교들이 나름대로 종교적 의미와 지향을 담은 복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무교는 통일된 복장이 없다. 그러다 보니 민족종교의 사제라는 의식이나 자긍심을 갖기에 스스로 부족함을 느낀다.

자유로운 복장은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사제라는 특수한 신분을 숨길 수 도 있어 사제라는 신분을 망각할 수도 있다. 그 결과 일반인들 보다 더 못된 짓거리를 하여 지탄받는 사제는 무교인이나 목사들이 많은 편이다. 이렇게 성직자들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상생활에서 스스로의 언행을 규제하는 일정한 복장이 없는 것 또한 크게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우리 무교인도 민족종교의 사제로서 일정한 복장으로 통일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의 글을 발췌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