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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여곤과 고사

愚悟 2009. 5. 27. 12:03

중여곤과 고사

조선이라는 국호가 탄생하게 한 중여곤

중여곤을 모시는 제사

 

 

우리는 무슨 개업을 하거나, 무슨 일을 시작하려면 사업이 잘 되라고, 자동차는 교통사고 없이 잘 타고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고 누구에게 비는 건지도 모르고 고사를 지내고 있다. 차를 새로 샀으면 차 고사, 개업을 하여도 고사를 지낸다. 또한 이사를 하여도 터주 신에게 고사를 지내고, 공사를 하기 전에도 터 고사를 지낸다.

 

우리 생활에서 고사를 안 지내는 데를 찾기란 어렵다. 물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외지만 누구나 고사는 한 번씩 지냈을 것이다. 심지어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고가의 새로운 기계를 구입할 때면 어김없이 고사를 지낸다.

 

특히 10월은 상달이라고 하여 일반인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고사를 지내고 각 대학교 학생회에서도 경쟁적으로 고사들을 지내고 있다. 얼마 전 히딩크 축구감독도 고사를 지냈다. 그러면 우리는 고집스럽게 왜 고사를 지내고 있으며, 고사에 실과 북어 그리고 시루떡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설명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고사를 지내는 무당들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

 

<태백일사/삼환관경본기>에 보면 「웅녀군(熊女君)의 후손으로서 여(黎)라고 하는 이가 있었는데, 처음으로 단허(檀墟)에 책봉 받아 왕검이 되매, 덕을 심어 백성을 사랑하고 영토를 크게 넓히니 여러 곳의 왕검들이 나와 특산물을 바치며 이로써 귀화하는 자가 천여 명을 헤아렸다.

 

뒤에 460년이 지나 신인 왕검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크게 백성의 신망을 얻어 비왕(裨王)이 되었다. 섭정하신지 24년에 웅씨의 왕은 붕어하시니 왕검은 마침내 왕위를 대신하여 구한을 통일하고 나라를 여시어 조선이라 하시고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진한은 스스로 천왕께서 다스리고 도읍을 아사달에 세우고 나라를 여시니 조선이라 하시고 이를 일세 단군이라 한다.」란 구절이 있다.

 

여기서 여(黎)란 사람이 바로 중여곤(衆艅鯀)이다. 그러니 중여곤이 단허(壇墟:옛날 제사 터)에 책봉 받아 왕검이 되었다는 것은 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460년 후에 우리가 말하는 단군왕검이 탄생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이 기록에서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곤을 치수에 실패한 영웅으로, 홍수를 다스리지 못하였기에 사위인 우(禹) 임금에게 처형당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니 중국 역사에서 동이족에 대한 왜곡이 얼마나 심한가를 알 수가 있다.

여(艅)는 즉 중여곤(衆艅鯀)을 말하는데 곤의 조상은 한웅천왕시대의 농관을 지냈던 고시(高矢)에서 시작된다.

 

고시는 우리가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고시례’ 하는 분이다. 신농이 고시에서 나오고 신농에게서 8대 후손인 유망이 나온다. 유망은 전욱고양과 대계를 낳는다. 전욱고양은 아들 둘을 두었으나 모두 일찍 죽어 대계(大雞)의 자손인 곤(鯀)이 전욱고양의 셋째아들로 입적하여 전욱고양의 제위(帝位)를 물려받을 장자의 자리에 앉는다. 그 자리가 역사상 최초로 나라에서 임명한 제관의 자리였다. 그를 중여곤이라고 하고 곤에게서 조선(朝鮮)이라는 문자가 나왔다고 문자학회에서는 말한다.

 

김대성이 쓴 <금문의 비밀>에서는 <곤>은 당시 전욱고양의 양자 즉 대부로 들어와 사당의 제사를 총괄하는 대례관의 관직을 맡자 물고기 토템의‘ 어(魚)’자는 그대로 두고 ‘곤(鯀)’자의 오른쪽에 있는 ‘계(系)’ 대신에 신농계인 양족의 대부라는 표시로 ‘양(羊)’자를 써서 ‘선 (鮮)’이라는 글자를 만들다. 이렇게 하여 전욱고양 때 만들어진‘조(朝)’자와 결합하여 비로소 조선이라는 글자가 생겨났다고 한다.

 

또 그는 중여 라는 말은 삼신을 받드는 제사를 모신다는 뜻도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여(艅)는 ‘짐이 곧 나라’, ‘짐이 곧 나’라는 천자 자신을 칭하는 짐(朕)으로 변한다. 짐은 곧 사당에 차를 올리는 제주(祭主)라는 뜻이다. 라고 말한다.

 

장자가 쓴 <소요유>에서 곤은 크기를 알 수 없는 북방의 큰 물고기로 비유하였다. 또한 「곤의 크기는 몇 천 리 인지 알 수 없고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그 이름이 붕(鵬)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곤의 덕이 얼마나 크고 깊다는 것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또한 장자에 따르면, 곤은 우주의 북극에 산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고사를 지낼 때 바치는 시루떡과 북어와 실이 다 나왔다.

 

먼저 시루떡의 떡시루는 나라를 뜻하고 그 안에 찐 떡은 임금의 큰 덕(德)을 나타내며 고물로 팥을 사용한 것은 붉은 기운은 치우천왕을 상징하는 뜻으로 벽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고물이라는 말도 곤이 제사를 주관하면서 팥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도 있다. 고물은 즉 곤의 물, 곤물이 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시루떡을 하여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것 자체가 덕을 베푸는 것이요 곤의 큰 덕을 널리 알리고 되새기는 것이다.

또 곤(鯀)자를 파자하면 고기 어(魚)자와 실 사(糸)로 나누어진다. 고기 어(魚)자의 의미는 북방의 큰 물고기로 북극에 산다고 하였으니 추운 바다에 사는 생선이다. 오행 중 북방은 수(水)를 나타내는 것으로 즉 바다를 의미한다. 바다는 음(陰)을 나타내며 바다 생선 중 찬물에 사는 음기(陰氣)가 가장 센 큰 고기는 북어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화상을 당한 환자에게는 북어를 이용한 치료를 하고 있다.

 

그리고 사(糸)는 그대로 실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의 무명실이 아니라 뉘조가 처음으로 누에를 쳐서 만들어 낸 명주실일 것이다.

이렇게 고사를 지낼 때 북어와 실을 올리는 것은 중여곤을 상징하는 것이며 시루떡은 나라의 덕을 나타내는 것으로 중여곤의 큰 덕을 기리는 것이 고사다. 이 고사는 아마 단군왕검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시면서 처음으로 조상인 중여곤의 큰 덕을 배우고자 지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고사는 처음에는 곤사라고 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고사로 변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왜, 곤에 대한 제사를 지낼 때는 제(祭)라 하지 않고 사(祀)자를 쓰는 것일까? 원래 신농시대에서는 장자(長子)만이 하늘에 제사를 올릴 수 있고 이것을 제(祭)라 하였다.

 

이 제(祭)는 장자가 즉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뜻이다. 장자 이외에는 땅, 즉 지신에게 제사를 하였는데 이것을 사(祀)라고 하였으며 제후들이 지신(地神)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임금들이 천제를 올리지 못하고 사직에 제를 올리다가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고 난 뒤 방구단(方丘壇)에 천제를 올린 것을 알 수 가 있다. ‘사(祀)’는 정실의 아들이 아닌 사람, 또는 차남이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를 가진 문자이다. 그러니 전욱고양의 적자가 아닌 ‘곤’이 제(祭)자를 사용하지 못하고 ‘사(祀)’자를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곤이 땅에 드리는 제사라는 의미로 고사가 되었다.

 

그러면 우리가 흔희 말하는 제사(祭祀)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궁금해진다.

제사는 바로 장자(長子)가 지내는 ‘제’와 차남을 비롯한 방계혈족이 지내는 ‘사’가 합하여 제사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형제가 모여서 종가 집에서 제를 드리는 것을 제사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단군왕검은 배달나라를 인수한 지 22년 후인 경인(庚寅) 23년(BC 2311)에 발해만 현덕부에서 그의 조상인 중여곤에게 곤사(鯀祀)를 올리면서 조선을 출발시켰다. 이 때 절을 어떻게 하였을까? 단군조선 때는 나라에서 정한 삼육구배(三六九拜)라는 절하는 예법이 있었다. 임금은 여기에 1배를 더하여 삼육대례(三六大禮)를 하였다. 그러니 고사를 지낼 때는 삼육구배를 하여야 한다.

 

이 절은 삼배(三拜)를 초헌배로 하여 아헌배가 육배(六拜), 종헌배가 구배(九拜)이다. 요즈음 절하고 있는 두 번 반, 세 번, 네 번을 하는 절의 법은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절의 예법이 아니라 유교 또는 불교의식으로 하는 절의 예법이다. 그러니 우리가 행하고 있는 중요한 전통의식 재현에서는 삼육구배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조선의 인조대왕이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삼육대례로 용서를 구하였다. 청나라가 삼육대례를 올리라고 한 것은 조선이 우리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명나라의 속국으로 그들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같은 동이족으로서 우리의 정신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삼전도의 치욕이라고 부르고 있다.

 

중여곤은 단군왕검의 조상이 되며 또한 조선(朝鮮)이라는 문자를 탄생케 한 사람이라고 한다. 또 <산해경>을 보면 곤은 백마(白馬)라고 하였다. 이 말은 곤이 마가의 우두머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우리 무교에서 섬기는 백마신장은 마가의 우두머리인 곤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고사를 지낼 때 왜 하필이면 돼지머리를 사용하는가? 그것은 아직 정확하게 밝히기는 어려운 문제이나 전해지는 설화에는 하늘의 복장군이 옥황상제를 속여 그 벌로 돼지로 환생하게 하여 사람들이 옥황상제께 소원을 빌 때 중개 역할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아득한 옛날 한인천제 시절 수해(豎亥)라는 신하가 천제를 올리면서 돼지를 받쳤기 때문에 비롯되었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돼지는 지신을 상징하는 동물이며, 다산을 하므로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뜻으로 돼지를 잡아서 고사를 지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