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 놀이를 어릴 적에 누구나 한번쯤은 다 해 봤을 것이고 지금도 우리의 어린이들이 그 놀이를 하고 있지만 정작 이 놀이의 유래나 의미에 대하여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보면 이 놀이에서 여우가 잠자고 세수하고 밥먹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묻고 확인하는 구성이 우리가 매일 일상적으로 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이 놀이가 재미있으면서도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일상적인 편안함에서 여우인 술래를 놀리는 것에 대한 가학적인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 첫 번째이고,
여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묻는 대목에서 혹시 살아있어 나를 해칠 수도 있다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 두 번째인데 이러한 것들이 어울려 묘한 자기만족과 흥분 그리고 카타르시스와 재미를 더해주는 것이다.
'여우죽이기'는 주(周)나라의 동이(東夷)폄하 방편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만족의 대상인 여우가 우리민족의 기본 정서에 녹아있는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꼬리가 아홉 개 달렸다는 구미호(九尾狐)는 더욱 그렇다.
일반적으로 구미호에 대한 시각은 “천년 묵은 여우”,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 “불여우”, “둔갑을 하고 남자를 홀리거나 정기를 빼앗아 먹는 여우”, “인간이 되기 위하여 인간의 간(肝)을 빼 먹는 여우”, “아주 교활하고 지능적이며 속이기 잘하는 간사한 사람 또는 여자” 등으로 인식을 하고 있다.
우리의 머릿속에 이러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그 동안에 보아왔던 전래동화나 소설, 영화 같은 대중매체에서 구미호 또는 여우의 이미지를 위에 열거한 것처럼 묘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과거에 개봉되었던 영화 “구미호”의 시리즈가 그렇고 근래에 개봉이 되었던 “구미호외전” 또한 현대적으로 그린 것일 뿐 이러한 도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가장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온 대표적인 동물이 까마귀와 여우이다.
까마귀는 최근 중국의 역사찬탈음모인 동북공정의 영향으로 삼족오가 고구려의 상징물처럼 느껴지고 있기 때문에 많이 완화되었지만 여우 특히 구미호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하다.
고대사로 올라가다보면 까마귀와 여우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서하고 가장 닮은 동물이며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되어있다.
고구려 벽화에도 나오고 삼족오로 그려지는 까마귀는 모든 짐승들이 어미가 새끼를 기르기 위해 먹이를 구해주지만 까마귀는 어미가 늙고 힘이 없을 때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반포조(反哺鳥)로 천손민족으로서 부모의 은혜를 강조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하고 맞아 떨어지는 데에 기인한다.
"구미호는 태평성대에 나타나며 상서로움을 나타낸다"
여우 또한 죽을 때 자기가 왔던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죽는다는 즉 수구(首丘)를 하기때문에 자기의 근본을 잊지 않고 사는 동물이라 생각을 하여 신령스럽게 여겨 온 것이다.
허신(許愼)의 <설문(說文)>에는 “여우에게는 세 가지 덕(德)이 있는데 색깔이 중화(中和)인 점과 앞은 작고 뒤는 큰 것이 그 것이다. 죽을 때 수구(首丘)를 한다.”라고 하여 여우를 긍정적인 이미지의 동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여우 특히 구미호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는 우리의 역사말살과 민족의 혼을 빼앗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육조(六朝)시대에 이라(李邏)가 주해한 천자문(千字文)에서는 “주벌은탕(周伐殷湯)”을 설명하면서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왕의 부인인 달기(妲己)를 구미호로 비유하고 있으며
<봉신연의(封神演義)>에서도 달기(妲己)를 구미호정(九尾狐精)으로 묘사하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다.
즉 나라를 망하게 한 요녀라는 것이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왕의 부인이었던 달기는 원래 동이족(東夷族)이었으며 은나라 역시 우리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서 우리 동이족이 건설한 나라였으며
달기는 주왕이 동이족에 대한 잔혹한 통치와 같은 종족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대하여 줄곧 반대를 하였으나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건국하면서 은나라의 정통성과 동이족을 말살하려 했던 것에서
달기가 구미호로 바뀌게 된 것이며, 주나라 왕실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동이귀주(東夷歸周, 동이(東夷)가 주(周)에 귀착(歸着)되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동이의 역사와 문화를 깎아 내리기 위해 후대에 폄하하고 왜곡하여 쓴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구미호가 갖고 있던 원래의 모습과 본뜻은 무엇이었을까?
단군조선의 제2대 단군이었던 부루(夫婁) 단군 시절에 <규원사화 단군기>에 구미호와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이 보인다.
“이 때 신령스러운 짐승이 청구(靑丘)에 나타났는데, 털은 밝고 희고 꼬리가 아홉 개가 달린 짐승이 서책(書冊)을 입에 물고 상서(祥瑞)함을 드러내는지라,
이에 고시씨에게 상을 내리고 나라 안에 영을 내려 음악을 연주하게 하여 매우 즐기며, 또한 ‘조천무(朝天舞)’를 지었다. (時有, 神獸出於靑丘, 白毛九尾, 銜書作瑞, 乃賞高矢氏, 令國中奏樂而致歡, 又作朝天之舞.)”라고 되어 있으며,
<사천성에서 발굴된 진.한시대의 전각화. 왼쪽에 삼족오 오른쪽에 구미호가 보임>
제17대 여을(余乙) 단군 시절에도
“태백산(太白山)의 남쪽에 이상한 짐승이 나타났는데, 꼬리는 아홉 개이며 밝고 흰 털을 지녔으며 흡사 이리 같았으나 사물을 해치지는 않았다. 이 해에 제후들을 크게 모으고 진번후(眞番侯)에게 상을 주었다. (有異獸出于太白之陽, 九尾白毛, 似狼而不害物. 是年, 大會諸侯, 賞眞番侯.)”라고 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지리서로 알려진 <산해경>의 <대황동경>에는
“청구국(靑丘國)에 꼬리가 아홉 개인 여우(九尾狐)가 있다.”라고 되어 있으며 곽박의 注(주)에는 “구미호는 태평성대에 나타나며 상서로움을 나타낸다.”라고 하였다.
<예문유취(藝文類聚)>에서도 “<서응도(瑞應圖)>에이르기를 육합(六合, 하늘과 땅과 동서남북)이 하나로 되면 구미호가 나타난다.”라고 되어 있으며
<백호통(白虎通>에도 “임금의 덕이 지극하면 새나 짐승에까지 미치게 되며 구미호가 출현한다.
꼬리(尾)가 아홉(九)라는 것은 마땅히 자손의 번식이 후대에 성대하게 된다.”라고 하여 위 규원사화의 기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부루단군의 제후 승인이 구미호 등장으로 대체
이렇듯 구미호는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매우 신령스러운 동물이며
구미호가 나타나면 임금께서 친히 큰 상을 내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연회를 열어 태평성대를 경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의 부루 단군 시절에 구미호의 출현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우(夏禹)이다.
우(禹)는 홍수를 다스리고 하(夏)나라를 건국하였으며 천하를 9주(九州)로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루 단군과 우(禹)와의 관계에 대하여 <규원사화 단군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
“이 보다 앞서 부루가 물과 땅을 모두 안정시키고 나니, 하우(夏禹)가 마침 당요(唐堯) 9년의 홍수를 다스리기에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모두 도산(塗山, 지금의 양자강 근처)에 모였다.
부루 역시 명을 받들고 가서 함께 모이며 신지로 하여금 보옥 및 활과 화살을 지니고 따르게 하니, 치우헌원대전 이후 두 나라가 처음으로 옥과 비단을 가지고 서로 만난 것으로서,
가히 동방회맹(東方會盟)의 시초라고 할 만하다.”라고 하여 부루단군이 태자시절 우임금에게 치수의 법을 알려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것이 전도되어 한(漢)시대의 조엽(趙曄)이 편찬한 <오월춘추 월왕무여외전 吳越春秋 越王無余外傳>에서
“우(禹)가 나이 30이 되도록 장가를 못 들어 도산(塗山)에 이르러 때가 저물고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구미호가 나타나서 우가 장가를 가게 될 징조라 말하고 구미호의 색깔이 흰 것은 우의 옷을 뜻하고 아홉 개의 꼬리는 우가 왕이 될 증거다라고 하였다.”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구미호는 부루태자를 의미하며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홍수를 다스리는 치수법을 배우는 것이며
장가를 가고 왕이 된다는 것은 부루태자의 승인을 얻어 제후국의 나라를 통치하는 왕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위의 <오월춘추>는 주객을 전도시켜 놓은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미호는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이며 제왕의 덕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또한 책을 물고 나타났다는 것은 위 전각화에서 보듯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규원사화 단군기>에서 청구(靑丘)에 구미호가 나타난 것은
청구지역 즉 지금의 산동성 인근 유역이 단군조선의 강역임을 밝혀주고 있다.
이를 <산해경>에서도 똑같이 청구국에 구미호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어 신뢰감을 더하고 있다.
삼족오와 구미호는 태평성대 갈구하는 우리 문화의 원형
<중국신화대사전>을 쓴 원가(袁珂)는
“한나라 시대의 석각화상 및 전각화를 고찰해보면 항상 구미호와 백토, 두꺼비와 삼족오가 서왕모의 곁에 나란히 있는 것은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후대의 사방신수(四方神獸)는 위 구미호와 백토, 두꺼비 그리고 삼족오가 변하여 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즉 구미호는 청룡으로 삼족오는 주작으로 백토는 백호로 두꺼비는 현무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사신도 하나인 청룡의 모습 - 구미호가 변하여 청룡이 된 것이라 함>
필자는 이전의 칼럼 중
“요순의 성인정치와 단군조선의 순방지치(淳厖之治)”을 통하여 중국의 요순시대는 태평성대가 아닌 허구이며 우리 단군조선의 순방지치를 흉내낸 것에 불과함을 밝힌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천손민족인 우리 민족은
이미 단군 이전 시기부터 동아시아를 지배해 왔고 단군조선에 들어서도 찬란한 업적과 문화를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며
단군왕검의 뒤를 이은 부루단군 또한 세계 공통으로 보이는 홍수설화시대에 태어나 선진적인 치수법을 우에게 전해주었으며
홍수가 다스려지고 난 뒤 태평성대가 거듭되니 구미호가 책을 물고 나타나 상서로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삼족오와 더불어 구미호는 우리 문화의 원형인 것이다.
비록 왜곡이 되고 그 원형을 대부분 간직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 시대에,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놀이는
그 옛날에 누렸던 우리의 태평성대를 갈구하며 그 시대로 돌아가려는 복본(復本)의 의지에서 발현된 민족적 잠재 욕구의 표현이 아닌가 한다.
우리 시대에도 구미호가 다시 세상에 나타나기를 바란다.
(완) |
이상 올린분: 신완순님(우리역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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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구미호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전설고향에 나오는 구미호는 우리역사에 나오는 조상의 역사를 곡해하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
물론 이론이 있겠지요
역사의 근본과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구미호의 역사적 사실이 더 많은 노력으로 밝혀질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우리의 참역사를 복원하는 우리역사의 비밀 www.coo2.net
(구미호 특집 2) 서왕모 (西王母) 벽화에 나오는 구미호(九尾狐) / 사진자료 분석
(#) 사진 순서대로 설명
(1) 서왕모 사진 원본크기 (2) 서왕모 사진 축소판 - 1 (3) 서왕모 사진 축소판 - 2
(4) (동) 구미호 -> 청룡 (후대에 바뀜) (5) (남) 삼족오 -> 주작 (6) (서) 토 끼 (?) -> 백호 (운영자 개인의견) (7) (북) 뚜꺼비 (?) -> 현무 (운영자 개인의견) (8) 서왕모
(#) 클릭하시면 큰 화면으로 자세히 보실수 있습니다
(#) 구미호(九尾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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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후백과사전 / 서왕모 (西王母) (#) ------------------------------------
중국 고대의 설화에 나오는 선녀의 하나.
그 기원은 은(殷)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갑골문자 가운데 나타나는 서모(西母)는 서왕모인 것으로 생각된다. 문헌상으로는 《산해경(山海經)》에서 서왕모에 관한 전승을 볼 수 있다.
이 전승에 의하면 그녀는 중국 서쪽 땅에 있는 동굴에 사는데, 사람의 모습에 표범의 꼬리와 호랑이의 이를 가지고 있고 산발한 머리에 비녀를 꽂고 으르렁거리는 괴이한 존재였다.
그러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서왕모는 신선사상의 영항을 받아 미목이 수려한 미인으로 변신하였고, 거처도 서쪽의 신산(神山)인 곤륜산(崑崙山)으로 정해졌다.
또 《목천자전(穆天子傳)》에는 주(周)나라 목왕이 곤륜산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서왕모를 만나 시가를 주고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 위키 백과사전 / 서왕모 (西王母) (#) -------------------------------------
서왕모(西王母)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다.
곤륜산에 산다고 한다.
산해경에 서왕모에 관련된 기록이 보이는데, 다음과 같다:
1. 다시 서쪽으로 350리를 가면 옥산이라는 곳인데 이곳은 서왕모가 살고 있는 곳이다.
서왕모는 그 형상이 사람 같지만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 이빨을 하고 휘파람을 잘 불며 더부룩한 머리에 머리꾸미개를 꽂고 있다. 그녀는 하늘의 재앙과 오형을 주관하고 있다. (서차삼경)
2. 서왕모가 책상에 기대어 있는데 머리꾸미개를 꽂고 있다. 그 남쪽에 세 마리의 파랑새가 있어 서왕모를 위해 음식을 나른다. 곤륜허의 북쪽에 있다. (해내북경)
3. 서해의 남쪽, 유사의 언저리, 적수의 뒷편, 흑수의 앞쪽에 큰 산이 있는데 이름을 곤륜구라고 한다.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의 몸인데 꼬리에 무늬가 있으며 모두 흰 신이 있어 여기에 산다. 산 아래에는 약수연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바깥에는 염화산이 있어 물건을 던지면 곧 타버린다. 어떤 사람이 머리꾸미개를 꽂고 호랑이 이빨에 표범의 꼬리를 하고 동굴에 사는데 이름을 서왕모라고 한다.
이 산에는 온갖 것이 다 있다.
목천자전에 주 목왕이 서쪽으로 가 곤륜산에 이르러 서왕모를 만나 사랑했다고 한다.
한무제내전에 한무제가 서왕모를 보고자 빌었더니 칠월 칠석에 서왕모가 아홉 빛깔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내려왔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서왕모가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불사수라고도 하고 천도복숭아라고도 한다. 영웅 예가 자신의 목숨이 길지 않음을 알고 곤륜산에 가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받았다고 한다.
역시 한무제내전에 한무제가 불사약을 구했더니 서왕모가 동방삭이 자신의 궁궐에서 복숭아를 훔쳐갔다고 답했다 한다.
(견우/직녀도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발견되며 견우는 소와 함께 견우는 여우/구미호와 함께 나온다)
이상 올린분(송준희-우리역사의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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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전번역원의 '해동역사' 동이총기東夷總記 첫부분(소개드린 기록은 포함되지 않음)
순조(純祖) 때 옥유당(玉蕤堂) 한치윤(韓致奫 1765~1814)과 그의 조카인 한진서(韓鎭書)가 함께 편찬한 <해동역사>에서 인용하고 있는 산해경찬(山海經讃)에 기술된 구미호九尾狐에 대한 시입니다.
기존에 소개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구미호九尾狐의 원래 인식이 어떠했는지 잘 나타내주는 시이므로 올립니다. 한몸살점의 산해경원문에서 찾아보았는데 부록은 올려있지 않는 것 같더군요.
많은 분들이 소개해주신 기록처럼 우(禹) 임금 때 백익(伯益)의 저술이라 전해지는 산해경山海經기록에서 구미호九尾狐는 청구국青丘國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알려져있습니다.
"青丘國在其北,其狐四足九尾。一曰在朝陽北。" 청구국이 그나라(군자국君子國) 북쪽에 있는데(주1) 그 나라의 여우는 4개의 발과 9개의 꼬리가 있다. 혹은 이르기를 조양의 북쪽에 있다고도 한다. 주1) 郭璞云:「其人食五穀,衣絲帛 」 곽박이 이르기를 “그 곳 사람들은 오곡을 먹고 옷은 비단옷을 입는다”하였다.
그런데, 진(晉)나라 때 곽박(郭璞)이 《산해경》의 원문에 찬(讃)을 붙인 2권으로 된 산해경찬(山海經讃)에는 아래와 같은 시가 실려 있어 이를 한치윤선생은 자신의 저서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해석은 민족문화연구회의 풀이가 부족해보여 보완하였습니다. ( 則 : ㉢이치 )
- 구미호九尾狐를 찬하는 시문 -
○ 《산해경찬》에 찬하기를,
청구에 사는 기이한 짐승은 靑邱奇獸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라네 九尾之狐
도가 살아있는 세상에나 볼수있는데 有道翔見
글을 머금고 이치를 세상에 드러낸다네 出則銜書
상서로움을 전문(篆文)에 나타내고자 作瑞周文
신령스러운 증표를 드러낸다네 以標靈符
< 출전 : 해동역사 세기편 '동이東夷총기'에서 >
예전에 운영자님 말씀처럼 이런 기린이나 봉황처럼 상서로움을 나타내고 도道가 실현되는 이상향에 출현한다는 신령스러운 짐승을 어떻게 사람을 해치는 짐승으로 왜곡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분명히, 동이를 시기한 지나의 왜곡과 함께 한민족의 쇠약에 따라 사대주의를 신봉하던 조선에서 이런 논리를 받아들여 신령스러운 구미호가 해로운 짐승으로 전락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이상 솟대님(우리역사의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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