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할미 이야기

치우천왕과 도깨비

愚悟 2011. 1. 17. 11:07

 

치우천왕과 도깨비

도깨비의 원형은 청동기 문화

치우천왕은 도깨비 대왕

 

 

 

 


우리의 민담에는 도깨비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어릴 적 할머니 무릎에 앉아 듣던 구수한 이야기 속에는 반드시 도깨비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도깨비들은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그런 도깨비들이었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도깨비 방망이는 가엾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어 삶의 시름을 잠시 잊게 하였으며 동경의 대상이었다.

 

도깨비는 음귀(陰鬼)로서의 귀신과는 다르다. 도깨비는 사람이 죽은 후에 생기는 다른 귀신들과는 생성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도깨비는 아주 친숙하여 그 모습도 코믹하고 귀엽게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나 중국의 도깨비는 아주 무시무시하게 괴물처럼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왜 다 같은 도깨비인데 우리와 달리 중국과 일본은 무시무시하게 표현을 했을까?

 

그 이유는 도깨비가 바로 우리의 조상인 14대 한웅천왕이기 때문이다.

도깨비 대왕이라고 부르는 연유는, 치우천왕은 갈로산에서 주석과 쇠를 캐내어 청동창과 칼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쇠를 이용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다. 이때의 투구 모습은 신농계 임을 확인하는 소머리 모양인 뿔이 두 개 달린 투구를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용광로에서 불을 다룰 때 화기火氣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하여 가면을 사용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때 사용한 가면이 투구가 되고 탈이란 형태로 변형되어 민간에 전승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투구를 만들 때 대장간에서 사용하는 필수적인 도구가 바로‘모루’라는 도구다.

이 ‘모루’의 모습이‘豆’자와 닮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경주지방에‘두두리豆豆里’ 라는 귀신을 쫓는 독특한 민간신앙이 지금도 펼쳐지고 있다.

두두리 신앙은 <삼국유사>에 가록된 비형랑 설화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두두리’는 경주 남쪽 10리에 있는 왕가수王家藪란 숲에서 제사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두두리豆豆里’는 두드린다는 의미로 도깨비방망이라고 말한다.

 

무당들의 굿에는 천신대감 놀이가 있다.

천신대감은 도깨비대감이라고 하며 치우천왕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천신대감은 굴뚝과 아궁이를 넘나들면서 복과 재물을 준다고 믿고 있다.

천신대감을 놀 때는 아궁이의 검정을 얼굴과 손에 묻혀 삼들의 얼굴에 묻힌다. 그래야만 재수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치우천왕은 도깨비대왕으로 대장장이 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치우천왕이 죽고 난 뒤 진나라와 한나라 때 주민들이 10월이면 치우 능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반드시 한 줄기의 붉은 띠 모양의 연기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을 치우의 깃발이라고 하였다. 그때부터 도깨비의 형상은, 치우 깃발의 붉은 색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 그리고 머리와 이마에 뿔이 달린 모습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중국 기록에는 치우가 죽고 난 뒤 치우가 차고 있던 수갑과 족새를 들판에 갖다 버렸는데 그 자리에서 단풍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또 어떤 책에선 치우가 흘린 피에서 단풍나무가 자랐다고 하기도 한다. 치우가 죽은 지방을 해(解)라고 하는데 치우가 죽을 때 흘린 피가 흘러들어 해지(解池)라는 연못이 되었다.

 

모두가 붉은색과 관련이 있다.

중국 민간풍속에 붉은색은 악귀를 쫓고 행운을 불러들이는 색으로 여기는 이유가 바로 치우천왕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황제헌원이 치우가 다시 살아날까 두려워 그의 몸을 육시를 하였다. 지금 중국 산동성 수장현에 있는 치우 묘는 치우의 머리가 묻혀 있다고 전한다.

 

황해도 굿거리에 군웅거리라는 것이 있다.

이 거리를 필자는 바로 치우천왕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무당이 죽은 치우의 영혼을 달래는 거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굿에서 사용한 돼지는 머리와 네발을 잘라 낸다. 즉, 육시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섯 조각으로 자르는 이유가 치우천왕의 죽음을 연상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군웅거리의 목적은 바로 귀신을 쫓는 것이다. 험악하게 죽은 조상귀신과 주변의 귀신을 쫓는 굿거리이다.

또 군웅거리에 사용하는 도구 중‘뚝대’라는 것이 있다. 이 뚝대는 귀신을 쫓아내는 방망이를 말한다. 뚝대에 매다는 방울 역시 군웅방울이라고 하는데 방울에 도깨비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렇게 귀신들이 치우천왕, 즉 도깨비를 무서워하는 것을 이용하여 궁궐이나 사대부의 기와집, 심지어는 사찰의 기와지붕까지 집안에 들어오는 귀신의 침범을 막으려고 치우천왕의 형상인 도깨비 모습의 귀면와를 만들어 놓게 되었다.

그리고 불교에서도 자기네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치우천왕을 사천왕이라는 이름으로 사찰에 들어오는 잡귀를 막는 수문장 역할을 맡기고 있다.

 

마을 어귀에 두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장승 또한 마을을 귀신들의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치우천왕의 형상인 도깨비를 변형시켜 만들어 낸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5월 5일 단오날 천중부적을 쓰면서 하여 치우천왕에게 병마를 물리쳐달라고 기원하고 있다.

 

또 서울의 뚝섬에서 치우천왕을 모신 사당이 있어 매년 뚝제를 지냈기에 섬 이름이 뚝섬이 되었다.

이렇게 우리가 도깨비 타령만 하고 있을 때, 중국은 치우를 자기들의 조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이 바로 귀근원에 있는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이다.

중화민족의 조상은 황제와 염제신농 그리고 치우라는 것이다.

 

중국의 사기를 비롯한 많은 고서에서 치우는 황제를 괴롭힌 나쁜 사람으로 그려졌는데 갑자기 자기네 조상, 전쟁의 신으로 모시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역사를 전설이나 설화로만 취급하고 있을 때 중국은 우리의 조상을 자기들의 조상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누구하나 항의를 하거나 심각하게 생각하는 학자가 없다.

고구려 역사왜곡보다 더 엄청난 역사왜곡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역사로 인정하지 않기에 아무른 대응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기껏 재야 학자들이 울분을 토로하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지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 뿐이다. 지금 많은 재야 역사단체와 학자들이 있지만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 목소리들은 방송국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 나는 라디오의 잡음처럼 재야의 목소리는 그 어떤 메시지도 전달하지 못하고, 그 어떤 변화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왜곡을 정부와 학계에만 맡기기엔 너무 무지하고 편협한 역사관 때문에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선 재야 역사단체들이 뭉쳐야 한다. 그러니 각자 자기 목소리만 크게 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각자의 목소리를 한 주파수로 모아 명쾌한 소리로 함께 울려 공명을 일으킬 수 있을 때에 정부와 학계는 막힌 귀를 열고 편협한 역사관을 버릴 것이다.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세계만방에 우리의 역사를 한 목소리로 전파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스스로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고, 국혼을 부활시켜 전 세계에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사상을 널리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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