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巫敎와 신교神敎
마고삼신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민족종교인 무교가 무속으로 변질된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이다.
그들은 일본의 신도와 무교의 본질이 같다는 것을 알고 신도를 높이고 무교를 폄하내지 말살하기 위하여 원시적이고 저급한 속된 신앙이란 의미로 무속이란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일제의 교육을 받은 학자들이 그대로 무속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우리민족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이며 지혜를 제공해준 민족종교를 왜곡한 일제의 종교침략 정책의 일환으로 붙여진 무속이란 용어를 아무른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학자들의 잘못은 지금이라도 시정되어야 하고 지금부터라도 무교라고 공식적으로 호칭하여야 한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무교를 샤머니즘(shamanism)이라고 부르며 북방 중앙아시아의 샤먼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북방 중앙아시아의 샤먼과 우리 무교는 여러 가지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 무교는 북방 시베리아의 원시종교라는 샤머니즘과 달리 우리만이 갖는 독특한 철학과 사상이 있으며 하늘을 섬기는 의식이 다르고, 신과 접속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필자는 무이즘(muism)이라고 부르고 있다.
중국의 사서나 우리의 문헌에는 무巫와 격覡이란 낱말은 있어도 무속이란 말은 없다.
그리고 우리의 상고사를 보면 무교巫敎라고 부르기 전에 신교神敎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수두교蘇塗敎 즉, 소도에서부터 발생한 종교라고도 하였다.
배달나라를 세운 한웅천왕 시절에는 참교(眞敎)라고 하였다.
훈민정음 정운正韻에 참은 신神이라고 했다. 즉, 참교는 신교라는 것이다.
단군의 조선에서는 덕교德敎라고 하였다.
하늘의 소리를 들으며 인간의 본성을 깨닫고, 뿌리인 조상을 받들고, 사람관의 관계를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재세이화, 성통광명의 정신이 우리 무교의 기본철학이라 할 수 있다.
이 덕교의 가르침의 덕은 생활 속의 떡이 되어 지금도 널리 실천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무교라고 부르기 전, 우리들의 조상들은 신교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본 경전은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이다.
교당은 신시의 소도였으며 소도에는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았다. 해마다 10월이면 큰 제천의식을 행하는데 그때의 유습이 지금도 남아 음력 10월을 상달이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천지신명께 정성을 드린다.
많은 학자들은 무교의 신들이 중국 도교로부터 들어왔다고 한다.
도교는 선교仙敎라고도 부른다. 선교는 황노黃老의 줄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황노는 황제헌헌과 노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선교는 황제헌원이나 노자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인류의 창조자이신 마고삼신으로부터 나온 가르침이다.
인간이 삼진三眞인 선청후善淸厚를 가지느냐, 아니면 삼망三妄인 악탁박惡濁薄을 가지느냐는 바로 삼관三關인 성명정性命精과 삼가三家인 심기신心氣身과 삼도三途인 감식초感息觸의 작용에서 구분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숨을 고르게 쉰다는 식(調息)과 원기를 기른다는 뜻의 기(養氣)와 장수를 의미하는 명(長命)을 묶어서 도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배달나라 신시시대 제14대 한웅인 치우천왕 때 자부선생紫府先生이 지은 삼환내문경三皇內文經에 삼산의 가르침이 인용되고 여러 가지 비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상고시대 치우천왕과 싸우다 매번 패한 황제가 자부선생을 찾아가 치우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니 칠성단을 세우고 하늘에 제를 드리고 삼황내문경을 받았다.
이것을 바탕으로 황제의 <황제내경黃帝內徑>이 나왔고 도교의 비법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렇게 숨을 고르게 쉬고 원기를 길러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것은 삼신의 가르침에서 나와 한웅천왕이 다시 정립한 것을 노자老子와 황제헌원을 거치면서 더욱 체계화되고 발전하여 도교라는 이름으로 중국 전역에 퍼졌으며 후세에까지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삼신의 가르침을 철학이나 학문으로 정립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냥 우리들 생활 속에 삶으로 녹아버린 풍습처럼 여기며 무심코 살아왔다.
우리들이 공기의 귀중함을 모르듯 우리의 철학과 사상의 중요함을 망각하고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도교의 뿌리가 삼신에서 비롯된 우리 신교神敎의 가르침인지를 알지 못하고, 민족의 정체성이 담겨있는 무교가 도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아버지를 보고 자식을 닮았다고 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잘못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
옛날이나 현재나 한 지역의 문화는 그 지역에서 지배하고 있는 종교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미풍양속은 모두 무교에서 비롯되었고 무교에 관한 것만 있었다.
그러므로 예전 우리 민족의 삶은 신교 즉, 무교 문화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무교가 생활의 지혜로, 삶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래문화가 들어오면서 무교 문화는 핍박받으며 점점 서민들 속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그 맥이 끊어지지 않고 강한 생명력으로 이어져 왔다.
그것은 무교가 신교에서 비롯되었고, 우리 조상들의 철학과 사상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또한 신교를 믿고 따르던 조상들의 DNA가 우리 몸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는 우리 민족에게 무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고 소중한 가치를 가진 신앙인가를 깨우치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무교는 잃어버린 우리 민족의 상고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고유한 전통문화로써 옛날의 유습과 우리 조상들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조상들의 소중한 신앙이며 철학이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의 정체성이 담겨 있으며 우리 어머니들의 생활의 지혜를 제공하고 삶 자체였던 무교를 미신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미개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우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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