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거리戶口巨里
난곡의 <무당내력> 일곱 번째로 나오는 것이 바로 호구거리다.
상단에 전물상은 둥근 소반으로 맨 앞줄은 과일을 그리고 두 번째는 전을 마지막 제일 뒤에는 떡을 쌓아 두고 꽃으로 장식하였다. 양쪽에는 촛대를 둔 것은 다른 굿거리와 대동소이하다.
다만 다른 거리와 다르다면 술잔이 없다는 것이다.
하단에는 무녀가 노란 저고리에 홍색치마를 입고 오른손에는 부채를 펴들고 왼손에는 방울을 들고 지금과 같이 붉은 망을 덮어쓰고 있다. 또 다른 거리와 달리 모자도 쓰지 않고 쾌자도 입지 않은 것이 특징으로 호구신은 여성신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무녀 좌우에는 한문으로 굿거리에 대한 설명을 기록하였다.
<천연두 신을 호구라고 한다. 가정에서 홍역을 치르지 않는 아이가 있으면 치성드릴 때 홍역이 약하게 지나기길 빌곤 한다. 근일에 호구신이 최영장군의 딸이라고 하고 또는 첩이라고도 하는데 망발이 극한 것이다.>
호구거리는 흔히 손님굿이라고 부르며 특정 질병인 마마 천연두를 주관하는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그 당시 천연두가 그만큼 무서운 질병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예방백신 우두가 개발되기 전까지 마마에 대한 예방법이 없었던 관계로 마마신을 극진히 대접하고 즐겁게 함으로써 마마가 걸리지 않거나 걸리더라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결과로 생긴 굿거리다.
그러므로 병자가 없더라도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면 호구신에 대한 경외감은 대단하였다.
천연두는 중국 강남에서 압록강을 건너 조선국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따라 들어오게 되는데, <호귀노정기>에 나타난다. 이것을 보면 호구신은 우리 고유의 신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무서운 질병을 주는 호구신을 최영장군 딸이나 첩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성계 일파에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최영장군의 원한이 만든 병이라고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것도 역시 조선시대 무속을 탄압하는 관계로 시대에 저항하는 의미로 만들어 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호구거리신인 천연두 마마가 걸리면 얼굴이 곰보가 된다. 얼굴에 잔득 핀 마마의 모습이 하늘의 별과 같다는 의미로 별상이란 호칭이 생겼는데 <무당내력> 책이 나온 후라고 여겨지니 아마 해방 후에 호구별상이란 호칭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나 호구신을 호구별상으로 호칭하면서 많은 혼란이 일어난다.
대부분 무속인들은 별상과 별성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명 <무당내력>에 호구신과 별성신은 다르다고 하였고 굿거리 역시 별개지만 호구거리를 호구별상이라고 부르면서 별성신에 대한 굿거리는 사라지고 호구별상신만 남게 되었다.
황해도 무녀들의 신격에도 별상마누라, 별상장군이란 호칭이 있다. 여기서도 별상이 아니라 별성이라고 하여야 한다. 별성장군은 작두를 타는 신격을 이야기 한다. 옛날에 마누라라는 말은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존칭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별성이라 부르는 것이 맞지만 무교인들은 별상이라고 부르면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홍역이 자취를 감추었으므로 질병을 일으키는 호구별상신의 명칭은 점점 사라지고 별상신만 남게 되었다.
또 별상신 역시 마마가 얼굴에 핀 모습을 나타내는 질병의 신이 아닌, 삶에 풍파를 일으키는 여별상신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또 혼인을 앞둔 여자는 여별상신을 위로하는 <여탐굿>을 하고 가야 시집가서 잘 산다는 속설이 생겼다.
이렇게 굿은 시대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우리 고유의 신이 아닌 호구마마신을 모시는 굿거리는 여신인 별상거리로 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별상신과 별성신은 근본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또한 사라진 별성거리를 복원하여야 한다.
<무당내력>의 기록은 별상은 <고시씨>나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을 칭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고시례’를 하는 이유는 바로 <고시씨>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굿에서도 우리에게 식록과 불을 제공한 <고시씨>를 추앙하는 굿거리가 있어야 우리 굿이 가지고 있는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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