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의 비밀보호 의무
필자는 정치적인 편향성을 가지고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밝힌다.
금일 어느 무속인이 김건희의 상담(점) 내용을 특정 정당에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예전 대선 때 캠프 시민봉사단 사무실 개소식 고사를 봉사차원에서 지내준 무속인이 있었다. 이 무속인은 대선 기간 동안 특정대선 후보를 위한 굿판을 벌렸다고 연일 TV 등 방송에 등장하여 많이 힘들어하였으며, 순수한 마음으로 캠프에 소개해 준 필자의 마음도 심히 불편하였다.
이번 대선은 무속프레임 대선이라고 할 만큼 무속을 폄하하고 왜곡하고 있는 와중에 생각 없는 한 무속인이 자랑스럽게 김건희의 상담내용을 공개하여 김의겸 의원의 유튜브 및 시사보도 방송에 등장하였다.
방송과 유튜브로 제법 알려진 이 무속인은 이번 발언으로 더욱 유명세를 얻고 싶었겠지만 본인의 의도와 달리 그 발언의 진위 논란을 확인하기 위한 언론과 정치권의 성화와 정치권의 고소 고발로 편하지 못한 나날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이번 상담 내용 공개는 무속인으로서 상당히 부적절한 처신이다. 무속인도 엄연히 사제라고 할 수 있다. 신부는 고해성사의 내용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까지도 내어 준다. 왜 목숨까지도 버리면서 고해성사를 지킬까? 그것은 신부로서의 의무감과 자긍심 그리고 종교의 신념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신부가 고해성사 내용을 특정인에게 흘린다면 고해성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형법 제 317조에는 업무상비밀누설 조항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제사, 약종상, 조산사, 변호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공증인, 대서업자나 그 직무상 보조자 또는 차등의 직에 있던 자가 그 직무처리 중 지득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할 때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고 되어 있다. 그리고 형법 제 149조에는 업무상 비밀과 증언거부를 규정하여 법정에서의 증언일지라도 타인의 비밀을 공개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 법조항에 종교인이 거론되지 않는 것은 종교의 양심에 맡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속인의 상담도 여기에 준하여야 한다. 신부의 고해성사를 지키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상담자와의 대화 공개는 엄격히 규제되어야 하고 비밀은 지켜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얄팍한 생각으로 그것도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특정인에게 공개하였다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친분이 있는 정치인의 회유라고 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다.
직업의 윤리성과 신뢰도를 조사한다면 무속인은 아마 낙제점으로 최하위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떻게 하면 무속의 신뢰를 높이고 무속인이 사회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서 무속인의 신뢰를 땅 밑으로 추락시킨 무속인은 과연 사제라는 의식이 있는지 묻고 싶다.
필자는 늘 왜 무당이 되었으며, 무당으로서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수천 년 우리 민족의 삶과 지혜를 제공하며, 민족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 종교인 무속을 정치권에서 이번 대선처럼 왜곡하고 폄하시킨 적이 없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상담 내용을 공개한 것은 무속은 미신으로, 무속인은 신뢰할 수 없는 집단으로 인식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TV나 방송에 나오면 무조건 유명세를 탈 것이란 생각은 아주 잘못되었다. 이런 언행이 자신의 신적 영험함을 높여주지도 못할 뿐 아니라 상담자 유치에는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무속인의 신뢰를 짓밟는 큰 잘못을 하였으며, 혹시 내 비밀이 공개될 수 있다는 의구심을 상담자들에게 깊이 심어 주었다. 이 무속인의 행태를 보면서 생각나는 사자성어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무속인을 무교인으로 무속을 무교로 부르기 위해서는 깊이 사유(思惟)하는 무당이 되었으면 한다. 사유의 능력을 높이고 사제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신의 선택으로 무당이 되었지만, 무당이 된 이상 사제로서 자격과 인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교육의 부재가 초래한 아주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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