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처음 무속을 접하고 반평생을 무속을 공부하고 무속의 발전과 무속인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노력한 세월이 어느듯 33년이 흘렀다.
1997년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무속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숱한 사연과 아픔을 안겨준 무속, 명예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지만 늘 오해와 비난으로 얼룩진 나의 행적은 누굴 탓하기 보다 나의 잘못된 행보가 남겨준 상처라고 생각한다.
무속인들에게는 신을 받지 않은 무지랭이로, 학계에서 학위가 없는 재야라 는 한계로 어느쪽에서도 환영 받지 못한 무속의 삶이지만, 무속을 사랑하고 굿판에서 즐길 수 있었기에 나는 행복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무속판에서는 난 늘 최초였다.
지금은 흔한 무속인공연을 1993년 처음으로 야외에서 무대를 세우고 굿을 공연화 한 일,
무속전문교양대학을 설립하여 무속인의 인성교육과 이론교육을 최초로 시작하였다.
무속인들 당호를 "지리산도사" "산싱동자" "천신보살" 등으로 사용하는 것을 '00신당"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여 현재 이상한 당호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최초로 신문다운 무속신문 "세계무속신문"을 창간하여 무속인드르이 이론 교육과 인성교육에 힘을 쏱았다. 현재 발행되고 있는 무속신문들은 모두 "세계무속신문"이 모태가 되어 발행되고 있다.
무속인들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고 무속인 질적 향상을 위한 무속팟캐스트 "그래! 나는 무당이다"를 시작하여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한 방송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학동에 위치한 일지아트홀을 대관하여 굿을 유료 공연으로 진행하여 출연 무속인들에게 정당한 출연료를 주었으며, 굿도 문화콘텐츠의 일환으로 유료공연으로 판을 펼쳐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돈화문국악당에서 6일간 전국 굿을 하루씩 유료공연화를 실시하여 굿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무속칼럼니스트로 처음 글을 쓸 때는 정말 거침없는 글로 무속판의 부조리와 잘못된 관행 등 많은 부분들과 사람들을 비판하였다.
그런 비판과 방송 등을 통하여 많은 무속인들이 변하고 깨우치고 배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행복했다.
30여 년간의 세월을 뒤돌아보면 아쉽고 부족했던 점이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정도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ㅓ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해 본다.
이렇게 활동해 온 탓에 남들이 하지 못한 공중파 3사와 종편 4사 등 많은 방송에 출연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왜곡된 무속을 바로 인식시키려고 노력하였지만 녹화라는 한계를 이기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이 남는 활동이었다.
현재 무속이론 교육을 통하여 일반인들과 무속인들로 구성된 무천문화연구소가 무속의 이론 정립과 무속인들의 자질향상 그리고 무속의 위상을 높이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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