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천 리포트

어려운 질문

愚悟 2007. 7. 8. 12:51

 
어떤 분의 질문을 받고
<질문 내용 : 국난을 당하였을 때 무당들의 행동에 대하여>


너무 어려운 질문을 받아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합니다.
미처 그기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미천한 무당의 신분과 무식한 무당이라는 소릴 듣는 것이 안타까워 나름대로 공부를 하였지만 국난을 당하였을 때 무당들의 행동에 대한 공부가 없어 죄송합니다.
다만 질문을 받고 몇몇 서적을 뒤적였으나 흔적이나 기록을 찾을 길 없어 나름대로 정리를 해 봅니다.
국난에 닥쳤을 때 무당들의 취한 행동은 기록엔 없지만 나름대로 유추해 보면, 옛날 무당들은 영기가 밝아 국난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미리 이야기할 수도 없죠. 사회적으로 신분이 미천한 무당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도 않고 괜히 유언비어를 만들어 사회를 혼란하게 만든다고 되레 혼이 날 것이니까요.
그런 관계로 미리 짐작을 하였으나 누구에게 이야기도 못하고 혼자서 속앓이를 하다 결국 국난을 옴 몸으로 함께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에겐 이야기를 했겠지만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으로 나눠 그렇게 파급효과가 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무교는 소위 고등종교라고 일컫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 등과 다르게 조직이 없습니다.
예전 상고시대에 제정일치 시대에는 왕이 무당이었기에 따로 조직이 필요하지 않았죠. 그러나 제정이 분리되고 무당의 신분이 자꾸 격하되면서 조직을 만든다는 것이 어렵게 되고 또 무교는 유일신이 아니고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즉 우주의 모든 사물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정신이기에(생생지생) 모든 사물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게 됩니다. 그래서 무당을 만신이라고 부리기도 하지요. 그런 결과로 어느 신을 중심으로 뭉쳐서 조직을 만들기가 불가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직이라는 것은 그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힘을 영향력을 널리 사회에 끼치기 위하여 만드는 일종의 사화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조직은 조직의 장악을 놓고, 재산을 놓고, 종교적인 이견 등으로 수없이 싸우고 갈라지고 하는 것을 고등종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조직은 그 집단의 이익은 될 수 있으나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니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나 사회나 국가에 공헌할 수 없는 조직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 바로 무교의 기본 바탕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무당들이 능력 부족 등으로 조직을 결성할 수 없다고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지금도 무당 단체들이 몇 개 있지만 그렇게 활성화 되지 못하는 것은 무당들 자신이 직접 그런 조직에 몸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당들은 개개인이 신을 직접 체험하고 신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항상 자신들의 중심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조직을 거부하고 문제점도 양산하고 있지만 또 이런 조직이 없으니 국난을 당했을 때 조직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당들은 조직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하지만 무당으로서 자신이 하는 굿이나 기도를 통하여 은밀하게 독자적으로 대응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에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주재소에 신고를 하여 순사들이 나와서 굿을 못하게 하고 하였습니다. 그런 폐단이 해방 후에도 한참 계속되어 무당들은 굿을 하는 것이 무슨 큰 죄나 짓는 것처럼 순사 즉 경찰들을 보면 벌벌 떨곤 하였지요.
그럼 왜 일제는 굿을 못하게 하였을까요?
그건 바로 굿의 정신입니다.
굿은 정신은 크게는 生生之生, 接合群生으로 통합니다.
이것을 세분하면 다시 和解同參, 解寃相生을 말 할 수 있습니다.
마을 굿을 통하여 일 년 동안 이웃 간에 생긴 반목을 굿판에 함께 동참함으로써 화해하고 그 화해된 힘은 모든 이들의 원을 풀고 서로 상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즉 개인의 발전과 마을(사회)의 발전과 나아가 국가의 발전으로 함께 마음을 모우고 합하여 상생으로 나가는 것이지요. 그런 단결된 힘이 바로 뭉치면 반일감정 국난 극복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굿을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극난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총칼을 들고 나가서 싸워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교는 여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종교이기 때문에 무당들은 여자가 대부분입니다. 남자는 극소수에 불과하지요. 이런 점도 무교가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난으로 흩어진 민심과 어려운 마음들을 한곳에 결집시켜 보듬어 주고 희망을 제시하며 상생의 길로 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총칼을 들고 싸우는 것 보다 더욱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얼마나 많은 종교인들이 종파 가릴 것 없이 일제에 협력하였습니까?
그것은 조직이라는 힘을 이용하기 위한 일본의 압력과 회유에 굴복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본인 역시 神道라는 일본 특유의 무속이 있었기에 신도와 공통점이 많은 무속을 일본인들은 가장 두려워하였으며 무당 또한 신을 모시고 있기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앞으로 좀 더 기록을 찾아보고 더 공부를 하여 명쾌한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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