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천 리포트

녹야원 김민정 선생

愚悟 2011. 3. 28. 14:26

 

녹야원 김민정 선생

 

 

억울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야 나라가 평안하다

어려움을 기도로써 해결해주는 신통력을 지닌 명인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서해아파트에 있는 녹야원 김민정 선생을 찾았다.

 

그녀는 찾는 이유는 다른 무녀들과 달리 어려운 일을 굿이나 비방 등으로 해결하지 않고 기도로써 해결하기로 유명하다고 소문이 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평범한 가정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여상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여 남과 같이 좋은 남자 만나서 단란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 그녀가 가진 소박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신은 그녀를 그렇게 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20대 후반 어느 날 창신동 집을 나서는데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이제 그만 본래의 길로 돌아오너라.”

아니 본래 나의 길은 이렇게 직장 잘 다니고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가는 것인데 무슨 본래의 길로 오라는 것인지 그녀는 생뚱맞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몸에 이상한 증상들이 오기 시작하였다.

 

소위 말하는 무병이었다.

갑자기 숨쉬기가 힘이 들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걷지도 못하게 되었다. 병원을 찾아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병을 고칠 수 없었다.

그리고 먼 산만 쳐다보면 산신령님이 보이고 장군님이 보이고 칠성님이 하강하시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미쳐간다고 느꼈다.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더욱 그녀를 미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허공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허공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직감적으로 느끼는 현상이었지만 그녀는 들리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행인들에게 앞으로 닥칠 일을 말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였다.

앞전에 잘못 말하였다간 미친년 취급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꾹꾹 눌러 참았다.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무당집을 찾았다.

신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자신들처럼 무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고만 싶었다. 무당이 되기보다 죽는 것이 났다고 생각하여 자살을 기도하였지만 죽을 수가 없었다.

신이 선택한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외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예전에 관운장을 모신 남묘에서 아기를 점지해달라고 기도를 하던 중 말문이 터져 무당이 되었다.

그리고 양평에서 절을 운영하시다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주력이 나에게 대물림 된 것 같다.

그녀는 신의 부름에 굴복하여 31살에 신 내림굿을 하였다.

 

내림굿 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이 인도의 사원들이었다고 한다.

선생들은 부처님을 모실 제자라고 하였다.

내림굿 후 그녀를 처음 찾아온 사람은 그녀가 무병으로 겪었던 증상과 똑같은 환자였다.

 

40대 남자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여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증상으로 업혀서 찾아왔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굿과 기도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고 말 하였다고 한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굿을 하기 전 일주일 기도를 드린 후 굿을 시작하였다. 신기하게도 굿을 하는 중간에 그 남자는 숨을 깊게 들어 마시고 내 뿜더니 말을 하였으며, 이어서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첫 굿은 성공리에 마쳤다.

 

그 후 그녀는 굿도 중요하지만 기도의 효험도 굿 못지않게 신통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더 심도 있는 기도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손님도 보지 않고 시작한 것이 100일 묵언 기도를 위하여 오대산을 찾았다.

혼자 기도를 하면서 고통과 어려움이 많이 따라지만, 100일 묵언 기도 후 그녀는 100일 전의 자신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기도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를 시작한 것이 좀 더 깊은 기도를 원하여 1,000기도 정진을 수행하였다.

 

그때부터 굿보다 기도로써 어려움을 해결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기도로 기원을 하면 어려운 사업상의 일들이 해결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사업하는 분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굿이 아니라 기도로써 해결해 준다는 소문에 많은 분들이 찾아오고 있다.

필자 역시 사업상 큰 위기를 그녀의 도움으로 넘길 수 있었던 사업가의 소개로 김민정 선생을 찾게 되었다.

나의 궁금증을 해소하게 위해서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파트 빌딩 숲 속에 꼭꼭 숨어 있었다.

아무나 찾을 수 없는 곳이다.

간판도 없고 아무른 표식도 없으니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니 소문을 듣고 연락을 한 후 찾아와야 한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도 반기지 않는다. 많은 손님이 오면 피곤하다며 거절한다.

김민정 선생은 1000일 기도를 한 후 더욱 영검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기도로써 어려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녀는 내림굿을 한 후 지금까지 자시와 인시 기도를 특별한 일이 아니면 지킨다.

기도로 터득한 기운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라고 한다.

기도의 효험을 구체적으로 해달라고 해도 다른 무당들도 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신령님을 따로 모셔둔 그녀는 늘 부처님과 신령님들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새기며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진솔한 무녀로 남기를 원한다.

돈만 쫓는 현 세태를 안타깝다는 그녀는 열심히 기도하며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조금씩 금전이 늘어났다고 한다.

욕심을 버리면 채워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라 한다.

 

2001년 10월 3일 4.19묘역에서 민주열사를 위한 진혼굿을 주변의 권유로 참가하였지만,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싫어 다음부터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억울한 희생자를 위한 해원기도는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억울한 영가들을 천도해줘야 대한민국이 평안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녀는 소문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얼굴 내미는 것도 싫다고 한다.

 

필자의 인터뷰 역시 거절하였다가 주고받은 몇 마디 속에서 얻은 이야기 들이다.

그래서 사진 찍는 것도 거절하였다.

옛날 사진 한 장을 부탁하였더니 얼굴이 나오지 않는 사진 한 장을 주었다.

신내림을 받을 때 사진이다.

 

사진첩을 보자고 하였다.

사진첩엔 몇 장의 사진만 있었다. 그 역시 얼굴이 제대로 나온 사진은 한 장도 없다.

광고를 하고 얼굴을 알리려는 요즘 세태에서 보기 드문 무당임은 틀림이 없다.

내 블로그에 올려도 되냐고 물었다.

이름도 가명이고, 얼굴도 안 나오니 마음대로 하란다.

필자 역시 며칠을 생각 끝에 이렇게 연락처까지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