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의 <무당내력>에 아홉 번째로 거리로 만신말명거리가 그려져 있다.
전물상 그림은 없고 남색치마에 만신이 노란 대신복을 입고 오른손에 부채 왼손에 방울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그리고 굿거리 설명은 다음과 같다.
「무녀는 만신으로 불려지는데 萬身 또는 萬神이라 하여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지 못하겠다. 대저 이 춤은 무녀의 연원을 말해주는 것이다.」
무녀를 만신으로 부르는 지역은 중부지역 이북인데 이능화의 <조선무속고>에서 만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말에 무당을 만신이라 하는데 대개 무당이 제사하지 않는 신이 없기에 만가지 신이라는 뜻으로서 일컬어진 말이다. 만신이란 칭호의 유래는 매우 오래되었다. 포박자를 보면 황제가 동쪽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보고 삼황내문을 얻었는데, 이것을 만신이라 했다. 또 자부선생의 巫의 역사에 있어서는 주제신이다.」고 했다.
이 기록을 근거로 하면 만신이란 용어는 청구, 즉 치우천왕시절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신선들의 비결서인 삼황내문에 기록된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만신이란 상고시대에 하늘을 받드는 사제자를 일컫던 말로서 고조선 3세 가륵단군 때 생긴 무당이란 말보다 훨씬 먼저 쓰여진 호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말명신이라고 하면 무당의 조상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요즘은 죽은 조상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능화의 <조선무속고>를 보면,
「신라 명장 김유신의 어머니인 萬明을 신격화하여 무녀의 조상신이 된 것이라 하였다. 또 소운거사嘯雲居士 이규경의 《오주연문》에 이르기를 군위현 서악에 신라 김유신의 사당이 있는데, 그곳에는 그의 어머니인 만명萬明이 신으로 모셔져 있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만명신을 모신 곳은 반드시 구리거울 즉, 명두를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만명萬明이 말명末命으로 와전되었다. 그리고 무업을 하다 죽은 무녀의 조상신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죽은 조상이라고 한다. 말명末命은 목숨이 끝났다는 말이다.
이것은 만명萬明의 본뜻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 곡해로써 많이 왜곡된 것이다.
또 말명신을 들면 무당들은 잘 불리지 못한다고 한다. 이 말뜻은 바로 김유신 어머니 만명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김유신 어머니이 만명萬明으로 무녀이지만 그 당시 귀족사회의 종교는 모두 불교였기에 아들 김유신의 출세를 위하여 무교를 버리고 불교를 믿어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런 사례가 바로 설화로 전해져 오는 천관녀 집으로 간 백마의 목을 친 이야기다.
천관녀는 보통 기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생이 아니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무녀라는 것을 천관녀天官女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유신의 어머니 역시 무녀이지만 아들의 출세를 위하여 무녀 노릇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연휴로 말명신은 김유신 어머니로 그녀는 불리지 못한 무녀였기에 말명신이 들면 불리지 못한다는 말이 생긴 것이라 생각한다.
황해도 굿에서 말명거리가 있다. 도산말명거리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선 죽은 조상이 아니라 신격으로 받들어지며, 도산말명신으로 불려진다.
도산塗山이란 명칭은 상고사 즉, 단군조선의 기록인 단군세기 등 옛 기록에 나오는 성지聖地다. 단순히 흙으로 쌓아 올린 산이 아니라 그 당시 고조선을 중심으로 한 주변국들이 모여서 당면과제를 의논하고 해결했던 화합의 장소였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어, 지금의 UN과 같은 기능을 하는 장소가 바로 도산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말명은 만명萬明의 변음으로 즉, 만萬은 수가 많다는 뜻으로 가득 찼다고 할 수 있다. 명明은 밝다는 뜻으로 바로 신명神明을 이야기 한다. 이 말을 합치면 수없이 많은 밝은 신명이 가득 찼다는 뜻이 된다.
우리 무당들이 밝은 신명으로 가득 찼을 때가 바로 무꾸리나 굿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말명, 즉 만명은 바로 도산에서 삼신상제께 제사를 지낼 때 그 제사를 주제하는 무당을 만명萬明이라고 불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말명 즉, 만명신에 의미를 바로 잡아야 한다. 왜곡되고 잘못 알려져 사실들이 진실인양 전해져 내려오면 무교가 가진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