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부거리唱婦巨里
난곡의 무당내력 열한 번째 면에는 창부거리의 그림과 함께 설명이 있다.
전물상의 그림은 없고 무녀만 그려져 있는데, 흑전립을 쓰고 붉은 저고리에 초록색 치마를입고 흑색쾌자를 걸치고 오른손에 부채를 들고 부채 끈을 길게 늘어뜨려 왼손에 잡고 있는 모습니다.
상단에 설명을 보면 “ 무녀 중에 나이가 젊고 아름답고 묘한 자를 뽑아 한바탕 유희를 하는 것이니 돈을 거두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육십년 이래 차차 성행 하였다” 라고 적었다.
기록대로 전물상이 보이지 않는 것 역시 이 그림은 정식 굿거리가 아니라 기대들이 굿판을 흥겹게 하기 위하여 소리와 춤으로 유희를 즐기는 순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설명을 보면 난곡은 무속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또 우리 역사에 대한 지식은 전무 한 것 같다.
난곡이 이야기한 나이가 젊고 아름답고 묘한 자들은 바로 기생들이다. 그 당시 무당들이 굿을 할 때 기생들을 데리고 다니며 굿 중간 중간에 소리를 하면서 별비를 거두곤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고를 치고 소리하는 무당을 기대라고 한다.
기대들은 소리와 악기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 큰 무당들이 항상 데리고 다녔다.
그러니 여기 기록대로 무녀를 기생처럼 희롱하고 유희를 즐겼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다.
훗날 도당굿 등에서 주민들이 무당들을 희롱하는 것은 바로 기대들에게 하던 버릇들이 전해졌기 때문이며, 세월에 따라 기대들이 사라지면서 그 역할을 무당들이 스스로 담당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명나라를 상국으로 모시면서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기록한 단군세기 등 사서를 모두 수거해 불태우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상실하였다.
그러니 창부가 누군지 알 길이 없으며 우리의 역사를 모두 잃어버렸다.
그 결과 창부를 소리를 하는 여자쯤으로 생각하고 기록하면서 지금의 창부거리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유추해 본다.
이런 연유로 창부를 잘못 알게 되어 지금까지 노래나 하고 광대가 나와 춤이나 추는 그런 굿거리로 알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면 창부가 누구인가를 알아보자.
<태백일사/삼환관경본기>를 보면, 단군왕검의 첫째아들인 부루단군이 태자시절 창수사자부루(蒼水使者扶婁)라고 불렀으며, 여기서 창부라는 말이 탄생하였다.
부루태자는 스스로 북극 수정(水精)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며, 홍수를 막는 비결로 오행치수법을 기록한 금간옥첩(金簡玉牒)과 물의 깊이를 알 수 있는 신침과 물을 진압할 수 있는 황거종(皇鉅宗)을 주어 홍수를 막게 하였다.
부루태자는 물만 마음대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천부왕인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액을 막고 인간들을 복되게 하므로 그때부터 ‘홍수막이’란 말이 생겨났고 지금도 정월달이면 무당들이 단골들의 일 년의 액운을 막아 주는 것을 ‘홍수매기’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굿거리 중 창부타령에서는 반드시 열두 달 홍액을 맞는 굿거리가 있다.
즉, 천부왕인을 가지고 모든 액을 막아주던 부루단군의 위력을 빌리는 것이다.
그리고 정월달에 단골들에게 홍수막이를 시키는 것 역시 부루단군이 황하의 홍수와 모든 액을 막았던 힘을 빌려 단골들의 일년무사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창부거리는 이상하게 변하였다. 난곡이 창부거리와 기대들이 노는 거리를 구분하지 못하였듯이 지금의 무당들 역시 창부가 누군지 모르니 소리나 하고 광대들이 노는 거리로 생각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