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굿의 성조거리成造巨里
난곡의 <무당내력> 열한 번 째 굿거리는 성조거리다.
전물산은 없고 하단에 무녀의 그림만 그려져 잇다.
무녀는 검은색 갓을 쓰고 남치마에 소매가 좁은 녹색두루마기를 입고 오른손에 부채, 왼손에 방울을 들고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자로 기록하였다.
“단군시절 매해 시월에 무녀로 하여금 가옥을 짓은 것을 축하하도록 하였는데, 그 뜻은 인민이 근본을 잃지 않도록 함이다. 치성 시에는 의례히 거행한다. 속칭 성주푸리라고 한다.”
이 해석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단군세기>의 기록이다.
「단군왕검께서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成造)에게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高矢)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 신지(臣智)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하였으며, 기성(寄省)에게는 의약을 베풀게 하고, 나을(那乙)에게는 호적을 관리토록 하였으며, 희(羲)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尤)에게는 군대를 관장하게 하였다. 비서갑의 하백녀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옛적부터 추수가 끝나고 시월이 되면 상달이라 하여 시월 하고도 무오(戊午)날을 골라 안택 고사 등 정성을 많이 드렸다.
이때는 신곡으로 시루떡을 찌고 술과 과일을 차려놓고 굿이나 정성을 드리는데 이 정성은 성주(城主)님께 드리는 정성이 되는 것인데 성주는 보통 우리가 그 집안의 제일 큰 신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주신을 모시는 형태는 단지에 모시는 형태와 종이로 모시는 형태 두 가지가 있다. 성주단지는 안방 시렁이나 등에 놓아두고 종이성주는 대들보나 안방 중앙 위쪽에 백지에다 태실을 걸어 매달아 놓는 형태가 있다. 성주단지에는 햇살을 넣는 것이 보통이나 경우에 따라서 동전을 넣기도 한다. 이사를 갈 땐 성주단지는 땅에 묻고 그 속의 쌀은 떡을 해서 집안 식구들만 먹는다. 성주종이는 나무에 매달아 놓고 간다.
성주신의 신체를 봉안하는 것을 ‘성주 옷 입힌다.‘성주 맨다. 라고 하는데 대주의 나이가 ’3‘이나 ’7‘이 되는 해에 매고 굿을 하면서 모시기도 한다. 여기서 ’3‘이나 ’7‘이라는 숫자는 우리 민족의 신앙인 삼신과 칠성에서 유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주(호주)가 죽으면 기존 성주를 땅에 묻거나 태워 없애고 새 성주를 모시게 된다.
성주신은 가택뿐만 아니라 배에서도 모신다. 보통 서낭 , 배성주, 배서낭, 당 등으로 불리고 있는데 신체는 한지에 신의 이름을 쓴 것을 모시거나, 아님 배에 세우는 깃발, 쌀을 넣은 단지, 등으로 모신다. 이 단지는 기관실 정면에 놓는다. 이밖에 일반고사 후 하는 행위와 같이 북어에 실을 묶어 두기도 하고 네모로 접은 백지에 삼색 실을 엮어 둔 것도 있다.
성주신은 집안에 부정한 일이나 흉한 일이 일어나면 떠나버린다고 믿고 있다. 성주신이 떠나면 그 집안은 재앙이 닥쳐 쇠퇴하게 되므로 항상 집인 식구들은 집안을 청결히 하고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여 올바른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무교에 존재하는 모든 가택신은 이렇게 인간의 올바른 삶을 유도하는, 보이지 않으나 인간이 따를 수밖에 없는 불문율 같은 존재로 항상 우리를 감시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여기선 경기남부지방에서 전승되는 성주신화를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황산 뜰에 대목 황우양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황우양씨는 하늘의 옥황상제로부터 쇠동품으로 쓰러진 천상의 궁궐을 다시 지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황우양씨는 부인이 만들어 준 연장을 가지고 소진 뜰을 지나다가 누구와도 말하지 말라는 부인의 당부를 잊어버리고 소진랑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소진랑은 모든 액을 미리 막아준다고 황우양씨와 옷을 바꿔 입고 천하절색이라는 황우양씨의 부인을 납치한다.
부인은 소진 뜰로 잡혀와 결혼을 강요하는 소진랑에게 몸이 부정하니 구메밥 3년을 먹고 난 뒤 결혼하겠다고 하여 혼사를 지연한다.
이 사이 황우양씨는 몽조가 이상하여 점복을 해보고 부인이 변고를 당한 것을 알고 급히 내려와 소진랑을 물리치고 부인과 함께 돌아와 폐허가 된 황우 뜰에 새로 가옥을 짓고 부부로 해로한다. 그 후 황우양씨는 성조신이 되고 부인은 지신이 되었다.」란 설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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