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일 종로3가 천우극장에서 가졌던 축제연구포럼
김정환 회장(오산대학교 축제이벤트학과 교수) 신현식 간사장(상지대학교 교수) 두 분의 열정적인 추진력과 탁월한 리더와 멀리 지방에서 참석해주신 회원님들의 뜨거운 관심에 깊이 감사드린다.
특히 축제포럼 발표장을 굿으로 뜨겁게 달궈주신 김정숙 회장님께도 포럼 회원들과 함께 깊이 감사드린다.
너무 많은 분들이 오셔 준비해간 발제문을 미쳐 받아가지 못한 분들은 페이스북 축제연구에 파일로 올릴 예정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번 발제문이 무교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시대별로 올려본다.
무교의 기원과 변천사 및 축제활용성
조 성 제 <무천문화연구소>
1. 서론
무교의 기원을 논하기 위해선 상고사의 자료들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巫를 폄하한 시대상황에 따라 무에 대한 기록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교는 우리 할머니들의 생활의 지혜요, 삶 그 자체였으며 오랜 세월 우리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 민족 심성의 원형이자 민족의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무교를 이야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제인 무당과 그들의 의식인 굿이라고 할 수 있다.
무교의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무당과 굿을 제외하곤 이야기 할 수 없다.
하여 먼저 굿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것부터 살펴보려 한다.
굿은 무교의 사제인 무당들이 하늘에 제를 지내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굿은 인간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그 시대의 정서를 우리 가슴에 심어주고, 굿이라는 형태를 빌려서 좁게는 개인, 나아가서는 마을단위, 더 나아가서는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우리 민중들과 함께 하여왔다.
굿이란 말은 얼마나 좋은 말인지 영어에 좋다는 뜻인 굿(Good)이 있고 신을 말하는 갓(God)도 굿에서 나왔다.
각 지방마다 굿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굿이 추구하는 뜻과 목적은 한가지다.
굿은 우리 민족의 정치, 경제, 역사, 종교, 철학, 사상, 문화를 총체적으로 표현한 우리의 정체성의 결정체다.
또한 굿은 현실에서 억압된 인간들의 마음을 해소해주고 화해동심和解同心과 해원상생解寃相生 즉, 살아오면서 생기게 되는 이웃 간의 반목을 풀어버리고 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면서 상생할 수 있는 계기를 굿이라는 것을 통하여 제공하는 축제적인 기능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심성이 담긴 굿을 우리 정신을 잃어버린 시대에 남의 시각으로 남의 정신으로 왜곡되게 바라본 학자들의 기록과 외래 종교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굿은 미신이라 폄하하며 싫어한다.
한웅천왕은 소도를 만들어 삼신께 제를 올리고 삼신을 조상으로 삼았다.
그 당시 제를 올릴 때 지금 굿의 원형인 춤을 추면서 삼신께 제를 올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상고시대의 소도는 바로 굿을 하든 장소라고 생각한다.
소도에서 굿을 하면서 하늘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래서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천문天門을 연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산문山門을 연다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천문은 하늘의 문이고 산문은 소도의 문으로, 산의 문도 될 수가 있다. 또 마을굿을 할 때 지방에 따라서 골매기문이라고도 한다.
2. 무교의 시작과 상고시대의 무교
굿에 대한 기록은 우리 문헌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 굿의 기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문헌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제의로는 <삼국지/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부여의 영고와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같은 제천의식을 들 수 있으며 이러한 제천의식들이 굿의 원형들이라고 생각한다.
무당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 제2대 남해왕 조를 보면 남해왕은 차차웅으로 불렸는데, 이 말은 무당을 나타내는 말이라 한다.
남해왕은 시조의 묘를 세워 친누이동생 아로阿老로 하여금 제사를 주관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들은 굿의 기원을 밝히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굿의 기원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제천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남해왕보다 더 훨씬 위로 올라가서 살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무가에 나오는 많은 어원들이 한인시대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한인천제, 한웅천왕, 단군왕검 세 분의 시대에 종교행사는 하늘을 살피고 교신을 하는 제천의식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은 주문(사설)을 낭독하고 큰 동작으로 몸짓을 하여 원하는 바를 전달하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쇠꼬리 쥔 놈이 임자」란 말이 있다. 이 말은 그 당시 쇠꼬리를 쥔 사람이 임금이라는 말일 것이다.
旄旄牛尾 舞者所持以指麾 란 기록이 있다. <강희자전>
모모우미 무자소지이지휘
이 말은 모는 희고 털이 긴 소의 꼬리다. 춤을 추는 자가 쥐고서 흔든다는 것으로 무당이 제사를 지낼 때 모우旄牛라는 털이 긴 소의 꼬리를 쥐고 흔들며 춤을 추었다는 것으로, 굿의 시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이 말은 천제를 드릴 때 모우旄牛라는 흰 소를 잡았다는 말이다.
지금도 무당들이 굿을 할 때 부채 끝에 긴 천을 달아 그것을 쥐고서 춤을 춘다.
이러한 행위도 흰 쇠꼬리를 쥐고서 춤추던 그 때의 풍습이 아닌가 한다.
또 풍물패들의 놀이에서 상쇠는 전립의 꼭대기에 흰 깃털을 달고 상모를 돌리는 것도, 그 당시 무당이 손에 쥐고서 춤을 추던 것을 지금은 모자 위에 올려서 돌리는 것이다.
이런 의식은 철 따라 춘분마지, 하지마지, 추분마지, 동지마지로 이어졌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지금도 봄에는 꽃맞이, 여름에는 유두마지, 가을에는 햇곡마지 겨울에는 동지마지 굿이라 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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