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초파일과 연등
불교에서는 등불을 밝히는 이유를 <설일체 유부경전>의 기록에 보면 ‘아사세왕’이 기원정사에서 부처님께 법문을 청해 들을 때 동참한 모든 불제자들이 기름등을 켜서 법회자리를 밝힌대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연등행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당시는 석가탄신일이 아닌 정월 대보름인 상원上元날에 개최되었다.
이는 중국 상원 날 연등회 풍속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석가탄신일 보다 더 성행하였다.
고려가 개국된 후 태조 왕건이 상원 연등회를 법으로 정착시켜, 모든 국민에 참여하는 국가적인 축제인 연례불교행사로 만들었다. 그 당시 사월 초파일에는 사찰별로 소규모 연등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다 사월 초파일 연등행사가 왕실 행사인 상원의 연등행사보다 능가하게 된 이유는 바로 무신집권 시대부터이다.
무신정권, 즉 최우崔祐가 권력을 잡았을 때부터 ‘최우’는 왕실이 주체가 되는 상원의 연등행사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사월 초파일일 연등행사를 개최하였다.
또한 그 후 몽고의 간섭으로 왕실의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는 상원 연등행사가 자주 중단되자 점점 더 사월 초파일 연등회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이 건국되자 숭유억불 정책에 의하여 상원의 연등회는 당연히 고려 왕실과 관련이 있으므로 구습이라 하여 즉시 폐쇄되어 버리고 사월초파일 연등회만 존속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부처님 오신 날은 음력4월 8일이다.
불교를 국교로 하고 있는 태국(음4월 15일), 그리고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는 2월 8일을 석가모니 탄신일로 잡고 있다. 또 1956년 네팔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불교대회에선 부처님 탄신일로 5월 15일로 정하여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만 지금까지 부처님 오신 날을 음력 4월 8일로 고집스럽게 지켜오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한다.
<고구려국 본기 제6편>을 보면 고구려 선조는 해모수로부터 나온다고 하였으며 <조대기>에선
「해모수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웅심산에 일찍이 살다가 부여의 옛 서울에서 군대를 일으켜 무리에게 추대되어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니 이를 부여 시조라 한다. 까마귀 깃털로 만든 관을 쓰고 용광의 검을 차고 오룡烏龍의 수레를 탔다.
아침엔 정사를 듣고 저녁엔 하늘로 오르니 호령하지 않아도 절로 관경管境이 교화 되었다. 단군 해모수가 처음 하늘에서 내려오심은 임술년(B.C 239년) 4월 초 여드레다.」라고 되어있다.
이렇게 보면 4월 초 여드레는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온 날로써 불교가 고구려에 들어오면서 고구려 건국의 정통성과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상서로운 왕족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온 날을 부처님 탄신 날로 잡은 것이 아닌가 한다.
초파일에 밝히는 연등 역시 그 뿌리는 우리의 인등因燈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인등因燈은 신등을 말하는데, 즉 한인천제桓因天帝의 등이라는 뜻이다.
연등 혹은 인등을 밝히는 행위는 한인천제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한인천제에게 바치는 불인 것이다.
등불을 밝힘으로써 태양신인 한인천제의 높은 덕과 사상을 널리 기리고 인간의 본성인 선하고 맑고 후덕함을 다시 찾자는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즉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깨우침이라 할 수 있다.
“뮤 제국”은 영국의 제임스 처치워드(James Churchward)가 인도 힌두교의 전설로만 전해지던 이야기를 50여년 연구 끝에 "잃어버린 뮤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실제 있었던 제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인등이나 연등은 세월에 따라 기복으로 변질되어 본래의 그 뜻을 찾아 볼 수 없고 개인 또는 가족의 앞날에 영광과 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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