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강궁(白罡穹) 바람의 신 풍백 장명희,
어린 시절 일찍 부모님 곁을 떠나 독립을 한 그녀는 거친 세상을 바람같이 살아왔다. 어린 나이 혼자서 세상 속에서 겪은 삶은 신이 주는 시험이었고 고통은 그녀의 내면을 완성시키는 과정이었다. 가혹한 성장과정 때문인지 그녀의 말투는 정제되어 있지 않고 투박하고 거칠다. 욕쟁이 할머니 같은 거침없는 말투가 오히려 더 시원스럽고 정이 가는지 모른다. 그런 거친 말투 속에서 그녀의 자신감과 따뜻한 인간미 그리고 깊은 정을 느낄 수 있다.
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녀의 간절한 바람은 일 년에 한두 번 씩 큰굿을 하였으며 굿을 할 당시 무당들보다 먼저 공수를 받고 그 뜻을 따랐기에 남들보다 많은 재물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신의 뜻으로 벌어들인 재물을 다시 신의 손길에 벗어나고자하는데 사용하였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선행을 베풀었으며, 전국 사찰을 찾아다니며 행한 대중공양과 전방 군부대 위문으로 신의 그림자를 벗어나고자 하였지만 그것은 바로 신들이 바라는 행동이었으며 뜻이었다.
이렇게 이웃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그녀를 신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번 선택된 그녀를 결코 놓아주지 않았으며, 급기야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을 예견하였으며 그 예견대로 뜻하지 않게 동생을 잃어버린 후 이순(耳順)이 넘어서 결국 신에게 굴복하게 되었다.
그녀는 내림굿이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신의 가르침대로 혼자 신당을 차리고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동안 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하여 수십 년 동안 일 년에 한두 번씩 큰 굿을 해오면서 무당에 대한 불신이 마음속에 조금씩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을 모시겠다고 결심한 밤 그녀는 꿈을 꾸었다. 하늘에서 일곱 분의 장군이 백마를 타고 내려와 그녀를 가운데 두고 서로 자기와 살아야 한다고 설전이 벌어졌다. 그녀는 어느 누구와 살겠다고 대답할 수도 없어 일곱 분들과 다 같이 살자고 하고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밤마다 일곱 장군이 한 분이 찾아와 동침을 하였으며, 그 다음날은 포대화상이 찾아와 등에 메고 있던 포대를 건 내 주며 이 포대를 가지고 힘들고 지친 불쌍한 이웃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 장군과 포대화상의 의미도 모른 채 포대화상과 일곱 장군을 모신 신당을 차렸다.
그러나 막상 신을 모셔놓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였다 무작정 기도를 하면서 신이 알려주시는 대로 하기로 마음먹고 매일 새벽마다 그녀가 살고 있는 팔공산 주변과 명산대천을 찾아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였다. 기도를 통하여 남들처럼 영험한 능력을 받아 점을 보고 굿을 많이 하여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원치 않았다. 이미 그녀는 어느 정도 재산이 축적되어 있었으며 또 사업으로 남보다는 나은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도를 열심히 다니는 이유는 그 전과 다른 마음의 평온함을 얻을 수 있었고 또 가족의 건강과 행복만을 위해서였다. 또한 기도만이 그녀가 무당으로서 신들에게 할 수 있는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50대의 낯선 여인이 찾아왔다. 여기 영험한 선생님이 계신다고 하여 찾아왔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한 그녀는 그런 사람이 여기 안 계신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여인은 꿈속에서 만난 분이 그녀라고 하면서 자기 사연을 들어달라고 애원하였다. 간절한 그 여인의 청을 거절할 수는 없어 그녀는 이야기나 들어 보자고 하였다.
그 여인은 남편은 화물차를 한 대 가지고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운전을 하면 자꾸 헛것이 보여서 급정지를 하다가 급기야 사고가 나서 크게 다쳤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녀의 눈에는 그 집에서 살다가 억울하게 쫓겨나 죽은 할머니 조상의 한 맺힌 절규가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그 할머니가 몸에 실려 살아생전 억울한 일을 설명하고 억울한 한을 풀어달라고 하였다.
그렇게 그 여인의 한 많은 할머니 조상을 풀어주는 일을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여인의 삶이 평소에도 그리 넉넉하지를 못하였고 지금은 남편이 운전하기를 꺼려 더욱 궁핍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금전에 개의치 않고 제물을 차릴 최소 비용만을 받고 할머니 조상을 풀어주었다. 예전에 해마다 해 온 정성을 경험삼아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고 신들이 시키는 대로 자신이 알고 있는 천수경을 비롯한 회심곡 등을 읊으며 징을 치기 시작하였다. 경이 끝나자 그녀는 할머니 조상이 몸에 들어와 시집와서 억울하게 쫓겨나 죽을 때까지의 서러움과 한을 풀어내기 시작하였다. 즉 여인의 시아버지가가 첫 번째 결혼한 부인을 구박하고 폭행을 일삼다 쫓아내어 한을 품고 병사한 할머니의 원한이었다.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업보가 아들에게 이어진 것이다. 그 후 남편은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고 집안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또 한 여인은 집안 가득히 뱀이 우글거리는 환상을 보게 되어 살 수가 없다고 하였다. 서랍을 열면 서랍 속에 뱀이 나오고 침실의 이불을 젖히면 이불 속에 뱀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여인이 가는 곳마다 뱀들이 우글거리고 나타나 살 수 없다고 하였다. 사연인즉, 여인의 시어머니가 집안의 구렁이를 잡아 망태에 담아 지금의 남편인 아들에게 바다에 던져 죽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때 그 구렁이의 배속에는 알을 가득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뱀이 원한을 갚기 위하여 여인에게 나타나게 되었으며 딸의 눈에까지 온 집안에 뱀이 우글거리게 환상이 보였다는 것이다. 이 여인 역시 정성을 드릴 때 누런 구렁이와 뱀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현상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 후 그 여인은 뱀의 환상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정성의 효험이 소문이 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면 모두 맞다하며 손뼉을 치니까 그녀 스스로도 놀라웠으며, 더 신기한 것은 그녀가 작은 정성이라도 드리고 나면 건강을 되찾는 등 바라던 소원을 모두 이루게 되니 그런 모습이 그녀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정성을 드리면 소원을 이루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감사하고 자신도 행복을 얻을 수 있기에 금전과 상관없이 자신의 돈을 더 보태어 정성을 드려주곤 하였다.
그녀는 굿을 할 줄 모른다. 배우지도 않았지만 굿이란 한 맺힌 조상만 잘 풀어주면 된다고 하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무당들이 흔히 하는 신명거리인 장군거리 대감거리 등을 하지 않아도 한 맺힌 조상의 원혼만 잘 풀어주면 해결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기에 그녀의 정성을 결코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무당들의 시각에서 볼 때 엉터리 굿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필자가 가진 평소의 소신과 통한다. 굿이란 형식과 절차보다 제가집의 소원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잘하는 굿이고 정성이다. 소리 잘하고 춤 잘 추는 것이 잘하는 굿이라면 소리꾼이나 무용가를 초대해서 굿을 하면 된다.
그렇게 자신만의 굿으로 많은 사람들의 바람을 들어주고 나면서 그녀는 자신이 왜 무당 아닌 신녀가 되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포대화상께서 등에 지고 다니던 포대를 넘겨준 이유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되었다.
그녀 자신을 굳이 신을 모시게 한 이유가 점이나 보고 굿을 띠어 많은 돈을 벌어서 혼자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지친 이웃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지혜의 보따리를 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포대 속에 들어있는 희망과 용기 그리고 금전을 이용하여 좌절하고 고통 속에 사는 모든 이들을 치유해 줄 수 있는 힐러(healer)가 되라는 신의 뜻을 깨우친 그녀는 신의 부름을 거부한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게 되었다.
신의 손길을 알지 못하고 아니 거부하였던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그녀의 그런 삶은 지금 그녀를 찾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어루만질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었다. 일찍이 드리우진 신의 그림자는 남들보다 수많은 시련과 아픔을 경험하게 하였으며 그녀를 대장간의 무쇠보다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신의 가혹한 담금질이었기에 현재 그녀는 여자라기보다 남자라고 할 수 있는 대담한 결단력과 배짱, 그리고 깊은 이해심을 가진 여인이 되어 있다.
풍백 그녀는 말한다. 왜 무당이 되었을까? 왜 많은 사람들 중에 신들은 나를 선택했을까? 또 신을 모신 사제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깊게 고민하는 사제 또는 무당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고민과 행동이 없는 한 무당은 영원히 무시 받을 것이며 무속은 영원히 미신으로 치부되어 손가락질 받을 것이라고 그녀의 성격대로 거침없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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