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무당

서민들의 동반자, 이 시대 진정한 무당 울산 일월신궁 변경태 선생

愚悟 2012. 9. 20. 20:48

뱃속에서 神이 선택 태중신(胎中神)’ 받은 변경태의 인생 스토리

무당 사명은 어렵고 마음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조상거리 명인으로 우뚝 서실패자로 낙인된 사람들 쉼터만드는 게 소망

무당 옥석 가리고교육기관 설립의 절심함 강조

 

 

 

 

 

 

 

어지러운 시대에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동반자가 되기를 자청하는 무당 변경태(52). 보통 무당과 달리 어머니 뱃속에서 에게 선택돼 태중신(胎中神)’을 받고 태어난 변경태는 유난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신의 선택을 거역하기 위해 교회에 다니며 방언 기도까지 하는 열혈 기독교인 생활도 했고, 무당이 되기 싫어 역술인으로 살아가려는 시도도 했다. 20살에 시집가 남편과 작은 공장을 운영하며 평범한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아가려고 몸부림도 쳤다. 그러나 신의 선택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결국 그녀는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됐다. 무당이 되자 남편은 무당 마누라와 살수 없다고 해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아픔을 겪었다. 변경태는 무당의 설움을 어렵고 힘들고 마음이 아파 자신을 찾는 손님들을 부등켜 안고 함께 울고 아파하며 이겨냈다. 태중신을 받아 유난히 혹독했던 어려움이 밑거름이 됐던지 어려운 사람들이 변경태를 유독 많이 찾아 울산을 비롯한 부산경남지역에서 명성을 얻는 성공한 무당의 반열에 올랐다. 이제 그녀의 소망은 병들고 인생에서 낙오해 오갈데 없어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쉼터를 만드는 것이다. 인생의 실패자라고 낙인 찍혔을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온 그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인류의 시원(始原)인 마고대성의 재현이자, 지상낙원이 될 것이라는 게 변경태의 믿음이다.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며 신의 사제로서 삶을 실천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무당 변경태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희망의 메시지 전달이 무당의 사명

 

 

 

의 사제인 무당의 사명은 무엇인가. 신으로부터 숙명적으로 선택돼 신과 인간의 소통을 매개하는 무당의 소명은 어렵고 힘들고 마음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것이다. 이는 외래종교든 민족종교든 모든 종교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무당들이 숱한 핍박과 멸시를 받았지만 사라지지 않고 명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힘들고 어려운 민초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에게 희망과 생활의 지혜를 전해주며 삶 속에 자리잡았던 무교가 다시 살아나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다. 아무런 과학적, 합리적 근거가 없는 맹목적 미신이라는 오명이 재평가되면서 일반인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겨 점집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틈타 무당집이 난립하면서 옥석가리기가 어려워지고 사기꾼 무당들로부터 피해를 입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무당을 보는 세상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좋은 무당이 되나?

 

 

 

시원종교이자 전통종교인 무교와 무당을 세상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 무교는 아득한 옛날 인류 태초의 제정일치 시대부터 있어 온 시원종교다. 무당은 환인환웅단군의 피를 이어받아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신의 뜻을 세상에 전달하기 위해 선택된 사람들이다. 일반인과 다른 특수한 삶을 살아가는 무당들을 가까이서 보면 참으로 착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착한 심성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교감하면서 신의 말씀을 진솔하게 전해주고 희망도 준다. 남다른 기운을 가지고 태어나 남을 위해 평생을 빌면서 살아가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무당의 삶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무당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당이 넘쳐나지만 진정한 무당을 찾기 힘들다는 지적도 많다.

 

 

 

몇 년 사이 무당 숫자가 많이 늘어나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어려움에 처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급한 마음에 찾은 무당집에서 자기도 모르게 금전적으로 큰 피해를 보고 상처를 입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무당들이 돈을 쫓는 것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속적으로 타락해 악질 장사꾼이 된 무당들에 대한 옥석 가리기는 반드시 해야할 시기다. 일반인들도 무교와 무당을 잘못 이해하고 쉽게 신비주의에 현혹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무당이 제대로 평가받고 자리매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나?

 

 

 

지금은 나름대로 좋은 토양이 무당들에게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무당들도 제대로 평가받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이는 무당들의 구심점이 돼야 할 무당단체들이 각종 부조리로 실망감을 안겨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무당이 천대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시대를 불평하고 원망해서는 얻어지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무당들 스스로가 무교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서로가 가슴을 터놓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야 한다. 특히 무당들에게 소양교육을 하고 예법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태중신 받은 무당 변경태

 

 

 

울산시 동구 방어동에서 일월신궁을 운영하는 변경태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신에게 선택된 태중신을 받은 무당이다. 변경태의 어머니는 경남 진주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외동딸이었지만 625전쟁으로 가세가 몰락하고 자손마저 끊겼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어머니가 변경태를 가질 때 태몽에 탯줄을 목에 건 아이를 낳는 꿈을 꿨다. 그래서 변경태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중신을 모신 무당으로 태어난 것이다.

 

 

 

-태중신을 받고 태어났는데 무당은 늦게 됐다. 이유는?

 

 

 

지금은 울산에서 신을 모시고 있지만 원래 태어난 곳은 서울 종로구 공평동이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신병은 일골살때부터 나타났다. 이유없이 음식을 전혀 못 먹고 각혈까지 하는 심한 병을 앓았다. 백약이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가 무당을 불러 굿을 해야 기력을 되찾았다. 그래도 병은 시름시름 계속됐다. 17살 때 한약을 60재를 먹고도 차도가 없어 미아리 만신을 찾아 굿을 하면서 집안의 비밀을 알게 된다. 어머니가 원래 신을 모셔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나에게 신벌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사실을 끝내 숨기려 했다. 자식이 신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무당을 불러 굿을 하면 낫는다는 신념 같은 것은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굿을 하고 나면 잠시 좋아졌다가도 다시 병고에 시달리는 시련은 반복됐다. 무당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결혼도 일찍하고 교회도 열심히 다녔다. 지장보살을 모시는 역술인 생활도 했지만 결국 무당이 될 수밖에 없었다.”

 

 

 

-20살이라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무당이 되지 않기 위해 결혼을 일찍해 남편과 함께 옷을 만드는 가내공업을 했다. 하루는 꿈에 노란 의대를 입은 사람이 문 앞에 서있고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그 옆에 서 있는 모습이 꿈에 나타났다. 노란 의대를 입은 사람이 가만히 있어라. 저 사람이 우리를 받아들여야 되는데 안하니 저렇게 아픈 것이야라고 하는 것이었다. 꿈이었지만 너무도 생생해 그 말이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것이 신령님을 모시라는 암시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후 병이 더 깊어졌다. 용한 점집을 찾아 점사를 보니 신을 모셔야 한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건 내게 너무도 가혹한 엄청난 사실이었고 죽기보다도 싫은 것이었다. 원래 처녀무당으로 늙어야 하는데 결혼을 해 신벌로 가정이 가혹하게 풍비박산이 났다.”

 

 

 

-역술인 생활도 6년 넘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가 역술을 공부하면 신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해 역술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역술공부를 하는 2년은 별 탈이 없이 지나갔다. 역술 공부를 하던 중에도 선생이 무당이 돼 신령님을 모시라는 말을 자주했다. 그러나 신을 받지 않기 위해 역술공부를 하는 것이라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1991년 역술 공부를 마치고 지장보살을 모시고 점사를 보는 역술인이 됐다. 하루는 집에서 기도를 하는 중에 커다란 구렁이가 집에서 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어디선가 저기 업이 나간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업은 무엇이고, 왜 그것이 나가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때 문득 무당이 돼 신을 모셔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고 새로운 고민과 갈등에 빠졌다. 그렇게 갈등과 고난의 세월이 6년이 지나갔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힘들다는 표현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삶과 주변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다.”

 

 

 

-그래서 역술인을 그만두고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됐나?

 

 

 

하루는 친구가 점사를 보러간다고 해서 따라갔다. 그때 무당이 유명한 가수의 어머니였다. 그런데 이 무당이 점을 보러간 친구는 안 봐주고 나에게 당신은 신령님을 모시고 살 팔자인데 왜 그것을 그렇게도 거부하느냐. 두고 봐라 신령님의 신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여기가 끝이 아니다. 모시라면 모셔야지 그러니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무당이 돼야 한다는 말을 무수히 들었지만 그 순간은 다른 때와 달리 두려움을 넘어 삶의 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그토록 거부해왔던 신의 길을 가기로 작정했다. 19975월에 인왕산 국사당에서 신내림 굿을 하고 무당이 됐다.”

 

 

 

-서울 토박이인데 울산에서 무당생활을 하게 된 계기는?

 

 

 

신을 모신지 6개월이 지났을 때 남편이 무당과 살 수 없다는 이유로 이혼을 요구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혼을 당한 충격으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좋아하던 바닷가로 가기로 작정하고 1998년 울산으로 내려왔다. 울산에서 생활도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가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자책감이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어 신령님을 모시는 일도 게을리하게 됐다. 이런 방황 끝에 1999년부터 모든 것을 버리고 온갖 잡념에서 벗어나 하늘이 무너져도 오직 신령님만을 모시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모든 것을 정리했다. 그리고 신 시집살이를 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찬물로 목욕을 하고 비리고 누린 것을 먹지 않는 시집살이가 이어져오고 있다.”

 

 

 

조상거리 명인으로 우뚝 선 변경태

 

 

 

무당 변경태는 조상거리를 잘하는 무당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조상거리는 굿을 의뢰한 제가집의 직계조상부터 4대 조상까지 전부 굿판에 불러서 죽기 전에 하지 못했던 말이나 살아생전에 자손들에게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에 남은 한을 풀어주어야만 조상의 음덕을 바랄 수 있고 그 덕분에 제가집의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지금도 변경태가 굿판에 들어서면 자신의 아버지가 실린다. 아버지가 실려 무당이 된 딸의 운명을 한탄하며 굿을 의뢰한 제가집의 조상을 잘 모셔다 맺힌 한을 풀어주고 자손들이 잘되게 조상님이 보살필 수 있도록 하고 조상님을 좋은 곳으로 보내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유달리 인연을 강조하는 변경태는 사람이 생명을 안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것과의 인연은 시작되며 그 인연은 죽어서도 이어진다좋은 인연이건 악연이건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신령님을 이어주는 끊어지지 않는 끈이고 그 인연의 한 가운데 바로 무당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는 처녀무당으로 늙어야 하는데 결혼을 해 신벌을 심하게 받고 자신의 주변을 지키지 못해 얽히고 설킨 업이 많다는 변경태는 찾아오는 손님들의 운명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스스로의 업도 풀고 있는 것이다.

 

 

 

점집을 찾는 사람들에게 변경태는 점사와 굿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무리 점사를 봐도 답답한 사람은 결국 굿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점사가 폐쇄적이라면 굿은 공개적이다. 점사를 보러 온 사람은 폐쇄된 공간에서 문제를 푼다. 그러나 굿은 열린 공간에서 펼쳐지는 의례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개인이나 집안의 일 내놓는다. 그러면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이 모여 다함께 신령님의 영검함을 빌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기에 그 성격을 잘 이해해야 게 변경태의 설명이다.

 

 

 

특히 변경태는 굿이 미신으로 치부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굿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민초들이 액운을 피하고 풍성한 결실을 얻기 위한 노력 중의 하나이다. 사람의 일에는 사람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굿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최후에 선택하는 수단. 사람의 힘으로 안되는 어려움을 신의 힘을 빌어서라도 해결하려는 삶의 의지를 표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즉 힘들어지고 오그라드는 우리 삶을 본래의 활기찬 곳으로 데려가기 위한 방편이 굿인 것이다. 그래서 굿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조상거리의 잘하는 성공한 무당으로 자리매김한 변경태의 소망은 산 좋고 물 좋은 자리에 고달픈 영혼들의 쉼터를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잘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인간의 의지로 되어지지 않는 게 세상살이. 실패자라고 낙인 찍혔을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온 그들이 쉬어갈 수 있는 터를 마련하는 것이 무당 변경태의 소망이다. 이것이 곧 무교를 믿는 사람들이 돌아가기를 염원하는 인류의 시원(始原)인 마고대성의 재현이요, 지상낙원을 실현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무교 자체는 신의 영역이지만 무교 행위는 무당 개인의 영역인 만큼 진정한 사제로서 무당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무당 교육기관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반복해 강조하며 무당 변경태는 인터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