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사랑한 여인 김연리
무병도 모르고 무당이 된 여인
순탄한 삶만큼 남을 위해 노력한 무당
김연리는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 너무나 평범한 삶을 살아 온 여인이다.
그런 그녀가 무당이 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신의 부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굿을 한다고 하여 함께 동행 하였다.
그리고 굿판에서 무당이 주는 공수를 받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발바닥이 바닥에 붙어 버렸다.
순간 그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발을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이것은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이 내린 계시였다.
무당이 시키는 대로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신복을 입고 무감이란 것을 섰다.
신복을 입고 징, 장고 장단에 맞춰 움직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격렬하게 뛰기 시작하였고, 그 순간 본인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의 말씀이라는 공수였다.
“내 자식 불쌍해서 어떡하냐”
라는 공수를 내리며 혼자 울면서 미친 듯 뛰었다.
그리고 내림굿을 해야 한다고 하여 1995년 6월에 내림굿을 하기로 하였다.
그 당시 경황이 없어서 내림굿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고 단순한 재수굿으로만 알았다.
그리고 내림굿을 할 때 역시 평생 처음 하는 굿이라 지금 하는 굿이 내림굿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였다.
그날 굿이 무당이 되는 신내림 굿인지도 모르고 그냥 재수굿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그녀는 어떻게 굿을 했는지도 모르고 그냥 시키는 대로,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곤 굿이 끝났다.
내림굿에서 그녀가 여러 가지 말을 하였지만 그 당시 생각나는 말은 딱 한마디였다.
“만인의 꽃이 되고 잎이 되어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참 제자가 되거라”
굿이 끝나고 난 뒤 내림굿이란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그때부터 무당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또 보통 무당이 되기 전 무병이나 신병을 심하게 앓거나 집안에 풍파가 심하여 심한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녀는 아무른 징조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무당이 되는 것에 거부감이 강하였다.
그런 이유로 신엄마와 갈등이 잦았으며, 강화 보문사에 기도를 다녀 온 후 몸이 아프게 시작하였다. 원인모를 병에 병원을 찾았으나 정확한 병명은 나오지 않고 며칠을 입원 한 후 퇴원을 하고 신엄마의 권유대로 신당을 꾸미고 무당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녀는 도저히 자신이 무당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으며, 본인 역시 무당이길 거부하였다.
그러다 그녀는 신에게 말했다.
“제가 정말 무당이라면 1년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1년 후에는 마음을 잡고 신령님 뜻을 따르겠다.” 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전혀 연고도 없는 울산으로 가자고 그녀가 스스로 입으로 이야기를 하였고 그녀는 전혀 연고가 없는 울산으로 향했다.
울산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특별히 직장을 잡고 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 년 정도는 아무 탈 없이 열심히 일을 하면서 마음 편하게 지냈다. 그런 중 어느 날부터 그녀 자신도 모르고 사람을 보면 중얼거리기 시작하였다.
하루는 주방에서 일하는 다른 아줌마에게 나도 모르게 말을 하였다.
“오늘 집에 가면 신랑 조심하이소오, 괜히 말대꾸했다간 눈티가 밤티 됩니더”
그 다음날 식당주방 아줌마는 영락없이 얻어터져 눈이 시퍼렇게 하곤 출근하였다.
그 다음부터 그 식당 종업원뿐만 아니라 손님들까지 자꾸 물어 보곤 하였다.
그녀는 가만히 날짜를 세어보니 일 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신령님과 약속대로 <장군당>이란 명호로 신당을 차리고 무당의 길로 들어섰다.
그녀는 다른 무당과 다르게 무병이나 신병으로 고생하지도 않았고, 또 금전적으로 고통을 크게 받은 적도 없으며, 집안 식구 누가 크게 아프거나 죽는 일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무당이 되었으니 천지신령님께서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하셨나 보다.
그 때가 31세 되던 해로 신기하게도 그동안 무당이 되는 것을 반대하던 집안 식구들이 울산 신당으로 찾아와 모두 굴복하고 절을 하게 되었다.
그녀가 생각해도 너무 신기한 노릇이었다.
그리고 신당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어 쉴 틈이 없이 손님을 봤다.
그녀는 굿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점만 보고 기도만 하였다.
그녀의 기도는 얼마나 영험하였는지, 그 당시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는 울산에 용한 무당으로 소문이 나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몰려드는 손님 때문에 그녀는 식사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신도들이 굿을 하지 않는 그녀에게 굿을 하라고 다고 성화를 부려 할 수없이 굿이라는 것을 처음 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굿과 기도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얻고 더욱 유명세를 탔다.
결혼 10년 동안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삼신기도를 한 후 임신을 하게 하였으며, 망해가는 여사장이 운영하는 기업을 울산에서 손꼽히는 기업으로 성장시켜 주었다.
또 잘못된 신내림으로 고생하는 어느 제자를 돈 한 푼 안받고 가리굿을 해주어 지금도 잘 불리고 있다. 그 가리굿의 대가는 담배 한 보루였다.
지금도 많은 신도들이 그녀 신당에 지극정성으로 다니고 있다.
그 중 한 신도는 처음 찾아올 때부터 그 가족들 모두가 사고 뭉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 부부의 시댁과 친정에는 많은 사람이 교통사고나 물에 빠져 죽거나 등등 사고로 죽었다.
그래서 그런지 여섯 살이 먹도록 아들이 말을 하지 못하였다.
말을 못할 뿐 아니라 기침만 하여도 귀에서 고름이 흐르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그 아들 때문에 그 집 아빠는 초상집을 아예 가지도 못했다. 아빠가 초상집만 가도 아이 귀에서 고름이 흐르기 때문이다.
이런 신도를 위하여 그녀는 매월 좋은 시를 골라 전국의 명산으로 기도를 다니며 지극정성을 드린 결과 11살이 되면 병이 없어진다는 공수를 받았으며, 그 공수는 어김없이 적중하여 그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귀에서 고름 흐르던 병이 완쾌되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런 저런 병으로 초등학교 4학년이 되도록 한글을 깨우치지 못했다.
모두가 걱정하였지만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장군님 공수가 중학교만 들어가면 공부를 잘할 것이라고 나왔다.
정말 그녀의 공수대로 신기하게도 중학교 들어가면서 공부에 취미를 붙이더니 3학년 땐 자기 반에서 2등이나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제 그녀는 그 아이를 일류대학에 보내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염검한 무당, 훌륭한 무당으로 울산에서 소문이 났다.
그리고 그녀는 신령님의 뜻이 불쌍한 이웃,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무당이 되는 것이란 걸 알기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고 있다.
또 신의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제자들에게도 훌륭한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그녀가 잘못된 신의 길로 힘들어 하는 제자들에게 많은 관심과 애착을 느끼는 것은 뺑덕이 어멈같은 신엄마와 악질 장사꾼 같은 무당, 마녀 짓을 하는 무당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굿을 하지 못할 때 인천에서 황해도굿을 하는 박수와 함께 굿을 하면서 그의 비인간적인 행태와 행포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신애기들에게 애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조금 굿을 잘한다고, 조금 더 많이 안다고 이리 저리 속여먹고 터무니없는 금전 욕심 부리는 것을 보면서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무당이 되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제자들을 보면 모든 것을 다 주려고 한다. 그 덕분에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불쌍하고 힘든 제자들을 보면 마음이 찡하다고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녀가 무당이 되기까지 다른 사람과 달리 너무 순탄하게 왔기에, 무병을 비롯한 온갖 고초를 당하고 무당이 된 사람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녀가 신을 받아 무당이 된지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흘렀다.
요즘 세태가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기는커녕, 물속으로 더 밀어 넣는 무당이 넘쳐나지만, 그녀는 처음 내림굿 할 때 신령님의 가르침인 초심을 잊지 말고 한 결 같이 늘 힘든 이웃들과 함께 할 것이며, 무당이 민족종교의 사제로서 이 땅에 우뚝 설 수 있도록 미력하나마 무당들의 인성을 바로 잡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김연리 : 당호 “장군당”
주소 : 울산광역시 남구 삼산동 1484-3 2층
연락처 : 010-4174-8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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