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목은 천지인 합일 사상의 시작
● 신목은 생산성과 희생, 영원불멸성의 상징
우리 상고사에 ‘신단수(神檀樹/우주목)’아래에서 한웅천왕이 배달나라를 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나무를 숭배하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 민족은 한웅천왕이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를 열면서부터 나무에 대한 외경심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외경심은 신목(우주목)이 되어 인간들에게 재앙을 막아주는 구실과 아울러 복을 주는 목신으로 존재하여 왔다.
시베리아를 비롯한 전 세계 여러 민족의 샤머니즘에는 신목이라는 우주목이 반드시 존재한다. 이 우주목은 우주의 중심 나무라고 믿고 있으며 신성시한다. 시베리아 샤먼들은 자작나무 꼭대기에 오르는 샤먼의식을 거행한다.
나무가 신목으로 존재하게 된 이유는 나무는 하늘로 솟아 있기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다른 존재 영역으로 이어지는 통로나 입구로 여겼기 때문이다. 신들이나 저승의 존재들은 이 신목을 타고 땅 아래로 내려오거나 아니면 산 자의 영혼들은 그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연결고리로 생각하였다. 즉, 신이 강림하는 통로이기도 하고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 나무의 잎 · 꽃 · 과일을 맺는 힘을 주술적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런 사상이 나무에 대한 외경심으로 나타나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며, 우리나라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당산나무나 서낭나무가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수목숭배는 우리 무속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종교에도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기독교에서 나무는 예수를 상징하는 생명나무(生命樹)가 있다. 생명수는 창세기에 나오는 어구이며, 야훼가 에덴동산 한가운데에 심은, 불로장생과 같은 영원한 삶을 주는 열매를 지닌 나무를 가리킨다. 야훼의 생명나무와 더불어 지옥을 상징하며 악령과 함께한다는 ‘선악수(善惡樹)’,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는 ‘무화과’, 하느님의 생명과 축복 풍요를 의미하는 ‘올리브’, 하느님의 뜻을 이루도록 해준다는 의미를 가진 ‘포도나무’가 나온다. 포도나무는 동이東夷의 창세기인 <부도지>에도 인류를 타락시킨 나무로 등장한다.
불교에서도 나무가 중요한 깨우침의 통로로 3대 성수(聖樹)라는 신수(神樹)가 있다. 3대 성수는 무우수(無憂樹), 보리수(菩提樹), 사라수(沙羅樹혹은沙羅雙樹)이다. 무우수는 부처님이 룸비니 동산의 무수 나무 아래서 탄생하였으므로 이를 상징하며 ‘보리수는 부처님이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깨달음의 상징이 된다. 사라수는 중인도의 쿠시나가라 부근에서 번성했던 나무로 부처님이 이 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기 때문에 열반의 상징이 되었다.
켈트족의 드루이드는 떡갈나무와 지식을 결합한 합성어다. 그들은 오크를 신목으로 삼아 제사를 지냈으며, 오크를 깎아 만든 지팡이를 갖고 있다. 일본에서도 신목에 제사 지냈으며, 고대 앗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 왕(기원전 9세기) 또한 날개를 가진 원반상의 태양과 생명의 나무로 신성(神性)을 나타냈다. 나무로부터 신탁받고자 하는 행위나, 생활권에 성스러운 숲이 존재하는 것은 세계 어디에나 있는 일이다. 로마인들도 로마의 창시자 로물루스와 관계있는 거룩한 무화과나무를 숭배했으며, 그 나무가 시들면 패닉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이런 나무들을 모두 우주목 · 세계목이라 한다. 세계목은 신령이나 죽은 자의 영혼들이 최고신에게 도달할 수 있게 해주고 샤먼이 다른 우주적 차원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길목을 뜻한다. 고대인의 종교 체험에서 나무는 하나의 힘을 표상하는 존재로 인식되었고, 자연과 상징을 분리할 수 없었던 고대인의 심성에서 나무는 우주론적인 연관에 의하며 직관하였을 것이다.
나무와 유사한 형태는 사다리 · 끈 · 오색천 · 무명천 · 밧줄 등도 신령들의 세계로 여행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우주목은 그 자체가 신내림의 상징이다. 그 나무의 신성과 함께한다는 뜻이며 이는 나아가 영력의 상징을 의미한다.
우주목은 생명의 나무이다. 즉 생산성과 희생, 영원불멸성 등을 뜻한다. 샤먼이 나무에 오르는 것은 진정한 삶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우주적 통일성에 관한 그의 체험은 더욱 완전해진다. 우주목이라는 환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다. 창조적인 힘의 존재를 느끼고 풍요로운 생산과 성장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한국 무속에서도 신목은 하늘과 땅,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거룩한 곳이므로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져 우주목(宇宙木)의 의미가 있다. 단군신화에서 한웅(桓雄)은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 강림하여 개국하였으니, 신목 신앙은 한민족의 태초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신목에 대한 신앙은 산악신앙 및 천신강림(天神降臨) 신앙으로, 신이 우주목을 타고 내려오고, 인간이 우주목을 타고 승화의 과정을 밟는 것은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이 결합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지인 합일사상이다.
1919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거수노수명목지朝鮮巨樹老樹名木誌≫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 전체 신목의 총수는 940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신목의 종류로는 느티나무가 가장 흔하고 팽나무와 들메나무 순이었다.
신목은 그 위치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마을 어귀와 산속 두 곳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신목은 마을의 수호목으로 특별한 대접을 받는데, 서낭목 · 산신목(山神木) · 부군목(府君木) · 본향목(本鄕木) 등이 그것이다. 이들 신목을 위하여 매년 봄이나 가을에 정기적으로 마을굿이 행하여진다. 태만하여 그 굿을 올리지 않으면 벌로 재앙이 내린다고 믿어지고 있다. 동네의 치성을 드리는 신목이 암수 한 쌍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산속의 신목은 주위에 돌무더기를 쌓아 놓거나 돌로 제단을 마련하여두기도 한다. 서낭목이라 하는데, 수목의 가지에 포편(布片/베조각), 지편(紙片/한지조각), 오색백편(五色帛片/오색비단조각), 의편(衣片/옷), 모발(毛髮), 기혈器血(그릇에 담은 피), 전화(錢貨/돈과 재물) 등이 무수히 걸려 있다.
전화(錢貨)는 재리(財利)를 획득하기 위하여, 포편(布片)은 아동의 장수를 빌기 위하여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걸은 것이다. 상인은 재리(財利)을 얻기 위하여 짚세기의 작은 것 또는 상품을 거는 일도 있다. 오색백편(五色帛片)을 거는 것은 신랑 신부가 부모의 집을 떠나서 새집으로 옮겨갈 때 부모계의 가신(家臣)이 그를 따라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 한다. 만약 이를 막지 못하면 부모의 집은 망하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보편적인 신앙이다. 신부가 자기의 의복을 일편(一片) 찢어서 서낭당의 나뭇가지에 건다는 것은 부모의 가신이 그 이상 수행하지 아니하고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래 신목 신앙을 미신으로 여긴 기독교인들이 그 타파의 일환으로 마을의 신목을 베어버리거나 훼손하여 신목은 많이 줄어들었고,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반목을 불러일으킨 사례가 흔하였다. 그러나 신목은 아직도 많이 남아 신앙 되고, 신목 신앙은 한국사람들에게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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