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이야기

무당내력

愚悟 2005. 5. 19. 22:43

무당내력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가람문고본에 조선시대 무당에 대한 기록을 한 <무당내력(巫黨來歷)>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 “상원 갑자 10월 3일 신인이 태백산을 내려오시어 신의 가르침을 설하고 백성을 가르쳤다. 큰아들 부루가 어질고 다복하여 집집마다 땅을 택하여 단을 쌓고 질그릇에 벼와 곡식을 채워 짚으로 영을 짜서 덮는다. 이를 부루단지 혹은 업주가리라고 하였다. 매년 시월 햇곡식으로 채우며 떡과 과일과 술을 바쳐 기도를 한다. 기도할 때는 반드시 나이든 여인이 한다. 이를 무당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상고시대의 무당은 하늘에 제를 올리고 백성들에게 계를 가르쳐 교화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한인천제, 한웅천왕, 단군왕검 그 자체가 제사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을 검토하여 보면 무당이라는 공식적인 말이 부루단군이 돌아가시고 태자 가륵이 즉위하면서 백성들 사이에 일어났던 부루단군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났음이 확인된다.

  이렇게 부루단군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 영적인 힘이 생기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무당이 현재까지 이어온 무당이 아닌가 한다.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무당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우리의 무당을 불교에서 파생된 것으로 왜곡하기 위하여, “법우화상이 지리산 계곡에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계곡의 물이 불어나 그 근원을 알고자 천왕봉 꼭대기에 올랐는데 그 곳에서 성모천왕이라는 키가 크고 힘이 센 여인을 보았다. 그 여인은 하늘에서 인간 세계로 귀양 내려와 법우화상과 인연을 맺고자 물의 도술을 부렸다 하였다. 그리하여 성모천왕과 인연을 맺어 여덟 명의 자손을 두었는데 모두 무술(巫術)을 가르쳐 금방울과 부채를 쥐고 춤을 추고 아미타불과 법우화상을 부르며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무업을 하면서 무당이 되었다.”고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단군 가륵이 법우화상보다 훨씬 먼저 있었건만 불교에서는 자식이 아비를 낳았다고 우기는 것과 같이 우리의 무교를 변질 잠식하고 있다.

<삼한관경> 「본기 제4편」을 보면 “한웅천왕이 제사를 지내려 갈 때 풍백은 천부를 거울에 새겨 앞서가고 우사는 북을 치며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춘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풍백이 천부의 거울을 들고 앞서갔다는 것은 지금 무당들이 지니고 있는 동경으로 해석이 되며, 우사가 북을 치며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춘다는 것은 하늘의 신을 맞이하러 가는 사람, 즉 무당의 보조자라고 할 수 있다. 북을 치면서 주위를 돈다는 것은 지금 국악에서 여러 명이 소고를 치며 원을 그리며 도는 소고춤으로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성모천왕이라는 있지도 않는 여인을 만들어 법우화상과 혼인을 하는 것으로 각색을 하였다. 이것은 불교가 무교를 흡수하였다는 것으로 해석도 되고, 아니면 불교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하여 강력한 걸림돌인 무교와 불교가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즉 무불일체(巫佛一體)라고 말하면서 무교를 잠식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자꾸만 외부 세력에 의하여 변질된 무교는 현재에 와서는 무당이라는 말 자체가 천하게 느껴지고 무시하는 투로 들리게 되어 무당들도 무당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러나 무(巫)란 낱말을 풀이해 보면 무는 공(工)자에서 비롯되었다. 단군시대에 공공(共工)이라는 벼슬이 있었다. 공(工)은 일을 업으로 삼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즉 ‘숙달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공공(共工)은 하늘에 제를 지내고 하늘의 뜻을 전하는 일을 맡아 하는, 즉 단군왕검의 일을 대신 맡아서 잘 처리할 사람이란 뜻이다.

공공이라는 관직이 고려 때는 재상(宰相)으로, 후대에서는 대감(大監)으로 명칭이 변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후대까지 공공이라는 관직이 있었다. 이 공(工) 자에 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이 무(巫) 자이다. 공(工) 자에 들어간 두 사람은 즉 단군왕검을 대신하여 하늘과 땅에 제를 올리는 일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던 남녀 두 사람을 말한다. 즉 남무(男巫)와 여무(女巫)인 것이다. ‘남무’를 다른 말로 축(祝) 또는 격(覡)이라 전한다. 남자 무당인 ‘축’이 하는 종교행위는 지금 제사를 주관하고 축문(祝文)을 읽는 행위이다. 이것이 오늘날 법사라고 불리는 경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남자라는 것으로 증명된다. 또 이 행위에서 나라의 제를 지낼 때, 가정에서 차례를 지낼 때 지켜야 할 예절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여자 무당인 ‘무’가 하는 행위는 하늘에 원하는 바를 몸짓으로 표현하였는데 그것이 지금의 굿으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가 있다.

오늘날에도 무당들은 굿이 떨어졌다, 굿을 띄었다, 굿을 맡는다고 한다. 굿이 떨어졌다, 굿을 띄었다, 굿을 맡았다는 것은 하늘에서 무당에게 일을 맡겼다는 뜻이며, 굿을 띄고 일을 맡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문자는 임(壬)자가 된다. 여기서 우리 속담인 “소꼬리 잡은 놈이 임자”란 말이 나온다. 굿을 맡는다는 것은 곧 하늘로부터 천제를 지내는 일을 맡은 대리자라는 뜻으로, 임자가 나오고 임(壬)자에서 왕검이란 말이 나오고 이 말이 변하여 임금이 되었다.

신라 방언에 무당을 차차웅(次次雄)이라 하는데 차차웅이 제사를 숭상하고 신을 섬김으로써 그를 경외하여 불렀다고 한다. 차차웅(雄)을 무당이라고 하는 것은 신시 한웅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또한 단을 설치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므로 단군이라고 불렀다. 단군이란 하늘의 아들로써 신의 권한을 대신하는 사람이다. 이렇듯 무(巫)가 지니고 있는 뜻은 크고 엄숙하다.

무당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옛 기록을 보면 무당의 당 자를 무리 당(黨)자를 쓴 것을 볼 수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무당은 여러 명의 무당을 말하는데 즉 무함,무즉,무반,무팽,무고,무진,무례,무저,무사,무라 등 열 무당을 말하며 무함이 또한 최초의 신의(神毉)였는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 흔히 말하는 무당은 개인을 나타내는 말로서, 무당이라는 당(堂)자도 옛날 애는 집이라는 뜻이 아니라 바로 세운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 무당(巫堂)이라는 말은 하늘과 땅의 이치를 바로 세우는 사람, 즉 천신과 지신으로부터 천지만물의 이치를 백성들에게 바로 세우는 소임을 맡은 사람이 무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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