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彌勒)과 계불(禊祓)
우리는 미륵(彌勒)이라고 돌부처를 생각하고 그리고 불교의 미륵불을 생각한다.
미륵불은 미륵보살의 후신으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타날 미래의 부처라고 알고 있으며, 어떤 이는 드라마에 나오는 궁예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계불(禊祓)이라고 하면은 불교의 용어로, 중이 지켜야 할 모든 행검(行檢)을 나타내는 계(戒)와 같은 뜻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오랜 세월 불교의 영향력 아래 지내 온 우리들의 잠재의식에서 나온 것이지 진정 미륵이라고 일컫는 바위와 계불(禊祓)이라는 말은 우리 조상들이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불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신라 눌지왕 때 일본의 목도(木島)에서 순절하신 박제상(363~419)선생이 쓴 부도지 제 10장을 보면 「황궁씨가 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解惑)하여 복본 할 것을 서약하고, 무리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에 근면하도록 고하였다. 곧 장자(長子)유인(有因)씨에게 명하여, 인세(人世)의 일을 밝히게 하고... <중략> 황궁씨가 곧 천산(天山)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조음(調音)을 울려, 인세의 혹량을 남김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麻姑城) 회복의 서약을 성취하였다.」란 구절이 있다.
여기서 황궁씨가 천산에 들어가 돌이 되었으며, 그 돌은 길게 소리를 내어 기후를 회복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밝은 마음을 같게 하였다는 것을 알 수 가 있다.
여기서 우리 할머니를 비롯한 많은 조상들이 왜 산 속의 바위 밑에서 음식을 차려 놓고 정성을 드렸는가 하는 의문이 풀린다.
산속의 바위는 즉 마고 삼신 중 궁희의 후손인 황궁씨께서 해혹복본할 것을 서약하는 뜻에서 돌로 변하신 것이다.
그 당시 돌이라는 것은 고대문화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가 있다. 모든 생활 도구에서부터 건축물, 전쟁이나 사냥에 사용할 도구까지 모두 돌로써 만들었다. 또한 그 당시에 가장 신성시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즉 종교적인 상징물 역시 돌로써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황궁씨가 천산에 들어가 돌로 변함으로써 그의 후손들이 그때부터 천산의 바위로 변한 황궁씨에게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을 고하고, 그에 대처할 방법이나 앞으로의 행동에 대한 계시를 받아 오던 것이 일반 민중들에게 알려지면서부터 산 속 바위 아래서 정성을 드리는 행위가 생겨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산 속의 바위에서 정성을 드리는 것은 우리 민족의 최고(最古)의 조상인 황궁씨에게 인간의 참마음을 회복하여 해혹복본 할 것을 기원하는 정성을 드리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것을 불교는 미륵이란 이름으로 다시 포장을 하여 인간을 구제하기 위하여 미래에 나타날 부처인양 떠들고 있다.
분명 황궁씨는 인간세상의 모든 의혹을 모두 없애고 옛날 마고본성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해혹복본을 맹세하였다.
마고본성으로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바로 인간들이 참 마음을 회복하여 모든 사람이 근심 걱정 없이 건강하고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세상이 바로 불교에서는 미륵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바로 우리 최고(最古) 조상인 황궁씨가 불교에서 미륵으로 불리며 미래에 인간을 구제하는 부처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조상들은 외래 종교에 빠진 후손들에 의하여 그 종교의 신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계불(禊祓)이라는 말 역시 불교의 냄새를 많이 풍기고 있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불교의 계(戒)와는 전혀 다른 것이 우리의 계불이며, 계불에서 불교의 계가 파생된 것이라 생각한다.
계불(禊祓)이라는 말은 부도지 제 10장을 보면「유인씨가 천년이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계불(禊祓)을 전수하며 나오지 아니 하였다.」란 대목에서 처음으로 계불이라는 말이 나온다. 까막득한 상고시대 불교가 나오기 수 천 년 전에 계불이라는 말이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였던 것이다.
계불(禊祓)이란 소도(蘇塗)제천행사(神市, 朝市, 海市)를 지내기 전에 먼저 목욕재계하는 유습으로 아직도 우리 민족의 제사의식에 남아 있다. 또한 계불과 유사한 계욕(禊浴)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처음 나오는 곳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 나온다. 이것은 계불과 계욕이 비슷한 의미로 같이 사용되었다고 볼 수 가 있다.
계불은 수계제불(修禊除祓), 계사(禊事), 불제(祓除), 제불(除祓) 등의 말과 함께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박달나무에 신시(神市)를 열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의 일부라고 한다.
또한 계불 의식은 처음에는 종교적인 행사로 시작하였으나, 신시시대에 인간들이 어육(魚肉)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반성하고, 조상에 대하여 기른 공을 보답하기 위하여 희생제(犧牲祭)를 올리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희생제를 올릴 적에는 피에 손가락을 꽂아 생명을 성찰하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을 보답하게 하였는데, 여기에는 물체(物体)가 대신하여, 오미(五味)의 과(過)에 보상함으로써 재앙을 멎게 하려는 육신고충(肉身苦衷)의 고백이 있었다고 부도지를 해석한 김은수 선생은 말하였다.
이러한 의식이 전 세계로 전파되어 신에 대한 제사의식으로 행하게 되었으며, 또한 지구상의 모든 종교의식 및 인간들의 제사의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무교에서 하는 굿이라는 행위도 바로 계불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가 있으며 우리의 굿이 가장 전통을 지키고 있는 제사의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계불(禊祓)이란 말뜻을 한자어로 풀어 보면, 부정을 씻기 위하여 목욕을 하는 것이 계(禊)라 하였고, 부정을 없애기 위하여 푸닥거리하는 것을 불(祓)이라 하였다. 이 말은 계불이라는 말 자체가 부정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계(禊)는 목욕재계하는 것이고 불(祓)은 푸닥거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계불이라는 말 자체는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푸닥거리라는 뜻을 가진 말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무당들이 하는 굿은 바로 부정한 것을 소멸시키고 주위를 깨끗이 정화시킴으로써 신들을 기쁘게 하여 신의 도움을 받아내는 계불 의식이라 생각한다.
또 계불에는 계서(禊誓)의 뜻도 있다.
계서는 정복 민족에 대하여 피 정복민족이 항복하고 귀순할 때 목욕재계하고 맹세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의 굿이 바로 계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면, 굿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 민족 최고(最古)의 조상인 황궁씨에게 인간의 참마음을 찾아 마고본성으로 돌아가겠다는 서약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하겠다.
마고본성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잘못을 깨우치고 다시 옛날의 마고성 시대로 돌아가는 것 즉 해혹복본하여 처음 인간이 태어날 당시의 평화로운 시대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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