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이야기

무교의 꽃

愚悟 2006. 7. 16. 13:24
무교의 꽃


무당 집의 신당에는 반드시 한두 송이의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신의 강림 통로가 되는 신장대는 꽃을 이용하거나 대나무가지 등을 사용한다. 또 황해도 굿을 할 때 무녀들은 꽃으로 장식된 모자를 쓰며 동해안 굿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는 머리띠를 두르고 굿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머리도 맑아지고 신이 잘 내린다고 한다.

무교에 사용되는 꽃은 실제로 존재하는 꽃뿐만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꽃, 즉 상상화도 많이 있다. 무교와 꽃은 특별하고도 신성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어떤 교수는 자기의 저서에서 무당들이 꽃을 좋아하는 것은 사랑의 결핍이요, 애정의 결핍에서 나오는 무의식으로 남자를 그리워하는 상징물이라고 말도 되지 않는 헛소리를 지껄여 놓았다. 민속을 전공하지도 않고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무당 몇 명 만나서 무교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아는 무당 박사인 것처럼 매스컴이나 출판물을 이용하여 무당들을 매도하는 것을 보면 교수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꽃은 신의 창조물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한다. 또한 인간 사회에서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꽃에다 비유한다. 꽃은 아름다운 색과 자태, 그리고 그윽한 향기로 인하여 인간들의 마음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삶의 정취를 더욱 깊게 해 준다. 또한 꽃은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치르는 모든 경조사에 빠져서는 안 될 상징이 되었다. 꽃이 나타내는 가장 보편적인 상징은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에서는 번영과 풍요 그리고 존경과 기원의 매개물, 사랑, 재생, 영생불멸 등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무교는 그 어느 종교보다도 꽃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또한 무속에서 사용하는 꽃들은 종류도 다양하고 지역마다 명칭도 다르다. 그중에서도 수팔연과 살제비는 무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꽃이다. 실지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꽃이지만 오랫동안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서 무교적 사상을 대변해 왔다.

19세기 조선시대 난곡(蘭谷)의 <무당내력>에는 서울굿 그림과 함께 수팔연꽃이 등장한다. 감응청배, 제석거리, 별성거리, 대거리(상산거리), 호구거리, 조상거리, 만신말명거리, 신장거리, 창부거리, 군웅, 뒷전 순의 굿에서 수팔연꽃은 대거리에 사용한다. 이는 최영 장군을 위시해 황해도 평산 신장군과 임장군 등을 모시는 굿이기도 하다.

굿상에 올려진 계피팥편 위에 수팔연꽃을 장식하는데 원칙적으로 연꽃.모란꽃.매화.난꽃.동백꽃.다리화.도라지꽃.단풍잎 등의 식물과 나비. 무당벌레 등 곤충, 그리고 학. 백두조. 원앙 등 조류와 남극노인. 동자 선녀 등의 인물이 덧붙여진다.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수팔연꽃은 인간이 원하는 가장 기본적 욕구인 무병장수와 기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인식된다. 즉 나라의 태평성대와 부국강병, 개인적으로는 무병장수. 부귀. 자손번창 등을 상징한다.

수팔연꽃 못지않게 중요한 살제비(살잽이)가 있다. 재생과 환생의 의미를 띠고 있으며, 바리데기 무가를 보면 버림받은 공주 바리데기가 죽은 부모님을 살렸다고 해서 '바리데기꽃'이라고도 한다. 지노귀굿의 바리공주 사설에는 뼈살이꽃 . 살살이꽃 . 숨살이꽃이 등장하는데 이는 죽은 자의 뼈. 살. 숨이 살아나게 하는 재생의 의미다. 이른바 생명의 창조적 활동을 축원하고, 재생의 기원적 상징물로 삼는 것이다. 또한 신당에 바쳐진 꽃은 신당의 장식물로서 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신에 대한 인간의 존경심과 정성의 표시인 동시에 성스러움 그 자체로 신이 강림하실 장소가 되는 것이다. 즉 신과의 대화의 통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신당에서는 신당에 바친 꽃들이 무당이 질문을 하면 흔들리면서 그에 대한 화답을 하여 준다고 한다.

도당굿이나 부군굿 등 큰굿을 할 때에도 큰 서리화를 피워 높이 세워 두는 것은 신이 강림하시는 통로로 이용하시라는 뜻이다. 즉 신당이나 굿에 사용하는 꽃은 신이 강림하시는 통로 즉 신대(神竿)인 것이다. 솟대 ․ 서낭대 ․ 수릿대 ․ 신장대 ․ 혼대 등으로 불리는 이것들은 한웅천왕의 웅상이 변하여 된 것으로 생각한다. 굿상에 차려지는 지화는 신대의 변형으로 신이 하강하시는 장소를 나타내는 것으로 무교에서 사용되는 꽃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진오귀 굿이나 동해안 오구굿에 사용되는 꽃은 죽은 이의 혼을 불러들이는 매개체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오귀굿은 죽은 자를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하여 하는 굿이다. 좋은 곳이란 극락, 천국이라고 하는 근심 걱정없이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을 이야기 한다. 그럼 근심 걱정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파라다이스가 바로 마고삼신이 처음 살았던 마고성이라고 생각한다. 

서울 지노귀굿의 사재삼성거리에서 무당은 망자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사자'의 역할과 동시에 죽은 망자의 역할도 수행한다. 무당은 머리에 무명과 베를 반으로 찢어 새끼 꼬아 머리에 묶은 후 큰 가지꽃 두 송이를 꽂는다. 등에는 명태를 매는데, 이는 망자를 상징화한 것이다. 이 거리에서는 꽃의 의미도 이중적이다. 무당이 사자의 역할일 때 꽃은 망자를 모셔간다는 것을, 망자를 상징할 때는 이상세계를 뜻한다.

이렇게 무교에 꽃이 많이 사용되는 본질은, 꽃은 천지신명의 정기를 뜻하며 그것은 바로 자연의 정기인 것이다. 자연은 아름답고 생동하고 생성한다. 꽃은 여러 가지 빛깔과 연연한 자태를 지녔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요, 또 아무 것도 없는 무(無)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생명의 창조를 의미하는 생동이며, 꽃은 열매를 맺으므로 생성이라고 볼 수가 있다. 열매는 다시 씨앗으로 변하여 다시 꽃을 피우니 영생불멸 영원함을 상징하는 신과 동일체가 되는 것이다.

꽃은 삼한시대를 거쳐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까지 궁중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개선장군에게 하사하는 꽃,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꽂아 주는 꽃, 연회에 쓰는 꽃, 음식상에 장식하는 꽃 등 수없이 많은 행사에 이용되었으며 선화주사(왕이 하사하시는 꽃을 전달하는 역할), 권화사(꽃을 꽂는 것을 담당하는데 선화주사로부터 꽃을 받아서 꽃을 꽂을 대상자에게 꽂아 준다), 압화주사(꽃의 운반을 감독하는 사람), 인화담원(꽃을 가진 사람을 영솔하는 사람, 꽃을 거두는 사람) 등 꽃을 관리하는 관직까지 있었다. 또 조선시대에는 상화롱장(狀花籠匠)이라는 꽃을 전문으로 만드는 장인을, 제사 및 시호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관청인 봉상시(奉常寺)에 6명을, 토목․건축을 담당하던 선공감(繕工監)아래에 식탁을 장식하던 조화공(造花工)인 상화롱장(狀花籠匠) 4명이 배속되었다고 한다.

화공은 꽃 일에 들어가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초상집 방문이나 합방 등 부정한 것을 삼가고 소찬음식으로 치성을 드리고 작업 중엔 누린 것과 비린 것을 금하고 바깥출입도 삼가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였다고 한다.

고려 연등회나 팔관회, 조선의 사신접대의례인 연조정사의(宴朝正使儀)나 진찬의궤(進饌儀軌) 등에는 수십 가지의 꽃들이 등장을 한다. 이렇게 옛날부터 우리들의 경조사에는 반드시 꽃이 사용되었는데 모두 사랑의 결핍과 이성을 그리워하는 뜻은 결코 아니건만 유독 무교에서 사용하는 꽃을 가지고 사랑에 굶주린 여인들이 남자를 그리워하는 상징이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람은 다시 나와서는 안 될 것이다.

무교에 사용되는 꽃의 진정한 의미와 뜻을 바로 알고 서사무가 속에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안다면 무교를 비하하고 무당들을 얕잡아보는 이런 말은 안 나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고 아낄 줄 아는 현명한 문화국민으로 거듭나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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