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진정 잘하는 굿은 어떤 굿인가?

愚悟 2006. 10. 13. 22:16

진정 잘하는 굿은 어떤 굿인가?

 

 

 

어떤 일이든 잘한다는 의미는 능수능란하게 자기가 맡은 일을 잘 한다는 뜻일 것이다.

또 자기만의 개성을 살려 독특한 멋을 내는 것 또한 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무당들은 무속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눈에 들기 위한 굿을 하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무당으로서 굿을 제법하고 소위 무당들 말로 잘 불린다고 하면 무형문화재에 대한 욕심을 내게 된다. 또 그러한 무당의 행사나 진적 때는 문화재 관련 학자를 비롯하여 많을 땐 10명이 넘는 학자들이 몰려다닌다.

그러다 보니 그 굿을 보고 난 뒤 학자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움직여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학자들의 눈에 드는 굿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다.

굿거리에 대한 자신의 자존심과 무당으로서의 역할을 다 잊어버리고, 문화재에 눈이 먼 무당들은 학자들의 조언을 받아 그 굿이 지닌 특징이나 자신의 장점 등을 살리지 못하고, 춤사위나 동작들이 예쁘고 보기 좋게만 하려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학자들이 보통 굿을 잘한다고 하면 목청이 좋고, 춤을 잘 추고, 재담이 좋고, 조상굿 할 때 제가집 잘 울리는 무당이라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를 한다면 능수능란하게 별비를 잘 뜯어내는 무당도 굿을 잘하는 무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굿을 잘하는 무당은 달라질 수 있다.

무용을 전공한 사람들은 춤 잘 추는 무당을 보고, 국악을 전공한 사람은 목청이 좋아 소리를 잘하는 무당을,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은 만수받이를 잘하는 무당을, 연극인이나 재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익살스럽게 재담이 좋은 무당을, 또 어떤 사람들은 조상굿을 잘하여 제가집을 많이 울리는 무당을 굿 잘하는 무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굿을 보는 사람이 자기의 주관적인 관점만을 강조하여 굿을 전통문화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굿은 우리의 전통문화이기 전에 하나의 제의 의식이다. 즉 굿을 하는 무당을 위한 굿이 아니라 굿을 의뢰한 제가집이 존재하고 그 제가집의 청탁을 해결해 줘야 한다는 아주 중요한 점이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이다.

물론 굿을 하면서 근본도 없는 마구잡이 굿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떤 의식에서든 형식과 절차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을 위한 굿이 아닌 일반 제가집 굿에는 '가리'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한다. 즉 '가리'란 그 집안의 사정을 둘러보고 제가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인을 찾는 것이다.

즉, 올바른 진찰을 하여 바른 처방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소위 사람들이 굿을 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을 무시한 외형상의 것들만 말하는 것이다.

절차와 형식에만 매여서 진정 자기 거리가 아니지만 급하게 무당의 몸에 실리는 제가집 조상의 소리를 무시해 버리는 무당이나, 춤을 잘 추고 소리 잘 하는 대만 열중하여 들어오는 조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무당들이 하는 굿이 진정 잘하는 굿이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요즘은 '가리'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굿을 하는 무당들이 많은 것 같다. 무조건 굿의 형식과 절차에 따라 멋들어지게 춤을 추고 소리만 하면 끝나는 것이 굿이라고 여기는 무당들이 많다. 굿은 신령들을 모시다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즐겁게 노시다가 돌려보내는 것  만이 굿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굿을 하는 제가집의 어떤 조상이 맺힌 한를 풀지 못하고 이승에서 떠돌고 있는가를 가려내어 그 조상들을 잘 받아 들여서 조상과 자손 간의 맺힌 고리를 풀어주고 구천에서 맴돌지 말고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상들이 자손들을 도와줄 수 있게 하여야 굿을 하는 의미가 있건만, 무당 자신만 신나게 뛰고 논다고 신들도 즐거워서 제가집을 돌봐 준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천지인 삼신을 모신 무당들이 신명이 실린 그대로 굿을 하지 않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가식으로 굿을 한다면 정성이 하늘에 닿을 수 없을 것이며 굿의 효험 또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굿을 전통문화적인 측면만 강조한다면 춤 잘 추고, 소리 잘하고, 재담 좋고, 제가집 잘 울리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큰돈 들여 모처럼 하는 굿을 무당 혼자 신나서 뛰고 놀고 울고 웃으며 끝낸다면 그것이 진정 굿이라고 할 수 없으며 굿을 한 사람들이 소위 굿덕이라는 결실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다시 말해서 진정 잘하는 굿은 제가집을 위하여 혼신의 노력으로 제가집의 사정을 해결해 주도록 신과 조상들에게 기원하는 무당이지 남 보기 좋은 춤과 노래만 있는 굿이 잘하는 굿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 지방마다 옛날부터 전해져 온 전통 굿이 존재한다. 그 지방의 굿이 화려하지 못하고, 그 지방의 굿이 멋들어지지 못하고, 그 지방의 굿이 사람들을 신나게 하지 못하더라도 그 지방의 전통 굿은 존중되어야 하고 보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황해도 굿과 서울 굿을 흉내 내고 있으니 엉터리 가짜 굿이라는 오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지방의 굿이나 좌경은 그들만의 특징과 멋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망각하고 외형상 화려한 것만 쫓아 흉내를 내다보니 엉터리 가짜 굿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정 잘하는 굿은 외형상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제가집의 어려운 사정을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굿으로, 제가집의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무당일 것이다. 이러한 행복감이 바로 이 시대에 무당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또한 굿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천지신명을 모시는 의식이고 절차란 생각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