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무당의 한계

愚悟 2006. 11. 4. 23:39

요즘들어 무교에 관심을 가지고 무당들을 가까이 한 것을 후회스럽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한다. 

또한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되지도 않는 일을 혼자 애 쓰고 있다는 생각에, 힘이 빠지고 지칠 떄는 내 삶에 충실하면서 조용히 살자라는 생각이 들곤한다.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에 <민족사문화콘텐츠>학과에 강의 나가면서 무교인들에게, 상고사는 무교인들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므로 강의를 듣기를 종용하여 몇사람이 강의를 듣고 있지만, 대부분의 무당들은 공부는 해서 무엇하느냐, 책은 봐서 무엇하는냐는 식이다.

무당은 굿 한자리 더해서 돈을 더 벌면 되지 공부는 해서 무엇하느냐는 것이다.

무당들이 스스로 하는행위와 그들이 모시는 신들의 역할과 신으로 모시게 된 경위, 그리고 상고사 속에서 무교와 무당들의 역할 등을 알지 못하고 그냥 점이나 보고 굿이나 띄면 된다는 무식한 생각들로 가득찼다.

 

무당으로서 굿을 하거나, 각종 의식 때 사용하는 경문이나 방법 등도 중요하지만, 무당의 근원과 정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무당들은 돈 되는 일 외엔 하지 않으려는 그런 생각들이 지금 이 시대에서도 무교는 미신이라는 인식과 무당은 돈만 아는 무식한 집단이라는 소리를 듣게되는 것이다.

금년 봄에 내가 잘아는 단체, " 목사도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여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시민단체인 <종교비판실현시민연대> 라는 곳에서 오랜세월 우리 민족이 믿어 온 무교를 정식으로 문광부에 종교로 등록하여 보라고 하였다. 자신들이 뒤에서 적극 힘을 보태주겠다며, 무교의 발전을 위하여, 무교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과 잘못괸 시각들을 시정하기 위하여 꼭 해보라고 하였다.

이 일은 평소에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이다.

종헌, 종법을 민주적으로 만들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하다가 문득 회의를 느낀다.

과연 무교가 정식 종교가 되면 잘 운영될 것인가?

종교가 되면 누가 종정을 맡을 것이며, 무교인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있을까?

기존의 수많은 무속단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교인들의 외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등 수많은 생각에 그만 주저하게 되었다.

그러나 <종비련>에서 진행상황을 물으면 자꾸 재촉하지만 나의 답변은 무교의 흐름을 모르는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 외에 마땅한 답변이 없다.  

아무리 무교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고 한들 아직까지 무당이라면 한번 더 쳐다보는 시대다.  

무당의 자식이라면 그러느냐고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시대다.

아직까지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무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들, 무교는 미신이라는 고장관념을 깨트리기에 무당들의 노력이 부족하다.

이러한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인식과 편견을 시정하고 무교를 바르게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무교인 스스로 배우고, 깨우쳐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떻게든 돈만 벌고 잘 먹고 잘 살 수만 있으면 무슨 소리를 들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 자식까지도 언제까니나 무당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멸시 받을 것이다.

언제까지 무당이라고, 무당 자식이라고 멸시받고 손가락질 받을 것인가?

개신교의 목사와 그의 식구들은 당당하게 목사라는 직업을 밝히지만, 무당들은 가급적이면 속이는 것은 우리 스스로도 떳떳하게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처럼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지내면 영원히, 몇 백 년이 지나도 무당들은 손가락질 받을 것이며, 우리의 사랑스런 자식들은 어머니,아버지의 직업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숨길 것이다.

수많은 무교인들이 많은 이웃을 위하여 아픔을 같이하고 함께 나누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무당들은 탐욕스럽고, 무식하고, 아집으로 똘똘뭉친 귀신들린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하루빨리 무교와 무당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들을 불식시키기 위해선 무교인 개개인의 자질향상과 함께 많은 공부와 뼈를 깎는 아픔과 깨우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마음이 무겁고 허전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