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한국기독교의 성장 뒤에는 무교가 있었다.

愚悟 2006. 11. 4. 23:56

한국기독교의 성장 뒤에는 무교가 있었다. 

                                     

 


한국의 기독교는 이 땅에 들어온 역사에 견주어 봐도 너무나 짧은 시간에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다. 

어떻게 기독교가 이 땅에서 뿌리 내리고 성공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성공 뒤에서 정말로 진실 된 목회자의 모습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위정자의 비호와 미군을 등에 업고 거침없이 교세를 확장한 결과라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부가 비호를 하고 미군이 있다고 한들 국민들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데 순진한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쉽게 기독교에 심취하고 빠져 들었다.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외래종교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전통관습과도 대치되는 행동을 강요하는 기독교에 빠져드는 이유를 난 우리 민족이 수천 년 간 믿고 지켜온 무교의 영향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전통신앙인 무교는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삼신으로부터 시작하였다.

무교는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자리 잡으면서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에게 생활의 지혜를 제공함과 동시에 삶의 그 자체가 되어 왔다.

우리 무교의 기본 사상은 생생지생(生生之生)과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는 우주의 대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생생지생이란 말은 우주의 모든 사물에는 생명이 있으며 그 생명이 있음으로서 또 다른 생명이 살아갈 수 있으며, 그 결과 또 다른 생명이 살아갈 수 있다는 우주의 대 원칙인 셈이다. 즉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서 또 다른 네가 있는 것이라는 삼위일체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또 접화군생은 모든 만물과 함께 화합하여 더불어 잘 살아간다는 말이다. 이러한 무교 사상에 수천 년간 길들여진 우리 민족은 외부의 그 어떤 종교가 들어와도 배척하지를 않았다. 불교가 그랬고 유교가 그랬듯이 그 어떤 종교라도 이 땅에 들어와서 무교와 어울려 자기들만의 독특한 형태의 종교를 만들어 갔던 것 이다.

개신교도 역시 이 땅에 들어오면서 전통관습과 부딪치는 많은 부분들이 있었지만 앞서 들어 온 천주교와는 달리 점령군과 위정자의 비호아래 생생지생, 접화군생 이라는 대 우주 원칙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 선량한 우리 국민들을 속이고 기만하여 그들의 조상인 예수 앞에 노예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땅에, 아니 무교의 대 원칙인 생생지생과 접화군생이라는 정신이 없었다면 개신교에 이 땅에 들어와 과연 지금과 같은 교세를 확장할 수가 있었겠는가?

무교를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수천 년 살아 온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이 안계셨으면 지금의 개신교가 존재 할 수 가 있었겠는가?

그러면서도 개신교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 담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어려 있는 무교를 미신이라고, 일본 강점기 시절에 제국주의자들이 사용하던 낱말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매도하고 있다. 또한 무교는 개신교의 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므로 마귀를 모시는 사탄의 집단으로 매도하면서 폄하하고 배척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게 무교를 타 종교에 비하여 더 열심히 매도하고 배척 하는 대는 개신교의 행태가 무교의 기복적인 행태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과연 무교는 기복적인 신앙일까? 난 절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유인시대를 거쳐 한인시대에 우리의 조상들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행한 것은 하늘에 감사의 뜻으로 올리는 천제였다.

한웅 시대에 와서 참교(眞敎)라는 이름으로 삼신사상이 활짝 피워 소도를 비롯한 무교의 근간이 되는 많은 형상과 이론이 정립되었다.

이후 단군 시대로 넘어와 부루 단군이 붕어 한 후 그의 업적을 기리고 찬양하기 위하여 흙으로 단을 만들고 옹기 속에 햇곡식을 넣어 올려놓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이 옹기를 부루단지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일명 업주가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기도하던 여자들 중 늙은 여자들이 자연스럽게 영적인 힘을 얻으면서 제사장 겸 통치자로써의 무당이 아닌 민간인 신분인 최초의 무당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긴 최초의 무당들은 인간의 나약함을 보완하기 위하여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유․무형(有․無形)의 존재 즉 자연의 힘에 대하여 간절히 기원하므로 인간에게 초복축사(招福逐邪)를 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고 하여 이것만으로 기복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기복적이지 않는 종교가 없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개신교는 불교나 무교 등 어느 종교보다 더 기복적인 신앙이라고 난 말하고 싶다.

개신교가 개인의 행복과 사후의 안락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 외에 이 민족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제대로 한 것이 뭐가 있는가?        

우리 무교는 일제강점기에는 흐트러진 민족의 마음은 한 곳에다 결집시킬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충실히 하여왔다. 그 결과 총독부는 굿을 하면은 반드시 주재소에 신고를 하게하여 미신을 조장한다는 명분아래 무당들을 잡아가곤 하였지만 그 내막은 다른 곳에 있었다.

즉 마을굿 등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그곳에서 굿을 통하여 화해동심(和解同心)과 해원상생(解寃相生)이라는 덕목이 한곳으로 마음을 결집하게 되고, 그렇게 결집된 마음이 뭉쳐 반일 감정으로 번질까 두려워, 미신운운하며 굿을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무교가 절대적으로 기복신앙이라면 일제가 무당을 탄압하였을까?

한국의 개신교는 무교와 무당들의 행위를 배척하면서도 그들이 행하고 있는 행동이나 무교의 좋은 점을 이용하여 무교의 덕목에 물들어 있는 선량한 우리 국민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한국의 무교가 오랜 세월 민족의 정체성을 읽어버린 위정자들로부터 탄압을 받아 발전하지 못하니까 개신교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이 땅에 들어 온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어찌 된 것일까?

한국의 개신교는 무교의 희생 아래 무교를 밑거름으로 삼아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종교이면서도 그것을 부정하고 무교를 배척하고 매도하는 것은 바로 개신교의 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또한 무교의 생생지생과 접화군생이라는 정신 즉, 모두가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모든 만물이 화합하여 서로 상생의 길로 가야 한다는 우주의 대원칙을 무시하고 오직 개신교만이 인간의 행복과 미래를 보장한다고, 자기들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여야 한다는 고립주의 사상을 가지고도 과연 개신교가 영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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