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하늘의 소리를 듣는 귀고리

愚悟 2006. 11. 10. 22:53
 

하늘의 소리를 듣기 위한 귀고리

 

 


여자의 대표적인 장신구라고 하면 반지와 귀고리와 목걸이를 들 수 있다. 요즘 여자들은 귀고리를 달기 위하여 귀에다 구멍을 뚫고 거기에 귀고리를 달고 다니곤 한다. 멋을 내기 위하여 자기 살도 과감히 뚫는 여자들의 용감함에 놀랄 뿐이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옛날 사극을 보면 여인들이 귀고리를 달고 있는 모습이 지금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첫째 크기도 다르거니와 귓바퀴에 끼워서 달고 다니질 않고 큰 귀고리를 귀에다 걸고 다닌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예부터 우리는 귀고리를 “단다.”라고 하지 않고 “건다.”라고 하였다는 것을 상기시키면 사극에 나오는 여인들이 큰 귀고리를 걸고 다니는 것이 맞는 듯하다.

그러나 귀고리는 단순히 여자들의 장신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귀고리라는 이름은 후에 생긴 이름이고 본디 귀엣고리라고 하였다.

이 귀고리의 역사에 대하여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363~419?)선생이 쓴 <부도지>라는 책의 제 6장을 보면

「백소의 무리들이 금단의 열매인 포도를 따먹고 난 뒤 백소씨의 사람들이 듣고 크게 놀라, 수찰(守察)을 금지하니 이는 또 금지하지 아니하되, 스스로 금지하는 자재율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열매를 먹는 습관과 수찰을 금지하는 법이 시작되니 (중략)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齒)가 생겼으며, 그 침은 뱀의 독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사람들의 혈육이 탁하게 되고 심기가 혹독하여져서 마침내 천성을 잃게 되었다.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오금이라 함은 태양 속에 있는 금을 말하는 것이고 토사는 달 속에 있는 모래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여기서 오금이 토사로 변하여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으니 오금이 바로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간의 밝은 영안과 맑은 마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즉 천부의 본음, 즉 하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하여, 인간들의 잘못으로 토사가 되어버린 오금을 대신하여 귀에 고리를 달고 하늘의 소리를 들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 귀엣고리는 인간의 본성을 일깨워주는 천부의 본음을 들을 수 있는 오금으로

다시 회복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귀엣고리가 오금으로 복원되지 못하고, 여자들의 장신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하늘의 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으로 여자들에 이어 남자들까지도 귀고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게 되었는지 모른다.

본디 귀고리가 변형되어 목걸이와 반지가 되었다는 것을 한자에서 찾아보면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귀고리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니, 귀고리를 달고 다니지만 인간의 본성을 잊어버리고 남의 것을 강제로 취하거나, 남을 속이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으니 귀고리가 오금이 되어 하늘의 본음을 듣는 날이 오기에는 까마득한 세월이 지나야 하겠다.

특히 무교인 들은 일반인들보다 더 많은 반지와 목걸이와 귀고리를 하고 다닌다. 술집 접대부도 아니건만 그들보다 더 진한 화장에 손가락마다 반지를 끼고, 목을 죄듯 목걸이를 칭칭 감았으며, 또한 손목에는 죄인이 차는 수갑모양 팔찌를 차고, 귀에는 어김없이 귀고리를 달고 다니는 모습이 중죄인이 외출한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이러한 모습은 하늘의 본음을 듣기 보다는 자신들이 저지른 업보를 스스로 몸에 짊어지고 다니는 듯 한 형상이다.

삼신을 모시고 민족종교 사제로서 천부의 본음을 듣고 인간들에게 깨우침을 주어 심신의 뜻인 해혹복본(解惑復本) 즉 마고성에서 쫓겨나야 했던 그 의혹을 풀고 다시 지상의 낙원인 마고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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