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이야기

일월다리,청궁다리

愚悟 2008. 12. 22. 17:09

일월다리, 청궁다리의 기원

 

 

굿청에서 신이 강림하는 통로로 흔히 사용하는 것이 무명천에 명두를 달아놓고 길게 늘어뜨리는 것으로, 일월다리, 혹은 청궁다리라고 한다. 이것은 내림굿을 할 때나 진적마지 또는 성주굿을 할 때도 반드시 하는 굿청의 모습이다.

이렇게 무영천에 명두를 하나 걸고 길게 늘어뜨리는 것은 바로 신이 이 무명천을 통하여 하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명천에 걸어 둔 명두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선 신체神體 즉, 신령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렇게 굿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무명천을 길게 늘어뜨리는 행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설화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하겠다.

이 설화는 해와 달의 생성에 관한 내용으로 일월신화日月神話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 측의 자료를 보면 이 설화가 일본의 건국신화와 관계있음도 알 수 있다. 또 태양을 맞이한다는 뜻을 지닌 경북 영일迎日이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

신라 8대 임금 아달라阿達羅 왕 즉위 4년 정유(A.D 157년)년 때의 일이다.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바다에 나가 해조를 따고 있는데 홀연히 바위 하나가 나타나 연오랑은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는 바위를 타고 온 연오랑을 왕으로 모셨다. 한편 아내인 세오녀는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바다에 나가 보았다. 남편이 바위에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그 바위에 올랐다. 그리고 세오녀도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남편을 만나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이 부부가 신라 땅을 떠난 뒤부터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아달라왕은 천문을 맡은 신하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 신하는 "해와 달의 정(精)이 우리나라에 있다가 이제 일본으로 갔기 때문에 이런 변괴가 생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곧 사신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연오랑 부부를 귀국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연오랑은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하늘의 뜻이니, 어찌 홀홀히 돌아갈 수 있겠소. 그러나 나의 아내가 짠, 고운 명주를 줄 터이니 이것을 가지고 가서 하늘에 제사하면 해와 달이 다시 빛을 발할 것이오." 라고 말하며 그 비단을 주었다.

사신이 그 비단을 가지고 와서 하늘에 제사했더니 과연 해와 달이 옛날같이 빛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 명주를 국보로 모시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했고,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 하였다. 는 기록이 있다.

이 설화에서 보면 영일현 또는 도기야 라고 하였다는 말은 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는 들판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그러면 지금의 영일만에서 신라의 아달라(阿達羅) 왕이 세오녀가 짠 비단을 길게 늘어뜨려 태양의 정기가 하강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놓고 일월맞이 굿을 하였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즉 세오녀가 짠 고운비단 길을 타고 태양의 신이 양의 정情을 되찾아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설화와 흡사한 것이 일본설화에도 나온다. 바로 아메노히보코 설화다.

여기서는 아메노히보코가 8가지의 신물神物을 지참하고 나타났다고 한다. 그 신물을 보면 우리 무당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무구가 대부분으로, 칼, 방울, 옥, 거울, 등으로 일본천왕가의 대표적인 상징물이기도 하다.

삼국유사는 신교의 내용들을 불교로 덧씌운 부분이 너무 많아 진실한 우리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여기 나오는 연오랑과 세오녀는 그냥 바닷가에 살던 평범한 부부가 아니고 바로 태양과 달의 신을 모시고 있던 무당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기에 하늘에 비단을 늘어뜨리고 제사를 드리면 태양의 정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한다.

이렇게 하늘에 비단을 늘어뜨리고 굿을 하던 형태가 이어져 오늘날의 일월마지 청궁마지 굿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처음으로 천지신명을 맞이하는 내림굿이나 진적마지를 할 때 사용하는 일월다리와 청궁다리는 신이 하강하시는 통로이다. 그러니 지금 사용되고 있는 합성섬유인 오색천과 소창은 신이 강림하는 통로로는 격에 맞지 않으니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방색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는 오색천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불분명하다. 다분히 만물상의 농간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신령님이 하강하시는 길을 오방신장의 힘으로 깨끗이 청소한다는 의미와 사방팔방을 활짝 열어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니 그대로 두더라도, 소창이라도 흔히 부르는 천은 비단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 하늘에 비단을 늘어뜨리고 태양의 정기를 맞이하였던 연오랑과 세오녀에서 비롯된 일월다리, 청궁다리가 걸레나 기저귀감으로 사용하던 소창으로 한다는 것은 어찌 천지신령님을 맞이하는 태도가 불경스럽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내림굿할 때 사용한 일월다리와 청궁다리는 평생을 모시고 다니는 신의 물건이다.

그렇다면 좀 더 원형에 맞게 비단으로 천지신령님을 모셔야만 격이 맞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