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불제석三佛帝釋이란
무교신들 중에 삼불제석三佛帝釋이란 신이 있다.
이 삼불제석은 무교가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슬그머니 만들어 낸 신으로 본래는 삼신제석이다. 그 시기는 아마 고려시대 쯤으로 추축되는데 그 이유는 고려시대가 불교의 전성시대였기 때문이다. 불교를 국교로 삼고 모든 왕실과 귀족들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불교를 믿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무교의 삼신에다 불교의 옷을 입혀 삼불제석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 삼신제석을 삼불제석으로 호명하다 보니 삼신은 우리 무교의 신에서 사라지고 삼불제석만 존재하게 되었다.
삼불제석으로 부르면서 삼신의 모습도 본래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무가 역시 무교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불교의 냄새가 넘쳐나는 불교의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굿의 무가나 제석거리에서는 삼신을 삼불제석으로 호칭하고 있다.
서울굿 공수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제불제천은 삼불제석 아니시리~ ” 란 구절이 있다.
이 말은 제불제천諸祓祭天 즉, 모든 부정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행하는 굿이나 푸닥거리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미다. 란 말이다.
그럼 하늘의 누구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일까? 삼불제석이라고 부르는 바로 삼신제석에게 제사를 드린다는 뜻이다.
굿에서 제석이란 말의 의미는 불교의 부처가 아니고 바로 단군왕검으로 더 나아가서는 한인천제를 이야기 한다.
조선시대 난곡이 지은 가람문고본 <무당내력>의 제석거리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帝釋卽檀君聖祖 稱曰三神 제석즉단군성조 칭왈삼신
제석 즉 단군성조를 삼신이라고 한다. 는 말이다. 조선시대에 단군을 삼신으로 부른 것은 바로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에 모셔져 있는 삼신이 한인천제 한웅천왕 단군왕검인 관계로 삼신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단군왕검과 붓다인 고타마 싯달타는 시대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단군세기>를 보면 단군왕검은 신묘년인 BC 2379 5월 2일 인시에 아사달의 박달나무 아래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붓다는 단군왕검보다 훨씬 후대인 BC 463년경에 태어났다. 그러면 제석이라는 호칭은 누가 먼저 사용하였을까 하는 것이 분명하게 나온다.
제석이란 말은 단군으로부터 적어도 3000년 전 한인천제의 석제임釋提壬한인으로부터 나왔다. 이 석제임이란 말은 모든 일을 풀어서 끌고 가는 하나님이란 의미가 있는 말로, 제석은 바로 하나님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삼불제석은 당연히 삼신제석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 무신도 역시 불교의 옷을 벗겨 버리고 우리 고유의 옷으로 입혀야 하며. 간혹 삼불제석이 남성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도 여성으로 고쳐야 한다.
삼신은 마고와 궁희 소희를 말한다. 마고가 단성생식으로 두 딸인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가 동정녀를 예수를 낳았다는 것도 역시 우리 마고가 두 딸을 낳았다는 것을 모방한 것이다. 단성생식을 동정녀로 말만 바꾼 것이다.
이러한 삼신을 불교에서는 슬그머니 자신의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삼불제석이라고 하며 제석은 마치 불교의 용어인양 불교의 신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무교의 신인 삼신제석은 불교의 삼불제석으로 바뀌어 버렸다.
본래 무교에서는 삼신제석을 항아리 3개에 고깔을 씌워서 모셨다. 항아리는 여성의 자궁을 의미한다. 자궁은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곳이다. 즉 새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바로 십十구멍인 것이다.
삼신은 창조의 신으로, 새 생명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것을 탄생시킨 창조의 신이기에 항아리로 삼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무가에서 불교의 냄새를 지우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무가를 보면 중이 자주 등장한다. 중은 한인천제나 한웅천왕으로 바꿔야 한다.
또 서울굿의 불사佛師거리 역시 불사祓師거리로 바꿔서 불러야 할 것이다. 즉, 부정을 없애는 푸닥거리로 말이다. 그러나 서울의 불사거리는 다른 말로 천존거리라고도 한다. 해와 달 그리고 칠성을 모시는 거리다. 그러기에 부정을 없애고 칠성신에게 수명과 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굿에서 삼불제석은 삼신제석이나 마고삼신 또는 삼신상제로 명칭을 바꿔야 할 것이다. 또 제석거리란 명칭도 단군거리나 삼신거리로 부르는 것이 우리 굿의 본 모습을 살리는 것이며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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