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이야기

굿의 성패를 좌우하는 조상거리

愚悟 2009. 11. 14. 13:44

굿의 성패를 좌우하는 조상거리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가결혼식을 한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보기 힘든 굿이라 단숨에 가겠다고 하였다.

굿은 도봉산 입구에 자리 잡은 칠불암굿당에서 펼쳐졌다.

 

굿은 당주는 쌍문동에서 "청룡암"을 운영하고 있는 이후자(당63세)선생이다. 그리고 4명이 함께 하였다.

영가는 40살이 되어 후두암으로 죽은 남자였다. 이빨이 아파 병원으로 갔다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노모를 모시고 어렵게 고생하며 살다가 장가도 가지 못하고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너무나 한이 많았을 것이다.

 

노모는 살아서 고생만 하고 장가도 가지 못한 자식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영혼결혼식을 시켜주기로 마음을 굳혀 시작된 굿이다.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영혼결혼식이 아니라 바로 당주 이후자선생의 조상거리이다.

보통 굿거리는 12거리로 구성되어 굿이 진행된다.

 

그러나 그 많은 굿거리들은 모두 무당들이 모시는 신명들을 모셔다가 즐겁게 노시고 대접하여 제가집의 소원을 이루어달라는 뜻이 담겨 있다. 

즉, 엄격히 말하면 무당자신들을 위한 굿거리라는 것이다. 제가집의 금전으로 무당들이 모신 신명을 신나게 놀리고 대접함으로써 무당 본인뿐만 아니라 제가집도 잘 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굿판에서 제가집은 굿판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그러다 보니 굿판에 동화될 수가 없다.

 

무당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절하라고 하면 절을 하고, 공수를 주면 받고 하는 식이다. 

제가집이 감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동과 정성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굿거리중 큰거리라고 하면 이북굿에서는 칠성거리, 감응거리, 비수거리정도를, 서울굿에서는 불사거리장군거리 정도를 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이런 큰굿거리는 아니지만 그 굿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거리가 바로 조상거리라고 할 수 있다.

 

그 굿판의 성패 즉, 제가집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고 없고는 신명거리도 중요하지만 바로 그 조상들의 한을 풀어주어 한 풀고 난 조상들의 음덕을 받아서 제가집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굿거리는 바로 조상거리이기 때문이다.

조상거리는 제가집의 직계조상부터 4대 조상까지 전부 굿판에 불러서 죽기 전에 하지 못하였던 말, 살아생전에 듣지 못했던 자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에 남은 한을 풀어주어야만 조상의 음덕을 바랄 수 있고 그 덕분에 제가집의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무당들은 조상거리를 잘 하지 못한다.

죽은 조상들 즉, 직계부터 4대까지 무당 몸에 실어 넋두리를 구성지게 함으로써 제가집과 무당이 한곳에 뒤엉켜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하면서 속이 있는 말들을 다 풀어 나야만 그 조상은 가슴에 맺힌 한을 풀고 진정으로 자손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렇게 넋두리를 구성지게 하는 무당을 찾기가 보통 힘들지 않는다.

아니 조상들을 몸에 실어 놀 수 있는 무당이 몇이나 될까 의심스럽다.

그러니 모두들 조상거리만 되면 안 봐도 되니 그냥 가시라고 하면서 제가집을 돌려보낸다.

아니 자기 조상 만나고 싶어 굿을 하는데 조상거리는 보지도 못하게 하고 돌려보내니 그것이 무슨 굿이며 제가집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니 굿을 하고 난 뒷물이 흐리고, 제가집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뒷말이 무성해 지기도 한다.

수많은 굿거리 중 제가집이 직접 참여하고 알 수 있는 거리는 바로 조상거리다.   

조상굿을 멋들어지게 하여 제가집과 한바탕 껴안고 울고불고 하며 넋두리를 하였다면 제가집은 자기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다른 불평은 하지 않을 것이다.

 

왜? 굿판에서 자신들의 조상들을 만나 그동안 가슴 속에 맺힌 한 많은 이야기를 다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조상거리를 이후자 선생은 정말 잘하는 것 같다.

제가집을 비롯하여 이웃들과 함께 뒤엉켜 생전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은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훈훈한 광경이었다.

 

또한 영가로 변신한 무당의 넋두리에서 평소에 자주 하던 말과 말투, 그리고 자주 먹었던 음식 이야기 등이 흘러나오자 노모를 비롯한 이웃들이 모두 놀라워하며 더욱 더 통곡하는 모습은 정말 각본 없는 한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었다.

 

필자는 여기서 감히 단언하건데, 조상을 잘 싣지 못하는 무당은 무당 자격이 없다.

그러니 굿을 할 때 조상거리에 참여 시키지 않고 제가집을 가라고 하는 무당들은 조상을 실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굿을 할 때 제가집은 조상굿을 꼭 참여하고 난 뒤 굿판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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