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사三聖祠 이야기
구월산에 삼성사三聖祠라는 묘당廟堂이 있다는 것은 아는 사실이다.
그러면 이 삼성사가 언제 만들어 졌으며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
<단군세기>를 보면 마지막 고열가 단군께서 계해 58년 (B.C238년) 왕위를 버리고 입산수도 하시어 신선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열가 단군께서 입산한 산은 바로 황해도의 구월산이라고 한다.
김부식이가 삼국사기를 쓸 때 인용하고 참고하였다고 밝힌 신라의 최고학자인 최치원이 쓴 <제왕연대력>을 보면
『고열가 단군이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으로 화하여 하늘로 올라갔다.
아사달산은 바로 문화현의 구월산으로 '백악'이라고 한다. 나라 사람들이 그곳에 묘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니 바로 삼성사라고 하였다.
한인, 한웅, 한검을 일컬어 '삼신'이라고 하였는데 한검이 곧 단군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삼성사는 신라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고열가 단군이 산신이 되고 난 뒤 세웠다는 것이 분명한 모양이다.
조여적이 쓴 <청학집靑鶴集>은 조선의 선僊을 이어온 계보를 광성자廣成子로 시작하여 명유明由로 이어져 다시 한인 한웅 단군으로 이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부도지의 기록을 중심으로 우리의 선맥僊脈을 생각하면 마고삼신을 시작으로 하여 황궁과 그의 아들 유인 그리고 한인, 한웅, 단군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광성자와 명유는 바로 황궁과 유인을 숨기기 위하여 변형시킨 이름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삼성三聖이라 하면 바로 한인, 한웅, 단군 세 분을 이야기 한다.
이럴게 고열가 단군이 입산하여 산신이 되었기에 그곳에다 묘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구월산의 삼성사를 폐당하고 평양에 삼성사를 지어 옮기고부터 문화현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성종실록>을 보면 성종 3년 2월에 문화현에 괴질이 돌아 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민가는 텅비어 폐허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삼성사의 위력을 알 수 가 있다.
또 <문헌비고>에는 백악白嶽은 지금의 문화현이며 구월산의 본명은 궐산闕山인데 단군의 궁궐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궐산의 소리가 느리게 와전되면서 구월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나라에서 삼성제례를 기우제로 지내는데, 제관은 현관縣官이 맡았다고 하였다.
신주神主는 한인천제 신주는 남향으로 모시고, 한웅천왕 신주는 서향으로 모시고, 단군왕검 신주는 동향으로 모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조 세종 때 호조에서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에 무당에게도 업세業稅를 구리로 바치게 하였는데, 무巫를 속된 것이라고 하여 무당을 천민으로 추락시켰지만 세금은 양반 못지않게 많이 거둬 들렸다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에도 무巫가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금 내역을 보면, 국무당國巫堂은 9근, 전의 국무당은 8근, 송악松嶽무당은 8근, 덕적德積무당은 6근, 삼성三聖무당은 6근, 당무녀堂巫女는 2근, 무녀는 1근을 수납하도록 하였다.
그 당시 정승에 해당하는 정, 종일품들이 세금을 10근 내었고 말단 종8품은 8냥쭝으로 정해졌으니 국무당은 정일품보다 1근을 덜 내는 것으로 판서들과 맞먹는 세금을 무당들이 낸 것으로 수입이 만만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국무당이라 함은 나라의 굿과 치성을 담당하는 무당이었을 것이다. 또 송악무당은 최영장군을 모신 덕물산신당의 당주 무당을, 덕적무당은 덕적도 정상에 있는 천제단을 관리하는 무당이었을 것이다.
덕적도에는 단군시대 만든 것으로 보이는 제천단지가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삼성무당은 당연히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의 당주 무당이 될 것이다.
이렇게 삼성사에 올리는 제례를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삼성제례라고 하였다.
한인, 한웅, 단군을 성인으로 보고 三聖이러고 부르게 되었다.
통일이 되면 우리가 가장 먼저 가서 제례를 올릴 곳이 바로 삼성사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삼성사는 일제가 헐어 버렸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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