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기독교의 땅 밟기 만행

愚悟 2010. 11. 25. 12:37

기독교의 땅 밟기 만행

 

 

 

얼마 전 기독교 청년들이 봉은사 땅 밟기 모임을 가져 불교계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러나 봉은사뿐만 아니라 대구 동화사를 비롯하여 여러 사찰에서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은 철부지 젊은이들의 호기로 보기에는 너무 어처구니없고 조직적이다.

예전에 미국의 어느 목사가 교회를 짓기 위하여 땅을 구입하였으나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교회 건축 허가가 나지 않자 신도들을 모아서 그 땅의 주변을 돌면서 땅 밟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얼빠진 목사들이 예수에게 과잉 충성의 징표로 타 종교의 시설물에 무지한 학생들을 보내 사탄들이 차지한 이 땅을 예수가 점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면서 땅 밟기를 하였으니 과연 그들이 같은 한민족인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개신교 목사들의 사주에 의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젊은 학생들이 목사의 꼭두각시가 되어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들이 어디서 비롯되었으며 무슨 의미인지를 아는지 궁금하다.

 

과연 땅 밟기란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앙의식인가 묻고 싶다.

땅 밟기란 다른 말로 지신밟기다.

지신地神밟기란 바로 민족종교인 무교에서 터를 달래고 안정시켜 복을 기원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의식이다.

地神이 뜨게 되면 집안이 뒤숭숭하고, 사업장은 장사가 잘되지 않고, 새집을 지을 곳은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지신밟기는 새로 집을 지을 때나, 아니면 새로 장사를 시작할 때, 또는 새 터전을 마련했을 때 반드시 제물을 차려놓고 무당을 불러 지신에게 기원하는 의식이다.

 

많은 풍물패들의 마을을 도는 것 역시 그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땅의 신, 즉 지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기독교 청년들은 목사의 지시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자기들이 하는 행위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돌격대처럼 사찰로 찾아가서 만행을 저질렀다.

 

자신들이 한 행위가 그들이 그토록 귀신 모시는 집단이라고 매도하고 폄하하는 무속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하다.

비록 이런 행동뿐만 아니라 한국의 개신교는 무속의 변형종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목사들에 의하여 무속행위를 흉내 내고 있다.

철야기도가 그렇고, 통성기도가 그렇다. 또 토굴기도와 새벽기도 등 모든 기도의 행태는 무당들이 산으로 바다로 다니면서 기도를 하는 행태와 똑같다.

그들이 자랑하는 유월절 의식 역시, 동짓날 팥죽을 끓여 대문이나 벽에 뿌리면서 귀신을 쫓고 새해의 행운을 기원하던 우리의 풍습과 같이 양의 피를 대문에 바르고 있다.

 

또는 방언이 터진 신도들을 앞장세워 ‘예언의 은사’라는 미명 아래 교회에서 점을 봐주고 있는가 하면, 또 ‘신유의 은사’라고 하여 아픈 사람을 무자격자가 치료를 하고 있다.

그들이 치료하는 방법 역시 예전에 무당들이 귀신을 쫓을 때 사용하던 구타법, 경악법, 화공법 등등 방법들을 그대로 배워서 하고 있다. 그 결과 기도원에서 맞아 죽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 의료법은 대체의학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침이나 뜸 또는 기공, 안마 등으로 병을 치료하면 의료법에 저촉되어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교회는 제정일치 시대의 소도처럼 치외법권 지역이 되어 기도원이나 교회에서 온갖 악행을 자행하여도 처벌 받지 않고 있으니 대단한 배경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사법기관 역시 종교관계 사건, 특히 개신교와 관련된 사건은 가능하면 외면하고 싶어 한다. 교통경찰들의 말을 빌리면 교회차량들이 교통위반을 했을 때 순순히 면허증을 제시하고 범칙금고지서를 받아가는 개신교 사람은 없다고 한다.

또 교회 목사가 직접 운전을 하다 교통위반으로 적발되면 목사라고 신분을 강조하면서 봐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생떼를 쓴다고 한다.

목사가 언제부터 대한민국 법 위에 존재하는 자가 되었는가?

교회나 기도원이 언제부터 제정일치 시대의 소도처럼 치외법권지역이 되었는가?

 

무속에 “말세가 되면 풀잎까지 신이 내린다.”란 말이 있듯이 한 집 건너 교회가 생기는 지금이 바로 말세가 아닌가 한다.

그 결과 오만방자한 개신교 목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교가 기독교라고 헌법에 명시되는 그날까지 그들은 한 집 건너 십자가를 세우고 싶어 할 것이다.

이런 종교가 어찌 인류를 구원할 수 있으며 세계 평화를 외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을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개신교 목사는 이웃과 타종교를 사랑하기를 원수처럼하고 있으니, 그들이 죽어서 과연 살아생전 그토록 믿고 따르던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영혼은 구제 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기독교는 한자로 基督敎라고 사용한다. 이 말은 기초를 살펴서 바로 가르친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야기 하는 기초는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심성 즉, 삼신사상에서 비롯된 삼진인 선청후善淸厚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을 대할 때 가져야 할 덕목인 착하고 깨끗하고 후덕함을 바르게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기독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삼진사상을 부합하는 좋은 정신을 가진 기독교가 현재 보여주는 모습은 삼진인 선청후善淸厚와는 너무 거리가 먼 것 같다.

지금의 기독교는 인간을 망치는 악탁박惡濁薄 삼망에 빠져 ‘믿음 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선민사상에 빠져 스스로 인간의 본성을 무너뜨리고, 곳곳에서 전쟁을 일삼으며, 모든 인류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일에만 전념을 하는듯하여 같은 민족으로서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