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전쟁의 서막 무엇으로 해소 할 것인가?
개신교들의 사찰 땅 밟기로 시작된 불교와 개신교 간의 갈등이 진흙탕 싸움으로 확전되고 있는 듯 하다.
갈등의 원인은 개신교들의 선민사상과 타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 편협한 종교관에 있지만, 두 종교가 싸우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불교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한반도에 들어 온 후 민족종교인 신교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특히 신라의 영토인 영남지방의 저항은 감히 불교가 들어내 놓고 활동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 결과 신라는 고구려보다 155년 지난 527년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식화 되었다.
그리고 삼국이 불교를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인 왕권강화를 이룩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生生之生을 바탕에 둔 민족종교인 무교는 서서히 중심세력에서 밀려나 민중 속으로 파고들었으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쳐야 만 했다.
우리 속담에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 낸다.”란 말이 있듯이 굴러 온 불교가 박힌 돌 무교를 뽑아내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귀족종교로 인식되어 민중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였고, 그 방편으로 불교는 무교의 신과 의식들을 받아들여 무불습합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많은 설화들이 만들어졌으며 왜곡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연이 쓴 ‘삼국유사’다.
이렇게 1500여 년 전 박힌 돌을 빼내고 이 땅에서 스스로 박힌 돌 노릇을 하던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 온지 100년에 불과한 개신교에 의하여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머뭇거리다간 이 땅에 뿌리 내린 불교의 위세가 송두리째 뽑힐 지경에 이르자 두 종교 간의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그 갈등의 진원지는 영남지방이다.
영남지방은 신라시대 때 불교를 거부하였듯이 현재도 무교를 믿고 따르는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무불습합이 가장 심한 곳 역시 영남지방으로 무교인과 승려가 공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 불교가 가장 번창한 곳이 영남지방이다. 반대로 불교와 무교가 번성한 곳은 개신교의 교세가 현저히 약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이것이 종교 간의 갈등이 시작된 이유이다.
영남지방의 개신교 목회자들이 공격적으로 불교를 우상숭배로 매도하면서 巫佛을 함께 공격하고 있다. 이 갈등 한가운데는 지방단체장이 표심에 따라 갈대처럼 흔들린 것도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인의 정신에는 무교의 정신인 생생지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무교의 정신인 生生之生이란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정신이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에 그 어떤 종교가 들어와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함께 지내왔던 것이다. 그리고 외래 종교들은 민족종교인 무교의 정신과 사상을 패러디 하면서 이 땅에서 성장해 왔다. 그 결과 대한민국에 들어 온 그 어떤 종교도 무교화 되지 않는 종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러온 외래종교들은 스스로 고등종교라 칭하면서 박힌 돌인 무교를 배척하고 폄하하였다. 그들이 무교를 패러디한 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기독교는 무교의 변형종교가 아닌가 할 정도로 목사들은 무교인 흉내를 내고 있다.
지금 종교계를 시끄럽게 하는 땅 밟기란 희한한 이름도, 알고 보면 무교의 지신밟기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예언의 은사> <신유의 은사>란 이름으로 미래를 예언해주고 치병의식을 치루면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하는 은혜로운 행동이라고 미화한다.
개신교의 선민시상과 ‘예수 믿은 천국, 불신 지옥’이란 공격적이고 황당한 논리로 선량한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예수를 몰랐던 그들의 조상은 모두 지옥에서 고생하고 있을 것이다.
종교란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 그리고 도덕적 기준을 마련하는 잣대가 된다.
그러다 보니 종교 간의 갈등은 개인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비춰져 아주 심각하게 확대될 수 있다.
지금 세계가 종교 전쟁으로 하루도 편안 날이 없다.
그 종교 전쟁의 중심에는 항상 개신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다종교 사회로 진입하였다. 세계의 종교들이 대한민국에 다 들어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와 항상 분쟁을 하고 있는 이슬람교 역시 이미 들어와 교세를 확대하고 있다. 얼마가지 않아서 무슬림들의 숫자가 늘어 갈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불교와 기독교의 갈등 보다 몇 배 더 심각한 갈등이 표출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무 늦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에서 종교 간의 갈등을 해소 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종교인 무교를 육성하여야 한다.
언제까지 무교를 미신이라는 남의 시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무교의 정신인 생생지생을 실천할 수 있도록 무교를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민족종교인 무교의 정신인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생생지생을 종교지도자들이 실천한다면 그 종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 역시 남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마음들을 가질 것이다.
이렇게 국민 개개인들이 생생지생의 정신을 실천한다면 종교 갈등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인류를 구원하고 행복하게 한다는 고등종교들 간의 밥그릇 싸움에 정부와 국민들이 걱정을 하고 있다.
종교가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불안하게 한다면 존재할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종교는 각자의 옷을 입고 있지만 추구하는 가치는 다 같다고 생각한다. 남이 무슨 옷을 입었다고 공격할 것이 아니라 내 옷에 허물이 묻지 않았나를 살피고, 또한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성숙된 종교로 거듭날 때 대한민국은 종교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인 낭비를 해소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시작되는 종교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무교의 정신인 생생지생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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