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튀고 싶은 무속인은 먼저 공부를 해라

愚悟 2011. 1. 31. 01:00

튀고 싶은 무속인은 먼저 공부를 해라

 

 

인터넷에서 외롭게 무교의 근원과 사상, 그리고 정신을 이야기 한지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일종의 무교 계몽운동이랄까 뭐 이런 사명감으로 2000년 4월부터 열심히 인터넷에 글을 올리다 보니 처음 글을 올릴 때 보다 무교인들이 많은 깨우침이 있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최초의 무속칼럼니스트라고 스스로 자칭하여 <삼지창 칼럼>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다가 몇 년 후 <삼신할미의 무속이야기와 칼럼>이란 블로그를 개설하여 수많은 글을 올렸다. 그 후 다시 2009년부터 <조성제의 무속이야기와 칼럼>으로 개명하였으며 지금까지 800편이 넘는 글을 올렸다.

 

요즘은 무속 카페마다 칼럼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비판하고 무교 발전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가 무교인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고 생각하니 흐뭇하고 반갑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잘난 척하고 싶은 무속인, 인터넷에서 튀고 싶은 무속인들이 늘어나면서 무교가 가진 진정한 정신과 의미를 모르고 딴소리를 하는 무속인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작년에 <나무아미타불>이 가지는 본뜻은 무엇일까 하고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필자는 <나무아미타불儺巫阿彌陀巿>이 가지는 본뜻은 【헤아릴 수 없는 광명과 생명을 관장하는 삼신에게 귀의하기 위하여 무당이 지극정성으로 드리는 의식, 즉 굿】이라고 해석하였다. 물론 완벽한 해석은 아니지만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단초는 제시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교에 푹 젖어 불교에서 무교가 파생되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무속인들이 근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엉터리 글이라면서 필자를 비난하고 모독하였다.

 

마치 무교에서 불교의 옷을 벗어버리면 무교의 존재가 무너지는 것처럼 나무아미타불은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뜻이 맞다고 핏대를 올렸다.

또 그런 사람들은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쓴 <부도지>란 책까지 폄하하고 있다.

제야 사학계 또는 종교학계에서 필독서로 되어 있는 <부도지>를 기독교 창세기를 모방한 책이다. 또는 김시습의 징심록을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한 책이라고 하고 있으니, 창피한 생각에 누가 볼까 두렵다. 정말 무식한 소리다. 이래서 무속인들이 무식한 집단이라고 욕을 먹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부도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학자들이 늘어나는 마당에 <부도지>를 한 번도 정독하지 않은 무속인들이 이런 헛소리를 하는데 대하여 정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수없이 <부도지>에 근거를 두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해 온 필자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재야 사학자는 <부도지>를 밑줄을 그으면서 70번을 읽었다며 책을 보여 주는데 완전히 걸레 조각이었다.

필자도 <부도지>를 20번 가까이 읽었다.

지금은 서점에서 책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처음 초판을 200권 한정으로 찍었기에 1990년 초에는 <부도지>를 도저히 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국회도서관을 찾아 복사본을 구하였을 때는 너무나 기뻤다.

 

그때부터 정신없이 읽고 또 읽어 온 책이 <부도지>다.

그런 인연으로 <부도지>를 번역한 김은수 선생의 자제분도 몇 년 전 만나서 알게 되었지만, 이 <부도지>는 정말 위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도지>가 위대한 것은 그 어떤 책보다 무교의 근원과 존재 가치 그리고 사상과 정신을 잘 이야기 해주는 유일한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은 무속인들이 <부도지>를 폄하하고 있다.

 

징심록을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한 것이 <부도지>란다. 어찌 조선시대 김시습의 <징심록>을 보고 느낀 것을 신라시대 박제상이 <부도지>로 쓸 수 있단 말인가? <징심록>을 <정심록>이라고 하는 자체가 <부도지>를 정확히 보지 않았다고 명확히 말해 준다.

어찌 <부도지>를 기독교 창세기를 모방한 책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무속인은 무식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정말 무식하고 저질스러운 집단이 무속인 집단이다. 장사꾼으로 변질되어 돈만 밝히는 무속인들, 백 수십억씩 사기를 치고도 당당한 그 뻔뻔함에 멍게도 울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튀고 싶고 잘난 척하고 싶으면 제발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열심히 공부해서 무식한 무속인에서 당당히 민족종교의 사제인 무교인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필자는 작년부터 무속인과 무교인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무속인은 돈만 아는 장사꾼 같은 무당, 공부 안하고 잘난 척 하고 싶어 하는 무식한 집단, 말과 행동이 다르며 사제로서의 행동보다 술집 잡부처럼 저질스러운 행동과 치장을 하는 무속인 등을 이야기 한다.

 

무교인은 민족종교인 무교의 사제로서 올바르게 행동하고, 무교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뜻을 인지하고 그 뜻을 따르며, 몸과 마음의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불쌍한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무당이 무교인인 것이다.

그러니 무속인들은 구제불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한 무교인들이 많아지면 무교는 민족종교로 당당히 자리 잡을 수 있는 시기는 곧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며칠 전 KBS 소비자 고발 담당 PD와 인터뷰를 했다. 만물상에서 1,000원을 주고 구입한 부적으로 몇 십만을 받는 것은 사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2월 중에 그 부분을 소비자 고발에서 다룬다고 한다.

나는 무교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철학 그리고 무교 속에 살아있는 잃어버린 우리 상고사들의 흔적, 굿과 무당이 사회에 미치는 순기능 등 무교의 좋은 부분을 이야기하고 난 뒤, 그 부분에 대하여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라고 용서를 구하고 시정해야 한다고 인터뷰 했다.

 

부적하나도 제대로 쓸지 몰라 만물상에서 1,000원에 구입하여 몇 십만 원에 팔아먹는 악덕장사꾼 같은 무속인들은 각성해야 한다.

일반인들도 다 알고 있는 그런 장사를 계속하는 것은 사람들을 기만하는 사기로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으며, 또한 그 피해는 올바른 무교인들이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발 무속인으로 살지 말고 무교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돈을 보면 동공이 커지고 가슴이 벌렁거리는 돈이 미친 무속인이 되지 말고, 왜 무당이 되었는지 생각하고 진정 무교인의 길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무교인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속인들이여! 제발 공부 좀 하고 이야기 하자.

공부하면 영靈발이 떨어진다는 어리석은 소리는 하지 말고 무교와 관련된 좋은 책들을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튀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튀는 무교인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