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年이 보내면서
이 年도 어느 듯 떠나려고 보따리를 싸고 있다.
이 하얀 年은 팔자가 드세 낙찰계로 세계 금융을 거들 내어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동네 몇 나라의 곗돈을 태워주지 않고 나자빠졌다.
그렇다고 쫓아낼 수도 없다.
일 年만 살자 했으니 죽으나 사나 살아야 한다.
팔자가 센 年이지만, 나에겐 그래도 괜찮은 年이었다.
막상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가 되니 아쉽기도 하다.
가지 말라고 애원을 해봐도 더 이상 붙잡을 수가 없다.
이 年의 냉정함이 혹한이 되어 사람들을 추위 속에서 떨게 했다.
서민들의 돈을 거들 낸 흰 년이 떠나면 검은 년이 온단다.
사주단자도 넣지 않았는데 무작정 들이밀고 온다.
흔한 궁합도 보지 못하고 중요한 속궁함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아는 것이라곤 이름이 흑룡이란것 밖에 없다.
겉만 검으면 괜찮은데 속까지 검을까 걱정이 된다.
또 이 검은 년은 무엇을 거들 낼까 두렵기만 하다.
흰 년이 하얀 놈들의 돈을 거들 내었으니 검은 년은 남쪽지방의 농사를 말아 먹으려나 염려가 된다.
하여간 살기 싫어도 일 년은 죽었다 하고 살아야 한다.
오늘이면 흰 年은 영원히 내 곁을 떠난다.
계약기간이 끝났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 年과 사는 동안 가슴 아픈 일도,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살만한 年이었는데 하는 미련이 남는다.
잘가라 묘한 年아, 그래도 신묘한 뭐라도 있을까 기대를 했는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끝낸 몹쓸 년이다.
오늘이 흰 년과 마지막 밤이다.
마지막 밤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이 年이 나를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런 밤을 만들어 줘야겠다
그동안 수많은 年들이 살다 떠나갔다.
등쳐먹고 간 年, 거들내고 간 年, 뒤지도록 패고 간 년, 등 기쁨을 준 年보다 아픔과 고통만 준 年들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그 年들이 그리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인간은 속고 사는 것이라 한다.
다시 내 곁으로 다가 온 검은 年은 얼마나 속을 썩일까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그렇지만 새로 온 年을 거부할 수도 없다. 기쁘게 맞아해야 한다.
동해바다로 힘들게 기어가 새로 온 年의 면상을 보고 환호를 질러야 한다.
새로 온 年에게 잘 보여야 한다.
처음부터 잘못 보이면 사는 동안 힘들어진다.
새롭게 찾아오는 이 年은 그 무엇보다 지난 年들이 할퀴고 간 상처를 치유해주는 착한 年이었으면 한다.
부디 새 年은 모든 이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매일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행복한 年이 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는 모든 이들은 새 年과 궁합을 잘 맞춰 더 살고 싶어지는 이쁜 年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年 저 年 해도 옆에 있는 年이 최고라는 걸, 우리 모두 잊지 말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