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할미 이야기

壬辰年 흑룡 이야기

愚悟 2012. 1. 1. 07:02

 

2012년은 임진년이다. 임진년을 흑룡이라고 하는 것은 천간의 임壬이 북방北方과 검은색을 의미하므로, 흑룡이라고 하였다.

용은 우리 민족을 비롯하여 동양에서는 아주 신성한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

민족 종교인 무교는 용왕이라고 하여 용을 아주 신성시 하고 있으며 물이나 바다를 보면 용궁이라고 한다.

 

「단군세기」를 보면 부루단군이 호가에서 용가로 고치면서 그 때부터 용왕이 되지 않았나 하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용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용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용은 상상의 동물로써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많은 신화와 전설에 실제로 등장하며 또한 그 시대의 영웅적인 인물에는 반드시 용과 관련된 신화나 설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용은 권력의 상징으로, 벽사의 의미로, 그리고 불교에서는 호국의 화신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하며, 뱀이나 이무기 등이 여의주를 얻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기 위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용을 숭배하고 신성시 하는 사상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자학회는 용이란 상상의 동물을 처음 만들어 낸 민족은 중국이 아니라 바로 동이족이라 한다.

상고시대에 약초의 신이라고 부르는 <염제신농>의 딸인 <뉘조>의 이름에서 용이란 글자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뉘조>는 <누에의 신, 잠신>으로 받들어지는데 <뉘조>보다 <서릉씨>라는 이름이 식자층에선 더 많이 익숙해져 있다.

중국의 금문학자 <낙빈기>는 누에는 하늘에서 별(辰)이 되었다가 용이 되어 풍운조화를 마음대로 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누에를 하늘의 지렁이, 누에라는 의미의 천충(蚕)이라고 한다.

용이나 뱀은 동이족의 상징적인 동물로 그때부터 자리 잡게 되었고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신으로 추앙되기도 한다.

 

지금도 민족종교인 무교에서는 뱀을 칠성신으로 받들고 있으며, 해안지방에선 신라시대부터 사해제四海祭, 사독제四瀆祭라는 풍어를 기원하는 성대한 용왕굿이 탄생하게 되었다.

남쪽지방에선 유월유두날 풍년을 기원하는 용신제가 행해졌다. 또한 용과 관련된 대표적인 민속놀이가 바로 대전의 용독기 놀이와 홍성의 용대기 놀이이다. 용 숭배 사상이 민속놀이에서 잘 나나난 것이 바로 농악이나 사물놀이를 할 때의 움직임이 바로 용처럼 움직임을 형상화 한 것이다.

 

용은 권력의 상징뿐만 아니라 민중의 궁핍한 삶과 고통의 세월을 바꾸어줄 개혁적인 인물로도 표출되는데 이것이 바로 겨드랑이에 용의 비늘을 가지고 태어나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마는 아기장수의 설화다. 이 설화는 그 당시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 세력들에 의한 개혁세력의 좌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속어에 “용두질 친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소위 남성의 자위행위를 나타내는 말로써 남자의 성기를 용의 머리로 표현하고 있다. 성기는 생산의 근본이다. 남자의 성기가 힘이 없다면 살아도 죽은 삶이나 다름이 없다. 바로 용두는 힘을 상징하기 때문에 남성의 성기에 비유하여 이런 말이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용은 신성한 동물이기에 제왕을 상징하는 동물이 되었다.

진辰, 즉 용은 오행으로 토土를 의미하나, 물을 상징하기도 하여 가뭄이 심할 때는 용을 대상으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기우제에는 화룡제와 토룡제가 있는데 화룡제는 제단에 큼직한 용 그림을 올려놓고 지내는 기우제를 말하고, 토룡제는 커다란 용을 흙으로 만들어 놓고 지내는 기우제를 말한다.

 

이렇게 용은 물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조선 태종 때 심한 가뭄으로 태종은 내가 죽어서 용이 되어 비를 내리겠다고 하여 태종이 죽은 5월 10일경은 꼭 비가 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용은 상상의 동물로서 숭배의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 생활 주변에서 용과 관련된 그림, 조각, 형상 등을 흔히 볼 수가 있다.

 

옛날 사대부 집에서는 대문에 용과 호랑이 그림을 붙였다. 호랑이는 귀신을 쫓고 용은 복을 끌어 들인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문배 그림이라 하겠다.

문배란 문으로 들어오는 잡귀신을 쫓는다는 의미인데 문배 그림 중에서는 해태, 개, 닭, 호랑이, 등 네 가지 동물이 잘 알려져 있다.

 

용 그림은 용호도龍虎圖라 해서 호랑이와 짝을 지어서 대문에 붙인다. 동쪽에는 용을, 서쪽에는 호랑이를 붙인다. 이것도 좌청룡 우백호를 기준하여 붙이는 것이다.

용은 복을 주는 복신이기도 하지만 용龍, 봉鳳, 구龜, 린麟, 그리고 도깨비와 같이 5령五靈이라고도 한다.

 

용의 모습은 도깨비와 흡사하다고 단청을 하는 사람들이 말을 하듯이 왕방울 눈과 큰 입, 그리고 이빨 등이 꼭 같이 생겼다.

용의 몸은 구렁이 같이 생겼지만 온 몸에 비늘이 81개가 달려 있다고 하니 우연치고는 너무나 기막힌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81이라는 숫자는 바로 삼신의 사상을 한웅천왕이 81자에 담았다는 천부경의 숫자와 일치한다는 것은 용은 바로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용의 뿔은 사슴뿔을 닮았고 이마에는 박산博山이라 하여 공작 꼬리 같은 모양의 보주가 박혀있다고 한다.

용의 종류 또한 다양하여 늙은 잉어가 변하여 용이 된다고 믿은 사람들은 잉어 같은 용을 만들어 어룡魚龍이라 불렀다. 바로 이 어룡이 사찰에 매달린 목어라는 악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가 있다.

 

흔히 우리는 용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땅에 서리고 있는 용을 반용蟠龍이라고 한다. 반용을 그릴 때는 구름 배경 없이 몸을 구부린 모습으로 용을 그리게 된다. 또한 이마에 뿔이 없는 용을 이룡螭龍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무기로 알고 있다.

 

거북이가 용이 된다고 믿고 있는 구룡龜龍이라고 하는 용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용이 아니라 거북이를 용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구룡을 자세히 살펴보면 등껍질에다 임금 왕王자가 새겨져 있다. 이런 연유로 거북이도 용왕으로 모시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비석 받침돌로 용머리를 가지고 있는 거북이 즉 구룡의 형태로 많이 만들어 사용하였다.

 

또 말에도 용을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이 있는데 이것을 용마龍馬라고 하며 복희시대에 용마가 등에 팔괘도를 그려 가지고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마지막으로 용의 얼굴에 사슴 몸을 한 기린이라는 사슴용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몸집은 물고기 또는 짐승인데 머리는 용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상상의 동물을 구룡자九龍子라고 하는데 용의 아홉 아들이란 뜻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가 비희贔屓라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용인데 구룡과 같이 커더란 거북에 용머리를 하고 있다. 무거운 짐을 지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돌비석 받침돌로 쓰여 졌으며,

둘째가 포뢰蒲牢라고 하여 울기를 좋아 한다고 하여 종걸이로 사용되었다.

셋째가 폐한狴豻이라고 하여 힘이 세다는 이유로 옥문 위에 새겨 졌고,

넷째가 애자睚眦라고 하여 죽이는 일을 좋아 하므로 칼이나 창 같은 무기에 장식으로 새겨졌다.

다섯째가 이문螭吻이라 하여 망보기를 좋아 한다고 하여 지붕위에 기와로 쓰여 졌으며,

여섯째가 팔애叭애라고 하며 물을 좋아 한다고 하여 다리 장식으로 쓰여 졌다.

일곱째가 산예狻猊라고 하여 불을 좋아 한다고 하여 향로 뚜껑에 장식용으로 쓰여 졌으며,

여덟째가 초도椒圖라 하여 문을 닫는 일을 좋아 한다고 하여 문고리로 쓰여 졌다.

아홉째가 도철饕餮이라 하여 음식을 좋아 한다고 하여 가마뚜껑 같은 것을 장식하는데 쓰여 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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