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칼럼

진적이 가지는 의미

愚悟 2012. 12. 3. 16:53

진적이 가지는 의미

 

무당이 되고나면 누구나 일 년 내지 3년에 걸쳐 신령님을 대접하는 것이 진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왜 진적을 드리는지 진적의 의미와 목적을 모르고 무조건 신령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으로, 또는 무교인 본인이 잘 풀리지 않으니까 신령님께 용서를 구하는 의미로 진적을 드리는 예가 많이 있다.

진적은 진적과 진작 두 가지로 흔히 부른다.

 

진적은 한자로 진적進炙 또는 진적眞嫡으로 부르며 진작은 한자로 진작進爵으로 나타낸다.

진적進炙이라고 하면 구운 고기 등 많은 제물을 차려서 마고삼신을 모신다는 의미 또는 앞으로 나아가 친히 마고삼신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의미이고, 또 다른 진적眞嫡은 적嫡자가 가지는 의미가 정실 또는 맏아들이라는 의미가 있으니 마고삼신의 모시는 직계 부인 또는 맏아들이 삼신을 모시는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무녀는 신령님의 정실부인이라는 개념이며, 박수는 신령님의 맏아들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적嫡은 제사를 드릴 때 바닥에 까는 거적居嫡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으로 해석을 하면 신령님께 거적 위에 제물을 차리고 제를 드리기 위하여 거적 앞에 고개 숙여 굻어 앉았다. 라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진작進爵이라고 하면 술을 바쳐 전력으로 모시거나, 마고삼신을 모실 작위를 받은 사람이 전력으로 모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그러니 진적 또는 진작 어느 명칭으로 불러도 다 맞는 말이다.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신께 정성을 드리느냐에 따라 진적 또는 진작으로 부르면 되겠다.

 

이렇게 엄숙하고 신성한 진적이 요즘은 이상하게 변하였다. 진적이란 오늘이 있게 만들어 준 천지신명님에게 감사드림과 동시에 알게 모르게 잘못한 여러 가지를 진심으로 신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사제로서의 각오와 다짐을 다시 하여 현재 처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사제로서의 행하여야 할 책무를 충실하였는지, 오늘까지 사제로서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 1년 혹은 3년 동안 본인을 믿고 따라온 신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신령님의 축복을 기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진적이 가지는 의미가 크고 깊기에 진적을 준비하는 무교인들의 마음가짐은 비장하기까지 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진적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자신을 뒤돌아보고 반성을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또 이 진적을 통하여 한단계 성숙한 제자가 되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또 무녀가 모신 신명들을 재차 확인하고 제대로 들어오지 못한 신령님들을 다시 잘 받아 모셔야겠다는 각오 등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적에 들어가는 경비가 만만찮다. 

물론 일반 정성이 아니고 무교인 자신이 모시는 신령님께 드리는 정성이므로 많은 제물이 들어가고 참가하는 무교인 또는 여럿이 되다보니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

또 진적은 하루에 끝나는 굿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평소에 잘 모셔서 놀리지 못한 신령님들까지 꼼꼼하게 살펴서 모셔다가 다 놀려드리기 때문이다.

또 많은 신도들이 참여를 하기 때문에 공수를 주는 시간도 많고 또 신도들 중 무감을 서고 노시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진적을 드리면 신도들이 십시일반 금전을 모아서 도와준다. 또 진적에 초대받은 무교인들도 형편에 맞게 조금씩 부주를 한다.

 

그러나 진적을 제대로 하면 이런 주위의 도움으로는 어림도 없다. 어떤 무교인은 진적을 자기 돈으로 하냐고 반문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금전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진적이 무슨 자신의 정성이 되겠는가?

진적할 때 부주하는 것은 많은 금전이 들어가니 주변에서 조금씩 도와주는 의미이지 그것으로 진적비용을 다 충당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진적을 드릴 때면 신도들에게 과도한 경비를 부담시키는 무교인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하여도 큰 부담은 삼가야 한다.

 

무교인이 모시는 신령님이 거지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아 정성을 드린다는 것은 결코 신령님들이 좋아하시지 않을 것이다.

진적에 드는 비용 중 가장 큰 부담이 바로 무당과 악사들의 인건비로 우리 모두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진적에 참가하는 무당들은 평소 함께 굿을 하면서 친분을 깊은 무교인들이다.

그러면 평소에 함께 일하며 같이 벌어먹고 살았다면 진적 때만큼은 서로 품앗이로 몸으로 도와주면 어떨까 한다. 그냥 가기가 정말 신령님들이 섭섭하다면 전안에 올릴 쌀값 정도만 받아가도 진적을 드리는 무교인은 훨씬 부담이 줄여들 것이다.

 

또 악사들도 다른 굿은 몰라도 진적만큼은 함께 동참한다는 의미로 참사하면 어떨까 한다. 

지금까지 신령님 덕분으로 잘 살고 있으니 다른 굿도 아닌 진적만큼은 신령님들의 흥겨운 시간을 위하여 무료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동참하면 어떨까 한다. 사실 악사들에게 나가는 경비도 수백 만원이 훨씬 넘어가니 진적을 하는 무교인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의 무당들은 1년에 한 번씩 진적을 드릴 때면 신도들에게 음식과 금전을 나누어 준다. 일 년 동안 신도들 덕분에 신령님 모시고 잘 지냈으니 이날만큼은 신도들에게 재수와 운을 나누어 줌과 동시에 금전도 함께 나누어 줌으로써 1년 동안 무당이 신령님들의 도움으로 더욱 더 잘된다는 의미로 그렇게 한다고 한다.

우리도 굿판에 동참하는 무교인이나 악사들은 평소에 굿을 통하여 많이 벌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니 그동안 신령님과 무교인을 믿고 따라온 신도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따르는 신도가 없으면 무당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니 신도가 없는 무당은 무당이라고 할 수가 없다. 아니 무당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베트남의 무당처럼 우리도 진적만큼은 신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함께 나눈다는 개념으로 굿을 한다면 무교가 종교로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며, 무교인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달라질 것이다.

나도 진적 좀 해 봤으면 좋겠다는 어느 무당의 푸념을 우리는 그냥 흘려들어서는 절대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