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할미 이야기

나무이야기 1

愚悟 2012. 12. 12. 10:47

나무에 얽힌 이런 저런 사연들

 

우리 민족은 한웅천왕이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면서부터 나무에 대한 외경심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외경심은 신목神木이 되어 인간들에게 재앙을 막아주는 구실과 아울러 복을 주는 목신으로 존재하여 왔다.

그리고 나무뿐만 아니라 잎 · · 과일 등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는 순환과정을 주술적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무가 목신木神으로 존재하게 된 이유는 나무는 하늘로 솟아 있기에 하늘로 통하는 연결고리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 신이 강림하는 통로이기도 하고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여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수목숭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다.

특히 우리민족은 나무에 대한 외경심畏敬心이 대단하여 목신서낭이라 하여 서낭제를 지내기도 하는데, 현재 지방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는 당산나무, 서낭나무가 그 좋은 예라 하겠다.

 

나무를 신격화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수로부인을 빼앗아간 해룡海龍에게 버들가지를 꺾어 노래 불러 되찾았다는 기록이다.

또 벼락 맞은 대추나무에 벽사의 의미를 부여하여 부적을 만들거나 그 나무를 그냥 몸에 지녀도 나쁜 기운이 사라진다고 믿었다

 

제주도 우도에서 자란 소나무 또한 사귀邪鬼를 물리친다고 믿었기 때문에 해송으로 비녀나 칼자루, 단추 등을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녔는데 아주 비싸게 팔렸다고 한다.

집안에 금기사항으로 담장에 찔레나무를 심으면 호랑이가 다칠까 염려된다고 하였고, 복숭아나무는 조상의 영혼까지 쫓아 버릴까봐 집안에 심지 않았다.

자귀나무는 부부간의 애정이 더해진다고 믿었고, 엄나무는 나쁜 귀신을 물리치며 석류나무는 자손이 많다고 했다.

 

향 나 무

모든 제사와 무속·불교의 종교의식은 향을 사루며 시작된다. 향을 피워 초혼 · 강신한다.

신이 강림하여 좌정할 수 있는 순수공간을 만들고, 영혼이 향내 나는 곳으로 찾아오게 한다.

향의 냄새와 연기는 신과 통신하는 수단이다. 또 정화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씻김굿이나 송장 염을 할 때 반드시 향물로 씻어내고 또 염을 한다. 이승에서 미쳐 털어내지 못하고 묻어 따라온 모든 것을 씻어내는 의식이다.

 

이렇게 향물은 정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향물로 땅이나 사람 그리고 사물에 뿌리며 정화의식을 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초상 치른 가족이나 상가에 다녀온 사람은 몸을 깨끗이 하는 의미와 상가에서 따라 온 나쁜 기운 즉 상문살을 막기 위하여 향물로 목욕을 한다.

향은 악취가 심한 인도에서 가장 발달하였다고 한다.

향의 연기와 냄새가 가득한 공간은 신성한 곳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향의 냄새는 악취를 제거하므로 액과 부정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알렉산더대왕이 연인에게 향을 선물하기 위해 인도까지 진격했다는 이야기도 있듯이 그 시대에서는 향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향나무는 사철 푸른 나무로 잎사귀는 바늘처럼 뾰족하기에 사귀를 쫓는다고 믿었기에 사찰이나 무덤 앞에 향나무를 많이 심은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조상들은 피부병, 비듬, 백설풍, 습진, 무좀, 동토병과 주당살과 상문살喪門殺 등에 향나무를 이용하여 물리쳤다.   

 

한웅천왕이 하늘에서 3천의 무리를 이끌고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서 신시를 열었다.

신단수은 바로 향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단, 백단 등의 향나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하여 동굴 속에서 100일 동안 먹고 지낸 쑥과 마늘도 서양에서는 허브의 주요 향신료지만, 쑥은 여자에게 좋은 식물이고, 마늘은 남자에게 이로운 식물로 음양의 조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21일을 지냈다는 것은 여자의 월경주기로 한 달 중 가장 임신이 잘되는 기간 일주일을 나타낸 의미라고 본다.

 

고려시대 조직인 "향도香徒"는 후손들에게 향을 전해주기 위하여 국토의 신성한 곳을 찾아다니며 향을 묻는 일을 담당하도록 했다니 향에 대한 애착을 알 수 있다.

좋은 향을 만드는 일은 조선시대에도 계속되었는데 "향군사" 라는 전담병사까지 두어 침향沈香을 만드는 일에 전념하도록 하였다.

 

오 동 나 무

오동나무는 봉황이 내려앉는 나무라고 여겨 상서로움의 상징이었다. 또 우아한 선비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에 서당이나 집안 서재 부근에 심었다

우리 민족은 아들을 낳으면 선산에 소나무를 심고, 딸을 낳으면 텃밭 두렁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관은 소나무 관이, 장롱이나 거문고 통은 오동나무로 만들었는데 오동나무는 가볍고 물에 잘 젖지 않는 고급 목재였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아버지 상을 당하면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어머니 상을 당하면 오동나무나 버드나무 지팡이를 네모로 깎아 짚었다고 한다.

대나무는 둥글므로<> 하늘을 상징하고 하늘은 양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동나무나 버드나무를 사각형으로 깎아<> 사용하는 것은 땅, 즉 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또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고, 오동나무나 버드나무는 가벼워 벌레가 깔려도 죽지 않는다.

부모 상()에 작은 미물 한 마리도 죽이지 않으려는 지극한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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