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할미 이야기

동지날과 팥죽

愚悟 2012. 12. 20. 16:47

 

내일은 동짓날이다. 또한 마야력에 의하여 지구의 종말이 오는 날이라고 하여 지구촌이 떠들썩하다.

그래서 동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동짓날은 24절기 중 22번째 절기로 추분을 지나면서 밤의 길이가 길어져 음의 기운이 가장 센 날로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밤이 길고 낮이 짧다는 것은 태양의 정기가 죽었다가 3일 후 다시 살아나는 날이라하여 부활을 의미한다.

 

동지는 대설로부터 15일 후, 소한 15일 전 날이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음陰이 가장 센 날이지만 동짓날이 지나면 밤의 길이가 짧아지고 낮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진다.

 

이 말은 음의 기운이 약해지고 양陽의 기운이 강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날을 우리 조상들은 아세亞歲라고 하여 관상감에서 달력을 만들어 임금님에게 진상을 하면 임금님은 달력에 황장력과 청장력으로 구분하여 신하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풍습을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고 하여 단오 날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부채를, 동짓날에는 달력을 나누어 주는 것을 말한다.

 

마야력이 2012년 12월 21일 동지날이 마지막으로 되어 있는 것 역시 대주기의 마지막 날을 의미하는 것이지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어니다.

즉, 동지를 깃점으로 새로운 주기, 새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종말이라고 호도하며 혼란스럽게 하는 사이비 집단들이 재미를 보고 있다.

동지를 이용하여 부활을 상징하는 기독교가 태어나기도 했으니 동지는 여러 종교에서 많이 울려먹는 날이다. 

 

동짓날은 팥죽을 쑤는데, 팥죽 속에 들어가는 옹심이를 나이보다 하나 더 많이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하였다.

이 옹심이를 새알이라고 하기도 한다. 새알이라는 말은 바로 염제신농의 씨알이라는 의미로 신농의 후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새알은 우리가 무심코 말하는 ‘부랄’ 즉 불알로 바로 불의 씨로 염제의 씨라는 의미이다. 

로마에서는 이 날이 바로 <새터날리아>라고 불리는 토속종교의 축제일이다. 이 축제는 일 년 농사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농경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풍년을 자축하는 대규모 축제로 기간은 12월 7일부터 24일까지다.

 

또 <미트라교>에서는 의로운 태양이 다시 탄생하는 날로 여겨 축제를 벌였다.

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한 절기로 태양 황경이 270도 지점에 오는 때를 동지라 한다. 그러나 양력과 음력의 차이가 있어 동지의 음력날짜가 다를 때가 많다.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라 하고, 중순에 들면 ‘중동지’라고 한다.  20일이 지나서 동지가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동짓날에 붉은 팥죽을 쑤어 문과 벽에 뿌리며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물리치며 복을 기원하였다. 이것은 팥의 붉은 색이 바로 치우천왕의 기운을 나타내며, 치우천왕의 기운이 붉은 색으로 나타나 나쁜 기운과 역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힘을 지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팥죽을 쑤어 집안 고사를 지냈지만 지금은 그냥 팥죽만 쑤어 먹는다.

 

동짓날에 민간에서는 옹심이점을 차기도하였는데 팥죽 속에 들어 있는 옹심이를 꺼내어 화롯불에 올려놓으면, 그 열에 의하여 옹심이의 모양이 달라진다. 이 때 옹심이의 모양이 길게 늘어지면 아들을 낳고 동그랗게 오그라들면 딸을 낳는다고 하였다.

 

또 각 사찰에서는 사월 초파일 다음으로 큰 축일로 여겨 많은 신도들이 줄을 이어 절을 찾아 부처님께 정성껏 기도하고 팥죽을 먹기도 한다.

동짓날의 팥죽은 옛날 공공씨라는 사람이 재주 없는 말썽꾸러기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그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역귀가 되었다. 그 후 동짓날만 되면 이 역귀가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므로, 아들이 생전에 두려워했던 팥죽을 쑤어 역귀를 물리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형초세시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홍석모가 <동국세시기>에 인용됨으로써 민가에 널리 퍼졌다.

 

이 설화를 바탕으로 음력 11월 초순에 드는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면 안 된다고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쑤는 이유는 역귀가 된 공공씨의 아들을 물리치기 위함인데, 애동지에 팥죽을 쑤면 역귀가 된 공공씨의 아들뿐만 아니라 멀쩡한 다른 아이까지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이 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팥죽을 쑤었다고 역귀도 아닌 아이들이 다칠 수 있다는 논리가 맞지가 않다. 아이는 인간으로 역귀 즉, 귀신과는 다르다. 

또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아이가 태어나서 10살까지는 아이의 생명과 안전, 우환 등 모든 것을 삼신할머니가 관장한다고 믿어 왔다.

삼신은 우주를 창조하고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으로 인간의 탄생을 관장하시는 우리 민족 최고의 신이다. 이러한 삼신이 하찮은 팥죽의 붉은 기운에 밀려 아이를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집은 애동지 때 팥죽을 쑤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풀이할 수도 있지만 이 논리 역시 말이 안 된다.

 

또한 팥죽의 붉은색은 치우천왕의 기운을 나타내는 의미라고 하였다. 치우천왕은 삼신의 후손이다. 후손이 조상을 귀신으로 취급하여 물리친다는 말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논리는 다시 말하여 애동지에 팥죽을 쑤지 않는다는 것은 삼신도 역귀로 생각하여 팥죽을 쑤면 삼신의 기운도 물리쳐 아이들이 삼신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논리가 될 수 있다. 

 

이 말은 삼신을 역귀와 똑같이 취급하였다는 이야기로 중국의 논리에 우리 스스로 빠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아니면 조선시대는 스스로 우리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중화주의에 빠졌기에 이런 풍습이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언제부터 이런 풍습이 전해져 왔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고 문헌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1849년 홍석모에 의하여 <동국세시기>에 소개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동지팥죽은 아마 소중화주의를 표방하는 조선의 시대적 배경으로 탄생한 우리의 정체성을 상실한 풍습이 아닌가 한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을 능가하는 역사서와 민족사상을 기록한 사상서들이 전부 음지로 숨어들었다는 기록을 보면 민족의 최고신인 삼신을 폄하하기 위한 의도적인 풍습이든가 아니면 삼신이 누군지 조차 알지 못하고 삼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데서 시작된 풍습이 아닌가 한다. <형초세시기>의 기록을 맹신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다 같은 동짓날에 애동지라고 팥죽을 쑤지 않고 그냥 지낸다면 정말 역귀가 집안으로 들어와 아이들을 괴롭힐 줄 모르는 일이다. 

20세기 초 최영년崔永年은 <해동죽지海東竹枝>에서 동지 팥죽을 이렇게 노래했다.


“집집마다 쑤어 만든 팥죽 향기

 문에 뿌려 부적과 굿을 대신 하네

 오늘 아침 산귀신 모조리 쫓아 버리고

 양기 생기는 동지에 상서로움 맞이하네”


애동지라고 팥죽을 쑤지 않는다면 산귀신을 어떻게 다 쫓을 것이며 양기 생기는 언제 맞이할 것인가 묻고 싶다.

  

'삼신할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탄절의 단상  (0) 2012.12.26
크리스마스와 동짓날   (0) 2012.12.23
나무이야기 2  (0) 2012.12.13
나무이야기 1  (0) 2012.12.12
솟대와 오리   (0) 2012.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