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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의 한 점집. “꽤괭꽹꽹∼” 꽹과리 소리와 함께 오색옷을 입은 무속인이 한바탕 굿판을 벌이고 있다. 그 옆에서는 한 여인이 고개를 떨군 채 소리내 울며 조상신에게 빈다. “우리 남편의 바람기 좀 잡아 주세요.”
여느 곳과 다를 바 없는 점집의 굿판으로 보이지만 조상신께 바칠 제사상 위에는 ‘돼지머리’ 대신에 ‘밍크코트’가 제물로 올라가 있었다. 특히 밍크코트는 1700만 원짜리 최고가 명품 브랜드 제품이다.
주부인 김모(42) 씨가 이곳을 처음으로 찾은 건 2007년 봄. “아무래도 남편의 바람기가 의심된다”고 지인에게 털어놨고, 그가 소개시켜준 무속인이 바로 이모(여·49) 씨였다.
김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씨를 찾았고, 불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 번에 1000만 원이 넘는 굿까지 했지만, 남편의 바람기는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씨는 “다른 가족들에게까지 모질고 사나운 기운이 들러붙었다”, “굿을 중단하면 악재가 몰려온다”는 등의 말을 하며 김 씨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급기야 김 씨는 은행대출에 그치지 않고 동네 이웃에게까지 돈을 빌려 굿을 했다. 조상신을 잘 모셔야 한다기에 김 씨는 고가의 밍크코트와 보석 등 갖가지 ‘제물’을 사다 바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남편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참다못한 김 씨는 2008년 5월 굿 효험이 없다며 비용 반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씨는 오히려 김 씨에게 귀신이 들러붙었다고 겁을 줘 내림굿 명목으로 약 5000만 원을 추가로 뜯어냈다. 이런 식으로 김 씨는 2007년 3월부터 2008년 7월까지 45차례나 굿을 하면서 1억5000여만 원을 날렸다.
집안이 풍비박산날 위기에 이르자 김 씨는 그제야 이 씨를 고소했고,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 한상진)는 최근 이 씨를 사기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무속인 이 씨에게 이 같은 피해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 지금도 검찰에 추가 고소장이 계속 접수되고 있어 피해 액수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현일훈 기자 o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