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이야기

무속단체의 역사

愚悟 2013. 3. 31. 12:23

 

일본 동경대학 박사과정에서 무속 단체의 탄생과 현황에 관한 논문을 준비 중인 학생이 논문준비에 도움을 받고자 찾아 왔다.

지금까지 무속단체에 대한 관심과 조사가 없어 정확하게 몇 개의 단체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의 역량과 회원 수에 대한 정확한 조사보고서가 없는 가운데 동경대학을 다니는 제일교포 학생이 무속단체 현황에 대한 조사보고서로 박사학위를 준비 중이라니 무속단체에 대한 탄생과 소멸 그리고 운영방식에 대한 조사보고가 필요하다고 새삼 느낀다.

 

그러나 무속조직에 대하여 별로 아는 것이 없이 큰 도움을 주지 못하였지만 대강 정리를 해본다.

조선이 일본에 패망하기 전까지 서울에는 무당의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도가禱家4군데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사도가四禱家>라고 하였는데 사대문 밖에 존재하면서 무당들의 제의의례와 예법 그리고 춤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한다.

그 당시는 무당이 내림굿을 하였다고 아무나 굿을 하지 못하였으며, 반드시 <사도가>를 거쳐 교육을 받고 난 뒤 굿을 하였다고 한다.

 

4도가의 위치는 지금 회현동에서 남산을 지나 동작동까지 담당하던 <우수제도가>, 구파발 부근을 담당하던 <구파발도가>, 그리고 사하리라고 부르다가 <되넘>이라고 불렀던 미아리 고개 넘어 장위동 부근 <사하리도가>, 그리고 마지막 도가로는 정확하지 않지만 성안에 있었다고 하는데 경희궁 옆이라고 한다. 또 아현동에는 <산대도감>이라고 하여 산대놀이를 총괄하던 곳이 있었다고 한다.

도가의 우두머리를 패두霸頭 또는 도방禱方이라고 불렀는데 패두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사도가>가 지속되어 오다 조선이 일본에 패망하고 일본인들이 경신조합敬信組合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무당들을 관리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경신조합을 조직하여 무당들을 관리하면서 굿을 통한 민중들의 결집과 반일감정 등을 사전에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해방이 되고 난 뒤 반공의 국시로 삼는 국가의 정책에 따라 1955년 경 일제 때의 경신조합을 모방한 대한승공경신연합회大韓勝共敬信聯合會라는 무당 조직이 탄생하게 되었다.

 

초대회장은 반공검사로 유명한 오재도검사가 맡았으나 실제로 회장으로 활동은 하지 않고 조직을 만들고 명의만 사용하게 해 준 거 같다.

그 후 대한승공경신연합회는 손명진이가 잠깐 회장을 하다, 이어서 작고한 최남억 회장이 40년 가까이 대한승공경신연합회를 이끌어 오다 현재에 이르렀다.

대한 승공경신연합회는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남북화해물결의 정서에 반하여 반공이데올로기의 상징인 <승공>이라는 단어가 맞지 않는다고 하여 <승공>을 뺀 <대한경신연합회>라는 명칭으로 행정자치부 산하 경찰청 등록 사단법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경신연합회의 운영에 불만을 품은 무속인들이 경신연합회에서 뛰쳐나와 조직한 무속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지금 존재하는 단체로는 <대한경신연합회>를 비롯하여 <한국무속협회> <한국무속인총연합회> <한국무속인협회> <한국민속문화예술원> <한국설화신화토속문화진흥협회> <한국민속문화경신연합회> 10여개 이상이 있다.

그러나 이들 단체장들은 무속인이 아니라 대부분 일반인들이 맡고 있다는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 불교의 이름을 빌려서 사용하는 <천우종> <단군신앙불선종> 등 기억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이름으로 불교의 한 종파로 존재하고 있다.

 

지난 대선 전에 무교의 현안들은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무속단체장협의회를 만들자고 경신연합회를 비롯한 무속단체장들에게 의견을 제시 하였지만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지금 무속단체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기득권에 안주하여 무속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무속의 발전을 위한 노력도 부족하고 무속현안에 대한 해결 능력도 없다.

민족종교라고 할 수 있는 무교가 언제까지 미신으로 치부되고, 무교인들이 죄인 아닌 죄인으로 지내는 것을 보고 방치해야만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무속단체장들은 사심을 버리고 뜻을 모아 무교의 현안과 무교인들의 권익을 위하여 힘을 합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교가 당당히 대한민국의 종교로 인정받아 종교협의회에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30만 무교인들의 신뢰와 존경받는 무속단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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