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굿당의 사기행각
얼마 전 어느 무교인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외곽에 있는 일부 굿당에서 과일을 비롯한 떡, 전, 산적, 조기 등을 썼던 것을 다시 재탕으로 쓴다는 것이다.
일부 잘못된 무속인이 한번 쓴 과일을 다시 쓴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굿당에서도 그럴 수 있나 하였지만, 실지로 목격하고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런 현상은 바로 무교인들의 편리주의가 만든 병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굿이 나면 무교인이 직접 장을 보고 전을 부치고 떡을 찌면서 김이 오르는 것을 보고 그 집 사정을 미리 짐작하곤 어떻게 굿을 해야 할 것인가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하였다.
또 시장에 나가서 일일이 과일을 살펴보고 좋은 것으로 준비하여 하나씩 깨끗하게 닦고 쌓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정답게 나누면서 소통의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예전의 아름다운 광경을 거의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전화 한통이면 모든 준비를 굿당에서 다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또 무교인들이 정성이 무엇인지 모르고 굿이 났으니 음식만 준비하여 굿만 하면 된다는 단순 무식한 생각과 오만에서 비롯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굿을 좀 잘하는 무교인은 여기 저기 청송을 다니기 때문에 함께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렇게 준비하는 것이 남들보다 굿을 많이 띠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부적절하다.
굿을 많이 나는 무교인들도 번거롭고 수고스럽지만 모든 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준비하는 무교인들이 많다.
이렇게 굿이 나면 그 준비과정이 번거롭다 생각하기 전에 감사한 마음으로 장을 보고 준비를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돈만 받고 굿만 해주면 된다는 무식한 발상에서 이런 행태가 나오는 것이다.
<참전계경> 제 1조가 바로 정성이 무엇인가를 설명한 부분이다.
誠者는 衷心之所發이오 血性之所守니 有六體四十七用이니라
성자 충심지소발 혈성지소수 유육체사십칠용
성(誠)은 인간의 마음속에서부터 싹트는 것이며 하늘이 부여한 깨끗한 본바탕인 품성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성(誠)에는 6체(體)와 47용(用)이 있느니라.
정성은 인간의 마음속에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그러니 무교인들의 정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굿을 띨 때부터 굿을 마칠 때까지 정성을 찾아 볼 수가 없으니, 어찌 굿덕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일부 몰지각한 무교인들이 편리함만 추구하여 모든 것을 굿당에 의뢰하고 굿당에선 좀 더 이익을 남기기 위하여 한번 사용했던 떡이나 전, 조기 산적 등을 잘 보관했다, 떡은 다시 김을 올리고, 전을 다시 덥히고, 과일을 모아두었다가 다시 사용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굿당에서 재탕하는 것을 발견한 무교인이 그럴 수 있냐고 따지고 물으니 그 굿당에서 하는 말이 걸작이라 한다.
“무당도 사기 치는데, 이 정도는 어떠냐?”
“무당이 그렇게 영검하면 재탕하는 것을 왜 모르느냐?”
황당하고 울화가 치미지만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처음엔 굿당들이 서비스 경쟁으로 시작된 일이지만 그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다 준비시키는 게으름과 정성 없음이 만든 결과라 누굴 원망할 것인가?
이 모든 현상은 무교의 기본 절차와 의미를 모르고 편리함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돼지같이 살만 찌려고 하는 무식한 무속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물이 재탕한 것인지도 모르고 그 앞에서 신명을 들먹이고 조상을 부르고 영험한 소리를 한다고 떠드는 무당들이 과연 영검한 무당일까?
그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공부를 해서 뭐해? 굿만 잘 띠면 되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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