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이야기

황해도 굿에 사용하는 서리화의 의미

愚悟 2014. 8. 11. 00:30

황해도 굿에 사용하는 서리화의 의미

 

 

 

                 <오색봉죽화>                          <떡시루에 꽂힌 서리화>                               <서리화>

 

황해도 만신들이 굿을 할 때는 굿청 밖에는 큰 흰색 서리화나 오색봉죽화를 꽂고 떡시루에는 흰서리화를 반드시 꽂는다.

서리화라는 명칭은 나뭇가지에 서리가 내린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면 서리화나 봉죽화가 단순히 굿상을 아름답게 하고 신령님들의 통로인 꽃과 같은 기능만 가진 것일까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옛날 문헌들을 보면 제사 터가 되는 땅에 당(아래로 늘어뜨린 긴 깃발)을 꽂았으며, 그 깃발()에는 묘성과 태양이 만나는 그림을 그렸다. 이런 <><>라고 하였으며, 이렇게 춘분과 묘성이 만나는 천문도를 깃발로 만들어 제사 터인 길지에 꽂았다는 것이 노중평 선생의 이야기다.

 

전국의 고찰에 가보면 절 마당 한가운데 높다란 철심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당을 세운 흔적으로 불교에서는 당간지주라고 불렀다.

청구조선의 중심이 되는 땅을 <천부단>이라고 하였고, 그곳을 <소도>라고 불렀다.

청구의 소도에서 제사를 지낼 때 모를 세우는 사람이 제사장 겸, 통치자들이 세웠으며, 신라에서는 마립간麻立干이라고 하였다.

 

<>는 삼신의 나타내는 삼실, 즉 삼베를 의미한다.

삼신의 정신을 받들어 바로 세우는 사람이 바로 마립간으로 제사장이며 통치자였다. 그러나 민족의 정체성이 상실된 시대가 계속 되면서 삼신의 정신을 받들던 마립간과 그 정신은 사라지고, 그 행위만 이어져 내려와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것이 바로 무당들이 굿을 하기 전 세우는 서리화나 봉죽화 또는 떡시루에 꽂는 서리화로 그것은 바로 소도에 세운 모에서 비롯된 것으로 신대가 아닌가 한다.

 

신대神坮의 기원은 <마리구> <모리구>에서 나온 것으로 모구旄丘가 된다.

마리구의 <>는 삼신을 뜻하고, <>는 쇠꼬리를 뜻하고, <>는 언덕 또는 혈구(구멍)을 뜻하니, <마리구>를 풀이하면 삼신의 가르침을 받기위하여 쇠꼬리를 세우는 구멍이란 뜻이 된다.

그러면 서리화나 봉죽화 그리고 떡시루에 꽂는 서리화는 단순히 꽃이 가지는 의미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하겠다.

 

신라에 불교가 들어 올 때 큰 역할을 한 사람으로 이차돈만 알고 있지만, 사실 뒤에서 보이지 않게 이차돈을 도와 많은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신라의 무당 모례毛禮라고 한다.

그를 무당이라 규정하는 것은 그의 이름에서 쇠꼬리를 뜻하는 모가 나오기 때문이며, 모례는 쇠꼬리를 들고 의식 또는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니 바로 춤을 추는 무당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산해경>을 보면

흰털이 난 소를 모우旄牛라고 하며 모우의 꼬리를 모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는 당을 상징하는 동물을 모우旄牛라는 것을 말해준다.

몽골 징키스칸 등 영화를 보면 흰털이 난 깃대가 항상 징키스칸 옆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모로써 징기스칸이 통치자겸 제사장이란 표시를 나타낸 것이다.

이 모우는 지금 거의 멸종되고 티벳 고산지대에 일부가 살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소꼬리 쥔 놈이 임자다.” 란 말이 생겼고, 모우의 꼬리를 쥔 사람이 천제를 주관하는 사람으로 한인천제와 한웅천왕 그리고 단군왕검 같은 분들이었다.

이렇게 쇠꼬리를 들고 하늘을 향하여 춤을 추었으며 이러한 행위를 무천舞天 또는 무무巫舞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굿이라고 볼 수가 있다.

 

또 강희자전에 보면

<旄旄牛尾舞者所持以持麾 모모우미무자소지이지휘> 라는 기록이 있다.

모는 모우의 꼬리이고 춤을 추는 자는 일정한 지위를 지키기 위하여 이를 가지고 휘두른다.

이 말은 바로 한웅천왕이나 단군왕검이 자신들의 위치를 확고하기 하기 위하여 제사장으로서의 임무로 충실히 하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옛날의 무당은 신정시대의 임금인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종족을 다스리는 사람이었다.

이 무당들이 모구旄丘에 모기를 꽂고 쇠꼬리를 휘두르며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것은 바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행위로 이때 하늘을 향하여 춤추는 것이 바로 굿이라 할 수 있다.

 

우리민족의 최고 조상인 한인천제는 풍이風夷의 족장族丈으로 제사장이었다.

한인천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음악을 담당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며 도와주는 집단이 바로 풍물패였을 것이다.

풍물패란 명칭도 바로 한인천제의 족속이 풍이족이기 때문에 풍이의 문물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명칭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 당시 모우旄牛를 휘두르는 유습은 오늘날 풍물패들의 우두머리인 상쇠가 쓰는 전립의 상모上旄에 그대로 남아있다.

상모란 모자 꼭대기에 달린 쇠꼬리라는 뜻이다.

 

이렇게 굿판에 흰서리화나 봉죽화 그리고 떡시루에 서리화를 꽂으면 바로 나라의 중심인 제사터에 모기를 꽂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떡시루에서 떡은 덕이 된소리가 되어 떡이 되었으니 덕교德敎로 나라를 다스린 단군의 큰 덕을 나타내며, 떡시루는 나라의 국경을 의미하고, 팥고물은 백성을, 떡을 세 켜로 찌는 것은 바로 삼신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떡 한가운데 모의 상징인 서리화를 꽂으므로 그 굿을 주관하는 무당은 당연히 그 굿판의 제사장이 되며, 그 굿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떡에 꽂는 서리화는 황해도 만신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무교인들이 굿을 할 때 사용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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