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이야기

상산象山거리 유래와 해석 1

愚悟 2014. 9. 11. 15:12

상산象山거리

굿을 할 때 어느 지방 굿이든 반드시 산거리라고 하여 산신을 모시는 거리가 있다.

이 거리를 산천거리 또는 상산거리라고도 하는데 굿을 하기 전에 팔도명산 산신령께 오늘 굿을 한다는 것을 알리고 산신을 모시는 거리로 알고 있다.

이렇게 굿을 할 때 가장 먼저 산신님께 고하는데 그것은 우리 민족이 산에 대한 외경심이 다른 민족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보통 하는 일에 어려움을 당하거나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 흔히 하는 말로 산에 들어가 도나 닦을까?” 하는 식으로 말한다.

우리 주변에 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도 있고 강과 들판도 있지만 유독 산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산에 대한 특별한 마음가짐을 잘 타나낸 말이다.

산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이 어머니의 배속같이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이것은 산 속에 들어가 도를 닦든 안 닦든 부모님 배속 같이 포근하고 안락한 산에 들어가 쉬고 싶다는 말이다.

산은 이렇게 우리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마음의 고향인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집을 지어도, 마을을 형성하여도 산 밑에서부터 시작한다. 산 밑에 옹기종기 모여 강을 바라보고 위치하는 곳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기 때문 우리가 태어날 때 마을 뒷산의 정기라도 타고나야 크게 출세를 한다고 믿고 있다.

또한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은 하늘로 올라가지만 백은 산에 묻히게 된다.

산은 죽어서 우리의 육신이 돌아가는 고향인 것이다.

이 산이라는 개념은 곤에게서 나왔다고 금문학회는 이야기 한다.

중여곤衆艅鯀은 배달나라 초대 농관農官인 고시高矢의 후손이다.

고시에게서 약초의 신이라는 염제신농炎帝神農이 나왔다.

이 염제신농의 8대 손이 신농유망楡罔이다.

유망의 나라는 유백국으로 바로 중여곤이 유백국의 제관이었다.

중여곤은 이렇게 유백국의 제사장으로서 단군왕검의 조상이 되기도 한다.

중여곤의 자를 파자하면 바로 고기 핏줄 가 된다.

이 고기 는 곤의 할아버지인 희의 족표였다.

, 곤의 물고기 자는 물고기를 족표로 사용한 할아버지인 희의 핏줄을 이은 사람이란 뜻으로 자를 만들었다.

곤은 전욱고양의 장남 성축과 차남 예가 죽고 셋째 대부로 들어와 사당의 제사를 총괄하는 대례관이라는 관직을 맡았다. 이 대례관직을 중여衆艅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 곤자에서 물고기 자는 그대로 두고 대신에 신농의 족표인 자를 사용하여 조선의 자를 만든 사람이다.

중여곤은 희화 주 그리고 양아버지인 전욱고양이 이은 3대 라는 뜻으로 등이 산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은 산으로 통하며 를 뜻하는 글자가 되었다고 한다.

산은 서양의 마운틴(Mountain)의 개념이 아니라 사람이 죽으면 들어가는 유택幽宅의 개념인 뫼 묘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산은 제사를 올리는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

서울의 삼각산이 바로 산봉우리 3개가 있기 때문으로 예로부터 천제를 지낸 곳이었다는 뜻이 된다.

신선神仙이라는 말도 사람과 산이 만나면 신선이 된다는 말로써 한자를 파자하면 바로 나타난다

우리가 이렇게 산에 대한 외경심을 가지고 산에 대한 기대가 많은 것은 무슨 연유일까?

물로 한반도의 국토가 산으로 대부분 차지하고 있어서 그런 까닭도 있겠지만 꼭 지형적 환경적 조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부도지>에 의하면 마고성麻姑城이란 곳이 있었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하였다. 이곳에서 우리 인류의 조상들이 살고 있었다.

또 소와 고탑을 세우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였다.

소는 바로 피라미드나 지구라트의 형태로 나타났고 고탑은 바벨탑이나 사찰의 큰 탑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처음부터 가장 높은 곳에서 거주하며 그곳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소도를 만들어 신성시하며 지내왔다.

이러한 풍습들이 마고성을 떠난 후 백소와 흑소의 무리들이 산이 없는 이라크와 이집트 지방으로 이동하면서 하늘과 조금이라도 가깝게 가기 위한 수단으로 마고성에서 했던 소와 고탑을 세우는 풍습을 재현한 유물이 지금 남아있는 피라미드와 지구라트다.

또 지구라트의 꼭대기에는 관개시설을 만들어 놓고 나무 한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인공적으로 만든 지구라트 꼭대기에 관개시설을 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고집스럽게 관개시설을 하면서 나무 한그루를 심은 것은 바로 옛 풍습을 잊지 않겠다는 것으로 바로 마고성에서부터 해왔던 소도의 풍습을 따르기 위함이다.

소도에서 가장 큰나무를 골라 웅상이라고 하여 옷을 입히고 방울과 북을 매 달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바로 소도에 설치한 웅상을 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산꼭대기에 서 있는 큰 나무를 한웅의 상인 웅상雄常으로 정하여 제사지내던 유습이 바로 지구라트에서도 재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한웅桓雄의 상으로 봉해진 나무를 우리 조상들은 산상웅상山象雄常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산거리를 다른 말로 상산거리라고 한다.

상산거리는 산상거리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산상거리는 바로 웅상을 모시는 거리, 즉 한웅천제를 모시는 거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부도지>에는 우리 동이족의 시조를 황궁黃穹씨라고 하였다.

황궁이 해혹복본을 이룩하기 위하여 산에 들어가 큰 돌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음詔音으로 후손들에게 바른길을 인도하였다고 한다.

이 말은 곧 우리의 조상인 황궁씨가 산 속으로 바위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미륵이 되었다는 뜻이다.

후천세계에 나타나 수많은 인류를 구원할 미래의 부처가 아닌 우리의 조상이라는 뜻이다.

우리 할머니들이 뒷산 바위 밑에서 정화수 한 사발 받쳐두고 자손의 무병장수를 기원한 까닭이 바로 황궁씨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고부터 우리의 조상인 황궁씨가 갑자기 후세의 부처인 미륵彌勒이 되어 버렸다.

산은 인간이 하늘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도지>에 의하면 처음 지상에서 가장 높은 마고성에 살 때는 천부의 본음을 듣고 살았기에 지상의 낙원이었다.

그러나 금단의 열매인 포도를 따먹고 맛을 알게 되면서 인간들이 감정이 생겨 삼진을 망각하게 되어 마고성을 떠나게 되었다.

마고성을 떠나면서 천부의 소리를 들을 수 가 없으니 인간이 더욱 악해지고 서로 갈등하고 죽이게 되었다.

이러한 탓에 천부의 소리를 듣기 위하여 귀고리 만들어 천부의 소리를 들으려고 했으며 산을 비롯한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또 하늘에 무엇인가 원하고 감사를 드릴 때 주변의 산중 가장 높은 산을 택하여 그 정상에 제단을 만들어 천신께 예를 차렸다.

그러기에 산은 신성한 곳으로 여겼으며 또한 산은 하늘의 신선들이 내려와 쉬어가는 곳이라고 믿었다.

한반도에만 하여도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동천洞天이 전국에 36곳이나 있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는 태백산이나 백두산을 비롯하여 많은 산의 정상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있다.

물론 중국의 태산이나 천산 등 많은 산도 그 당시 우리 조상들이 그곳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한반도로 이주하고 나서도 그때의 풍습으로 하늘의 제를 드리기 위하여 산의 이름을 그대로 옮겨 왔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산을 의지하고 믿고 받드는 것이 다른 민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그 외경심이 대단하여 우리 굿거리 중 가장 먼저 산을 모시는 거리가 나오지 않나 생각한다. 

<상산象山거리 유래와 해석 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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