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할미 이야기

추석의 유래와 세시풍속

愚悟 2014. 9. 6. 00:00

추석유래와 세시풍속을 찾아서
'한가위'... '물고기도 추석을 쇠고 추석이면 개도 송편을 세 개나 먹었다'
벌초·성묘·차례·소놀이·강강수월래·원놀이·가마싸움·씨름·반보기·올게심니
 

 

이창준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추석이 되면 ‘물고기도 추석을 쇤다’고 하였고 ‘추석에는 개도 송편을 세 개나 먹었다’하였다. 추석은 모든 사람이 일체의 손을 놓고 즐긴 우리 민족최대의 명절이자 축제였다.

추석은 설날, 한식,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다. 한가위,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한다. 

한가위의 한은 ‘하다(大·正)’의 관형사형이고 가위란 ‘가배(嘉俳)’를 의미한다. 이때 가배란 ’가부·가뷔’의 음역으로서 ‘가운데’란 뜻인데 지금도 신라의 고토인 영남지방에서는 가운데를 ‘가분데’ 가위를 ‘가부’ 가윗날을 ‘가붓날’이라고 한다. 한가위란 8월 중에서도 정(正)가운데란 뜻이다.

한가위를 추석, 중추절, 중추가절이라 한 것은 훨씬 후대에 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한자 사용이 성행하자 중국 사람이 중추(中秋)니 (秋中)이니 칠석(七夕)이니 월석(月夕)이니 하는 말을 따서 합하여 중추의 추(秋)와 월석의 석(夕)을 따서 추석(秋夕)이라 한 것으로 추측된다.

8월 15일을 ‘가위’ ‘추석’이라 하는 것은 고전문학에서도 보인다. 고려가요인 ‘동동(動動)’에서는 “8月 보로 아으 嘉俳나리마 니믈 뫼셔녀곤 오날 嘉俳샷다 아으 動動다리”라 했다. 조선조 때의 가사인 사친가(思親歌)에는 “8월 秋夕日에 백곡이 풍등하니 落葉이 秋聲이라 무정한 節序들은 해마다 돌아 오네 여기저기 곳곳마다 伐草香花하는구나 (中略) 슬프도다 우리 부모 추석인 줄 모르시나”라고 돼 있음을 보아 ‘가위’란 말보다 ‘추석’이란 말이 후대에 와서 사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추석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서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고대부터 있어 왔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사회 인간에게 어두운 밤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만월은 인간에게 고마운 존재였고 일 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8월 15일 한가위는 축제로 여겨지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전승됐다고 할 수 있다.

한가위의 기원은 《삼국사기》에 잘 나타나 있다. “신라 3대 유리왕(儒理王: 3대왕)때 육부(六部)의 중간을 나누어 두 팀으로 만들고 왕녀 두 사람이 각 팀을 거느리게 편을 갈라서 7월 16일부터 매일 큰 부(部)의 뜰에 모여 베를 짜게 했다. 8월 15일까지 베를 짜서 그 길이가 짧은 편이 술과 음식을 장만해서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를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때 진편의 여자가 춤을 추며 탄식하기를 ‘회소 회소’하니 그 소리가 애처롭고 고와서 노래를 지으니 그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가윗날이 신라 이래 국속(國俗)으로 지속되었음은 중국에서 나온 수서(隋書)》동이전 신라 조에 “임금이 이 날 음악을 베풀고 신하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여 상으로 말과 천을 내렸다”고 한 대목에서 알수 있다. 구당서(舊唐書)》동이전에도 “신라국에서는 8월 15일을 중히 여겨 음악을 베풀고 잔치를 열었으며 신하들이 활쏘기 대회를 하였다”고 쓰여 있다.

또한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도 당시 산둥[山東] 근방에 살던 신라인들이 절에서 베푼 가배 명절을 즐겼음을 그의《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기록했다. 이규경(李圭景)은《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추석행사를 가락국에서 나왔다고도 했는데, 이처럼 가윗날은 한국의 고유한 명절로 오래 전부터 인식돼 왔다.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는 벌초·성묘·차례·소놀이·거북놀이·강강수월래·원놀이·가마싸움·씨름·반보기·올게심니·밭고랑 기기 등을 들 수 있다.

벌초와 성묘

추석에 조상의 무덤에 가서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 주는데 이를 벌초라 한다. 추석을 맞이하여 반드시 벌초를 하는 것이 자손으로서 도리고 효성이라 여겼다.

추석에 성묘를 와서 벌초를 안했다면 보기에도 흉할 뿐만 아니라 불효의 자손을 두었거나 임자 없는 묘라 해서 남의 웃음거리가 됐다.

차례

추석 날 이른 아침에 종가에 모여 고조(高祖)까지 차례를 지낸다.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고, 자기가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다는 뜻인 추원보본(追遠報本)과 천신제(薦新祭)를 겸했기 때문에 제물은 햇곡을 사용했다. 고조 이상의 윗대는 10월에 시제(時祭)라 해서 묘에서 제사를 지낸다.

소놀이

추석 차례를 마치고 난 뒤 알맞은 시간에 농악대가 풍물을 치며 마을 사람들이 어우러져 놀면서 소놀이를 진행한다. 두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짚이나 가마니로 씌워 소 모양을 만든다.

마을 사람들은 소를 끌고 마을의 부농이나 농사를 잘 지은 집으로 찾아간다. 소를 앞세운 일행이 앞마당으로 들어가 농악을 치고 노래하고 춤추면 주인집에서는 술과 떡을 차려 대접한다. 이렇게 여러 집을 찾아다니며 해가 질 때 까지 어울려 논다.

원놀이·가마싸움

원놀이란 서당의 학동들 중에서 실력 있는 사람이 원님이 되고 학동들은 백성이 돼 원님께 소장을 내어 판결을 받는 놀이다. 오늘날 학교에서 행해지는 모의재판과 성격이 유사하다.

가마싸움은 가마를 만들어 이웃 서당의 학동들 끼리 대결하는 놀이다. 가마끼리 부딪혀 부서지는 편이 지게 되는데 이긴 편에서 과거를 보면 등과가 나온다고 한다.

반보기

속담에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라’는 말이 있다. 가윗날에는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 하루를 즐기는데 특히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반나절을 함께 회포를 풀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것을 반보기라고 한다. 회포를 반만 풀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올게심니

추석을 전후에 잘익은 벼, 수수, 조 등의 곡식을 한 줌 베어다가 기둥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는 것을 올게심니라 한다. 이 곡식은 씨로 쓰거나 떡을 해서 사당이나 터주에 올렸다가 먹는다. 올게심니는 다음 해에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다. 

밭고랑 기기

전라도 진도에서 8월 14일 저녁에 아이들이 발가벗은 채 나이만큼 밭고랑 기기를 한다.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다.

시절음식

《열양세시기》에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는 말 처럼 천고마비의 좋은 절기에 새 곡식과 햇과일이 나와 만물이 풍성하여 ‘5월 농부, 8월 신선’ 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추석의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송편이 으뜸이다. 8월 14일 저녁 밝은 달 아래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만드는데 예쁘게 만들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잘못 만들면 못생긴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 하여 예쁜 송편을 만들기 위해서 애썼다.

또 임신한 여자가 태중의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궁금할 때에는 송편 속에 솔잎이나 바늘을 넣어 이를 점치기도 했다.

추석에 쓰는 술은 햅쌀로 빚은 백주(白酒)를 안주로는 닭을 즐겨 먹었다. 닭은 봄에 깬 병아리를 길러 추석이면 잡아먹기에 안성맞춤인데 황계(黃鷄)라 한다.

중국에서도 추석날에는 달 모양의 월병(月餠)을 만들어 조상에게 바치고 달을 감상했다. 보름달 모양의 월병은 이미 원(元)나라 때 만들어졌는데, 이러한 풍습은 일본의 경우도 비슷하다.
동양 3국 가운데 우리 민족만이 추석을 민족적인 대명절로 여기는 것은 한민족과 달(月)의 연관성이 유서 깊음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