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대에 앉은 오리 세 마리
솟대란 나무나 돌로 만든 오리를 나무나 장대 위에 앉힌 신의 상징물로서, 마을에서 정월 대보름날 마을굿이나 동제를 모실 적에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마을 입구 등에 세우는 것을 말한다.
솟대의 시작은 한웅천왕이 신시를 열면서 천신을 모시기 위하여 만든 소도에 세운 신의 상징물로 엄숙하고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이다. 솟대를 세운 곳은 신성한 곳으로 여겨 죄인이 들어와도 잡아가지 않았다. 소도에는 박달나무가 많았는데 그중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한웅의 상, 즉 웅상이라고 부르며 방울과 북을 매달면서 솟대가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솟대 또한 무교와 함께 미신풍조라는 뜻으로 그 가치가 폄하되어 보기가 힘들었지만, 요즘은 많은 곳에서 솟대를 세우고 또한 장식물로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솟대를 신성시하는 역사는 북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청동기시대의 제기에도 나뭇가지나 기둥에 새를 앉힌 조형물이나 문양이 발견된다. 이처럼 넓은 지역에서, 또 청동기시대까지 올라가는 시간성은 솟대가 고대 마고 삼신시대의 신앙의 조형물로 자연스럽게 전파된 보편적인 삼신신앙의 상징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솟대는 세 가닥의 나뭇가지에 반드시 오리 세 마리가 앉아있다. 예전에는 그 새가 오리가 아니고 기러기라는 설도 있었으나 지금은 오리라는 것이 정설이다.
새는 우리 민족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새에 대한 신앙도 청동기시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 왕들의 권위와 신성성을 부여받기 위해서 새가 천신과 왕 사이를 오가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였으며 그 결과 우리 건국 신화 중에서 새의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가 많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새는 인간의 의식(儀式)과 종교 생활에 널리 사용되었다.
인간들이 새를 동경하게 된 것은 바로 새가 가지고 있는 날개의 역할이다. 새의 날개는 이승과 저승을 오갈 수 있는 수단이므로 새는 영매자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단군시대의 구가(九加) 중 새의 이름을 딴 학가(鶴加), 응가(鷹加), 노가(鷺加) 가 있다는 것만 봐도 새에 대한 외경심을 알 수가 있다. 이런 이유로 새는 벽사의 힘을 지녔다고 믿었고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삼재부적을 비롯한 여러 부적에도 사용되고 있다.
새가 지니는 상징은 새에 따라 다르다. 기러기는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동안 지조를 지키는 정절의 새로 여기기에 혼례 때 등장한다. 까치는 헤어진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고 믿고 있으며, 까막까치는 저승길을 인도하는 저승사자를 나타내기도 한다.
꿩은 남을 존경할 줄 아는 새로, 닭은 귀신을 쫓는 새로, 매는 풀지 못한 일을 해결해 주는 새로, 박쥐는 복을 주고 자손을 번성하게 해주는 새로, 부엉이는 좋은 일이 생길 것을 알려주는 길조로, 비둘기는 금술 좋은 다정한 부부의 상징으로, 올빼미는 재앙을 예견하는 새로, 제비는 인간 세상에 내려온 신의 사자로, 학은 고고한 인품을 지닌 선비를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 민족과 특별한 관계를 지닌 새가 바로 까마귀로 보통 효성스러운 새로 믿고 있지만, 태양을 상징하는 새로 삼족오가 있다. 제주도는 까마귀가 강남차사의 심부름꾼으로 인간 세상에 수명을 전해주는 명부(冥府)의 새로 등장하기도 한다. 서양에선 흑색까마귀는 음양을 상징하는 흉조라고 믿으며, 적색이나 금색까마귀는 태양과 효도를 상징하기도 한다고 한다.
오리는 솟대에 앉아있는 신의 새로 알고 있다. 그럼, 왜 많은 새 중에서 오리를 솟대에 앉혔을까 하는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오리는 오리과의 작은 물새를 통틀어 말한다. 일부 텃새도 있지만 대개는 가을에 북쪽에서 번식해 우리나라로 이동해 오는 겨울 철새인 동시에 다산성을 지닌 새다. 오리가 지닌 물새, 철새, 다산성은 여러 가지의 종교적 상징성을 갖는다.
또 오리는 전형적인 물새이며, 잠수조다. 잠수능력은 수계(水界)나 지하세계와 관련한 중요한 종교적 의미가 있다. 오리는 하늘, 땅, 물을 그 활동 영역으로 하고 있기에 일반 들새나 산새보다도 종교적 상징성을 지니기에 충분하다. 또한 오리는 물과의 밀접한 관련성으로, 비와 천둥을 지배하는 천둥새 속성을 지님과 동시에 오리의 꽥꽥거리는 울음소리 때문에 야크트족은 오리는 천둥새, 곧 철로 만든 새라고 여겼다.
이렇게 천둥새로서 오리는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농경 마을에서는 비를 가져다주는 농경신으로 정착되었으며, 전형적인 물새이며, 잠수조이기 때문에 홍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불사조로도 생각되었다.
전북 정읍군 산외면 목욕리와 진안군 마령면 사곡리,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에서는 오리는 물에서 사는 짐승이라 화재를 방지한다고 하여 솟대를 세웠다고 한다.
오리의 또 하나 특성은 철새라는 점이다. 철새는 계절이 바뀌는 변화를 암시해 주고 초자연적 세계로의 여행을 의미하여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넘나드는 영혼의 순환적 여행을 뜻하기도 한다.
그 예로 퉁구스족은 오리가 되돌아오는 것을 영혼의 이주(移住)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철새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인간과 신의 중계자로서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새였다. 즉 오리는 이승과 저승을 그리고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넘나드는 신의 매개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철새인 오리가 갖는 주기성이 농경에 절대 필요한 비를 가져다주는 주기와도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됐다. 실제로 일부 마을에서는 솟대 위의 오리를 정남향으로 앉히기도 했는데 이것은 오리가 남쪽에서 비를 몰고 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새의 알은 대개 불멸성, 잠재력, 생명의 신비, 생식의 근원 등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파종 때에 주머니에 알을 넣고 있거나, 밭에 알을 파묻는 속신도 생겨났다. 경주지방에서는 각 가정의 방문 앞 처마에 꿩알의 껍질을 줄에 꿰어 달아놓으면 상서로움을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적인 상징성 이외에도 오리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 새로 새 중에 으뜸으로 여겼기에 오리를 한자로 압(鴨)이라고 부른다.
이 압자를 파자하면 새 <조鳥>자와 <갑甲>자가 결합된 글자다. 즉 오리는 새 중에서 가장 으뜸, 또는 첫 번째라는 뜻으로 역법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주기인 육십갑자의 첫머리인 갑(甲)자를 새 앞에도 붙였다. 그 이유는 바로 오리가 신시의 상징인 소도의 솟대에 앉아있는 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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