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천 년 우리 민족과 함께 하여온 우리의 무교를 일본 학자들이 무속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다분히 얕잡아보는 시각으로 붙인 이름이지만 지금까지 무속이라는 말이 정설인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부르는 단어가 되었다. 또 서양 사람들은 샤머니즘(shamanism)이라고 부른다. 북방 중앙아시아의 샤먼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부르는 이 샤머니즘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지만 이 말이 학자들 사이에 굳어져버린 지금 달리 다른 영어로 부를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우리도 무교를 여전히 무속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또 학자들은 샤머니즘이라 부르고 있다. 앞으로 무속을 무교라고 불러야 한다.
우리가 무교라고 부르기 전 우리들의 조상들은 신교라고 불렀다. 또한 수두교(蘇塗敎) 즉, 소도에서부터 발생한 종교라고도 하였다.
기본 경전은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이다. 교당은 소도였으며 소도에는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았다. 해마다 10월이면 큰 제천의식을 행하는데 그때의 유습이 지금도 남아 음력 10월을 상달이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천지신명께 정성을 드린다.
신교 즉 무교의 뿌리는 한인천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늘을 섬기며 조상을 받들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이 우리 무교 사상의 줄기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특히 학자들은 무교의 신들이 중국 도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도교는 선교(仙敎)라고도 부른다. 선교는 황노의 줄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황노는 황제헌헌과 노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선교는 황제헌원이나 노자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인류의 창조자이신 삼신으로부터 나온 사상이다. 삼신사상 가운데 숨을 고르게 쉰다는 식(息)과 원기를 기른다는 뜻의 기(氣)와 장수를 의미하는 명(命)을 묶어서 도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것을 노자가 마치 자기의 사상인 것처럼 정립한 것이다. 도교는 숨을 고르게 쉬고 원기를 길러 불로장생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삼신으로부터 나온 사상을 한웅천왕이 다시 정립한 것이다. 그 후 신시시대 제14대 한웅인 치우천왕 때 자부선생(紫府先生)이 지은 삼환내문경(三皇內文經)에 그 사상이 인용되고 여러 가지 비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상고시대 치우천왕과 싸우다 매번 패한 황제가 자부선생을 찾아가 치우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니 하늘에 제를 드리고 삼황내문경을 받았다. 이것을 바탕으로 황제의 <황제내경(黃帝內徑)>이 나왔고 도교의 비법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삼신의 사상은 노자를 거치면서 더욱 체계화되어 발전하여 중국 전역에 퍼졌으며 후세에까지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들을 제대로 학문으로 사상으로 정립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냥 우리들 생활 속에 삶으로 녹아버린 풍속처럼 되어버렸다. 우리들은 공기의 귀중함을 모르듯 우리 사상의 중요함을 망각하고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도교의 뿌리가 우리의 신교인 것을 알지 못하고, 우리 무교의 뿌리는 도교에서 비롯되었다고 헛소리를 하는 이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것은 아버지를 보고 자식을 닮았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잘못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
옛날에는 정치가 종교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미풍양속은 모두 신교에서 비롯되었고 신교에 관한 것만 있었다. 우리 배달민족은 신교 즉 무교 문화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무교가 생활의 지혜로, 삶의 그 자체였다. 그러나 외래문화가 들어오면서 무교 문화는 점점 서민들 속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그 맥이 끊어지지 않고 끈기 있게 이어져 왔다. 바로 무교라는 고유한 전통문화에서 옛날의 유습과 우리 조상들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우리 민족에게 무교가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고 소중한 사상인가를 깨우치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담겨져 있으며, 우리 할머니들의 생활의 지혜를 제공하고 삶 그자체로 여겼던 무교를 미신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미개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우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