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이야기

무당집에 왜 깃발을 꽂는가?

愚悟 2006. 3. 17. 12:46
 

무당집에 왜 깃발을 꽂는가?


우리는 무당 집을 찾을 때는 먼저 깃발이 꽂혀있는 집을 찾는다.

그리고 무당들도 내림굿을 하고 무당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신당을 꾸미고 집 앞에다 깃발을 꽂는 것이다.

무당들은 이것을 천왕기 또는 서낭기라 부르지만 왜 꽂는지 모른다. 그냥 선배무당들이, 선생들이 꽂으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긴 대나무에다 붉은 천과 흰 천을 매달아 꽂고 있는 것이다.

이 깃발은, 한웅천왕시절에 어떠한 지역을 성역화하기 위하여 소도라는 것을 설치하였는데 소도의 가운데 모(旄)라는 깃발을 세운데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단고기/단군세기>를 보면 「11세 단군 도해께서 경인원년(BC1891년)에 오가에 명을 내려 열 두 명산의 가장 뛰어난 곳을 골라 국선(國仙)의 소도를 설치케 하셨다. 많은 박달나무를 둘러 심은 후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한웅의 상(象)으로 모시고 여기에 제시 지내며 웅상(雄常)이라 이름 했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 웅상의 그림은 집안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 장전 1호에 나타나 있다.

또 기록하기를  「무리를 지어 노래하며 춤추며 술 마시기를 밤낮 쉴 사이 없이 한다. 그 춤은 수십 인이 함께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구르며 몸을 낮췄다 높였다 하며 손발이 서로 장단에 맞춘다. 귀신을 믿으며 국읍으로 각각 한 사람씩을 세워 천신을 제사 지내는 것을 주관케 한다. 이를 이름 지어 천군이라 한다. 또 여러 나라엔 각각 특별한 마을이 있는데 이를 소도라 이름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 북을 매어 달고 귀신을 섬긴다.」 라는 기록이 있다. 그 외 여러 곳에서 웅상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당들의 집에 세우는 깃발은 바로 웅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웅천왕시절 정부의 최고기관은 소도(蘇塗)라고 할 수가 있다. 소도에서 제사를 지내고, 백성에게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며 천제를 올린다. 또한 소도에 서면 언제나 참전계경이란 계(戒)가 있어 충 ․ 효 ․ 신 ․ 용 ․ 인 오상의 도를 닦았다.

또한 하늘에 제를 올리기 위하여 만들은 언덕을 구라고 하였다. 구는 앞을 높이고 뒤를 낮게 하여 모를 꽂는다. 라고 하였다. 구는 나라의 중심이 되는 땅을 말하는데 14대 한웅천왕인 치우천왕이 세운 나라가 청구이다. 청구의 중심에 세웠던 깃발이 모(旄)인 것이다.

모를 불교에서는 당(幢)이라고 부른다. 오래된 고찰을 가보면 반드시 절 마당에 철물로 높은 깃대 모양으로 세워 놓은 당간지주를 보게 될 것이다. 당간지주가 높을수록 그 절의 위상을 말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이러한 형태는 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한웅천왕시절 하늘을 숭상하는 순수한 우리 민족의 정신인 것이다.

「강희자전」에 「땅이 높은 것을 구(丘)라고 한다. 높으므로 하늘을 섬기는 일을 한다. 고로 땅 위에 세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청구의 높은 언덕에서 하늘에 제를 지냈다는 뜻이다. 이를 줄여서 말하면 구사천(丘事天)이 된다. 구사천은 하늘의 일을 하는 언덕이니 하늘에 제를 지낼 땐 굿을 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다.

또 「땅을 낮게 하므로 땅을 섬기는 일을 한다. 고로 못의 한가운데서 하는 것이다. 이곳을 구사지(丘事地)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언덕이 높은 곳에서는 하늘에 제를 지내고, 못 가운데 언덕이 낮은 곳에서는 땅에 제를 지낸다는 말이다. 이 구사천과 구사지가 굿의 어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곳에 꽂는 깃발을 모라고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모가 변형되어 지금 무당 집 앞에 꽂혀 있으니 무당 집은 하늘과 땅에 제사지내는 즉 굿을 하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즉 한웅천왕 시절 때부터 천제를 지내는 신성한 곳으로 여긴 소도라는 표시인 것이다.

이렇듯 소도에 세운 모가 오랜 세월이 지나 지금의 무당집 앞에 대나무에 걸린 천 조각으로 변형이 되었지만 그 숭고한 뜻은 알고 세워야 할 것이며 이 깃발을 다는 순간 무당 집은 일반 사람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백성들을 교화하고 오상의 계를 닦도록 하는 아주 중요하고도 신성한 소도의 성격을 가지는 중요한 곳이 된다는 의미 인 것이다.

무당들이 모(旄)기에서 시작된 깃발의 유래와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스스로 반성을 하여 오계의 도를 닦고 언행에서 모범을 보이면 무당집도 성당이나 사찰과 같이 성역화 된 장소로, 아니 옛날의 소도로 돌아가 나라의 중심이 되는 날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남 보기도 이상한 깃발을 세우는 대신 솟대를 세우는 것이

 

삼신신앙을 이어가는 우리들에게는 더욱 성스러운 일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알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민족의 전통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문화로 많은 사람들의 거부감을 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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