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단체가 벌이는 용신굿 행사 자문차 대구 내려 갔다 오늘에야 지친 몸을 이끌고 서울로 돌아 왔다.
처음에는 네 고향 대구라서 기분이 좋았고. 다음에는 대구 사람들의 무대뽀 정신에 기가 죽었고, 한편으로 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시 고향이라 그런지 따뜻한 사람의 정을 느끼게 하는 무당들의 언행에 고향에 온것을 실감하게 했다.
지금까지 대구에서 해왔던 행사와 좀 다르게 행사 준비를
하고 무대 셋트를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려고 했지만 기존의 틀을 고수하는 회원들의 고집을 꺽을 수 없어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며 행사를 했다.
행사 전날 현장에 오후 3시 쯤 도착한 난, 그만 경악을 질렀다.
내일 행사날인데 아무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행사 진행 준비로 현장을 재촉하지 않고 믿고 있었던 나의 불찰이기도 하다,
하여간 그날 밤 비는 억수같이 오고 설치는 늦어지고 그러다 밤을 꼬박 세워버렸다.
다행히 다음날 비가 개이고 덥지도 않아 굿을 하기엔 아주 좋은 날씨였다.
아침 9시에 주변 목욕탕에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내가 초청한 무속학자들을 마중하러 동대구역으로 나갔다.
그리고 금호강용신굿이 시작되었다.
너무 분위기도 좋고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밥 3가마, 떡 3가마, 돼지 3마리 삶았는 음식들이 동이 나 버렸다.
대구시민들의 반응은 너무 좋았고 난생처음 재미있고 멋있는 구경을 하였다고 행사 추죄측으로 전화가 많이 온다고 전화가 왔다.
대구에 있으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께 한번도 들리지 못했던 나는 오는 길에 잠깐 들렀다.
어머님이 내가 좋아하는 가죽나물을 무쳐놓았다면서 가져 가라고 전화를 하셨기 때문이다.
이 불효막심한 놈~~~~
어머니도 행사 전날 비가 와서 걱정을 많이 하셨는 것 같다.
그리고 행사는 잘 끝났는지 물으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신다.
비록 제일 못난 자식이지만, 가장 속을 많이 섞히는 자식이지만 대구에서 행사한다니까 걱정이 많이 되셨나 보다.
어머니와 짧은 작별인사를 나누고 동대구 역으로 오는 길목은 나도 눈씨울을 적시는 시간 이었다.
나이 50이 넘도록 어머니의 그런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리석은 못난 자식이 다시 한 번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느끼고 가슴에 가득담고 귀경 길에 올랐다.
난 그래도 무지 행복한 놈 같다.
어머니 말고도 그날 행사 전날 비가 와서 걱정하였다는 나를 아는 많은 분들께 고마운 마음 전한다.
그래도 난, 나를 걱정해 주는 많은 이들이 있어 무지 부자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하루였다.
나를 아시는 모든 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