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대감과 도깨비
도깨비의 원형은 청동기 문화
치우천왕은 도깨비 대왕
우리의 민담에는 도깨비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어릴 적 할머니 무릎에 앉아 듣던 구수한 이야기 속에는 반드시 도깨비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도깨비들은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그런 도깨비들이었다.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서 ‘밥 나와라 뚝딱, 집 나와라 뚝딱’ 하면서 소원을 말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전하고 있는 것은 도깨비로 하여금 굶주리고 가엾은 백성들에게 착하게 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주어 삶의 시름을 잠시 잊게 하였으며 그 도깨비 방망이 역시 동경의 대상이었다.
도깨비를 다른 말로 허주(虛主),·독각귀(獨脚鬼), ·망량(魍魎), ·이매(魅)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음허기(陰虛氣)로서 원시신앙적인 귀신사상에 의하여 형성된 잡신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음귀(陰鬼)로서의 귀신과는 다르다. 도깨비는 사람이 죽은 후에 생기는 다른 귀신들과는 생성자체가 다르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의 용구로 쓰다가 버린 물건, 즉, 피 묻은 헌 빗자루, ·짚신, ·부지깽이, 오래된 가구 등이 도깨비로 변한다고 믿고 있다. 이들 물체로부터 밤이 되면 도깨비불이라는 원인불명의 불이 켜지고 그것을 도깨비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 도깨비는 다른 귀신과는 달리 사람에게 악한 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장난기가 심하여 사람을 현혹하고 희롱도 하며, 잘 사귀면 신통력으로 금은보화를 가져다주는 등 기적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한다. 성질이 음(陰)하기 때문에 동굴 ·고가(古家) ·고목(古木) ·계곡 같은 곳에 모여 살다가 밤에 나와 활동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한국의 도깨비는 우리들과 아주 친숙하여 그 모습도 코믹하고 귀엽게 그려지고 있으나 일본이나 중국의 도깨비는 아주 무시무시하게 괴물처럼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왜 다 같은 도깨비인데 우리와 달리 중국과 일본은 무시무시하게 표현을 했을까? 그 이유는 도깨비가 바로 우리의 조상인 14대 한웅천왕이기 때문이다. 14대 한웅천왕은 자오지천왕이란 분인데 일명 치우천왕 또는 도깨비 대왕이라고도 불렀다. 도깨비 대왕이라고 부르는 연유는, 치우천왕은 갈로산에서 주석과 쇠를 캐내어 창과 칼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쇠를 이용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는데 이때의 투구 모습은 소머리를 본떠서 뿔이 양 옆으로 두 개가 달려 있었다. 이것을 사람들이 알지를 못하고 구리로 된 머리에 쇠로 된 이마라고 치우천왕을 도깨비라 부른 것이다.
치우천왕을 도깨비라고 할 수 있는 기록이 하나 있다. <포박자(抱朴子)>에 도깨비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산정(山精)도깨비는 생김새가 어린아이 같고 외발로 뒷걸음쳐 걷는다. 밤을 좋아하며 사람을 해치는데 이름을 ‘소’라고 한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여기서 이름을 소라고 한다는 대목을 중요시해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투구를 쓴 치우 천왕의 모습이 소머리 같기 때문에 소(牛)로 형상화하기도 한다는 것을 상기할 때 중국이 치우를 도깨비 귀신으로 비유하여 위상을 격하 시킨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치우천왕은 중화민족의 시조라 할 수 있는 공손헌원과 74회에 걸쳐 전쟁을 하였다. 그때 치우의 부대는 도깨비부대라고 부르며 공손헌원의 부대는 귀신부대라 하였다. 공손헌원의 귀신부대는 치우천왕의 도깨비부대에게 매번 전쟁에서 패하였고 공손헌원 부대는 치우천왕의 깃발만 보아도 달아나기에 급급하였다.
또한 치우천왕은 전쟁을 할 때 큰 안개를 일으켜 적을 무찔렀으므로 도깨비가 등장할 때는 반드시 안개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후 치우천왕이 죽고 난 뒤 진나라와 한나라 때 주민들이 10월이면 치우 능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반드시 한 줄기의 붉은 띠 모양의 연기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을 치우의 깃발이라고 하였는데 그때부터 도깨비의 형상은, 치우 깃발의 붉은 색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 그리고 머리와 이마에 뿔이 달린 모습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그 후 중국에서는 용맹하고 덕이 많은 장군들의 얼굴색을 모두 붉은 색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 장군이다. 관우는 긴 수염에 부리부리한 눈에 붉은 색의 얼굴을 하고 위용을 떨쳐 조조 군사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였다.
치우가 황제헌원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난 뒤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때 치우가 차고 있던 수갑과 족새를 들판에 갖다 버렸는데 그 자리에서 단풍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또 어떤 책에선 치우가 흘린 피에서 단풍나무가 자랐다고 하기도 한다. 치우가 죽은 지방을 해(解)라고 하는데 치우가 죽을 때 흘린 피가 흘러들어 해지(解池)라는 연못이 되었다.
또 황제헌원이 치우가 다시 살아날까 두려워 그의 몸을 육시를 하였다. 지금 중국 산동성 수장현에 있는 치우 묘는 치우의 머리가 묻혀 있다고 전한다.
이렇게 육시를 하는 처형이 조선시대에는 사지를 소나 말에다 묶어 사방으로 끌고 가게 해 육시를 해서 죽이는 것을 가장 무거운 형벌로 쳤다. 이것은 황제헌원이 치우천왕을 처형할 때 사용한 것으로 모화사상이 극치에 달하던 조선시대의 위정자들이 이 육시가 누구의 조상을 죽인 형벌인지도 모른 채 중국의 모든 것을 따라했던 어처구니없는 작태라 할 수가 있다.
무당들의 굿거리에 군웅거리라는 것이 있다. 이 거리를 난 바로 치우천왕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무당이 죽은 치우의 영혼을 달래는 거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 굿에서 돼지를 육각으로 자르는 이유가 치우천왕의 죽음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렇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치우천왕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드렸던 치우제가 변형된 것이 군웅거리의 시작이 아닌가 한다. 그러다 전쟁터에서 죽은 많은 사람들의 혼백(魂魄)을 위로하기 위한 굿으로 행하여 오다가 지금은 피 흘리고 제명에 가지 못한 조상 즉 험악하게 죽은 조상을 위로하는 굿거리로 변하여 현재의 군웅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군웅거리의 원래 이름은 군왕(君王)거리가 변하여 군웅거리가 되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군웅거리의 군자를 군사 군(軍)가 아니고 임금 군(君)자를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웅(雄)자 역시 왕(王)자로 사용하여야 한다. 하지만 꼭 웅자로 사용한다고 하여도 수컷 웅이 아닌 ‘뛰어나다’는 뜻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우리가 영웅(英雄)이라고 할 때 웅자가 한웅(桓雄)천왕의 웅자와 동일하다는 것을 보면 임금 중에서도 재능․지력․용맹․담력이 아주 뛰어난 분이라는 뜻으로 한웅이라 불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치우천왕이 자기들의 시조인 황제헌원을 오래 동안 괴롭힌 인물이므로 그 위상을 격하시키기 위하여 이렇게 바꾸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 사용하는 군웅거리의 한자는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때 묻었던 치우천왕의 다섯 곳의 시신은 죽어서도 황제헌원이 부리는 귀신들을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그 결과 치우천왕의 다섯 곳의 시신은 귀신들이 치우라는 이름만 들어도 달아나던 옛날의 위용을 이어받아 지금도 귀신을 물리치는 신장으로서 추앙받는 것이다.
치우천왕은 중국에서도 후대까지 많은 사람들이 제를 올리고 존경하였건만 언제부터인가 도깨비 귀신으로 전락하여 귀신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무시무시한 귀신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선 치우천왕을 자기들의 전쟁의 조상신으로 모시기 시작하였다 그게 바로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이다. 황제와 신농, 그리고 치우가 중국의 조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전설로 도깨비 타령만 하고 있을 때 중국은 우리의 조상을 자기들의 조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너무나 안타깝고 억울하여 가슴을 칠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무지에서 우리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어쩔 수 없는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하루빨리 정부와 사학자들이 깨우쳐 잊어버린 우리의 상고사를 찾아 올 그날을 기다리며 다시 도깨비 이야기로 돌아오자.
우리의 도깨비는 인간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귀신을 쫓아주고, 착한 인간에게 복을 주는 도깨비로, 장난기 많은 도깨비로, 술 취한 사람이 밤새 도깨비와 씨름을 하다 새벽에 보니 빗자루와 씨름을 하였다는 이야기 등 민간생활에서 많이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렇게 귀신들이 치우천왕 즉 도깨비를 무서워하는 것을 이용하여 궁궐이나 사대부의 기와집, 심지어는 사찰의 기와지붕에서까지 집안에 들어오는 귀신의 침범을 막으려는 뜻으로 치우천왕의 형상인 도깨비 모습의 귀면와를 만들어 놓게 되었다. 그리고 불교에서도 자기네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치우천왕을 사천왕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절간에 들어오는 잡귀를 막는 수문장 역할을 맡기고 있다.
마을 어귀에 두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장승 또한 마을을 귀신들의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치우천왕의 형상인 도깨비를 변형시켜 만들어 낸 모습인 것이다.
우리도 중국이나 일본처럼 도깨비 자체를 귀신으로 본다면 이런 풍속이 생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치우천왕께서 살아생전에 공손 헌원의 귀신부대가 이름만 들어도 달아났던 그 용맹과 위엄으로 죽어서도 도깨비가 되어 후손들을 귀신으로부터 보호하고 돌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에서는 도깨비 그 자체가 귀신으로 취급을 받아 무서워하고 무시무시하게 그려지고 있으니 어찌 우리의 도깨비와 같겠는가.
우리 무교에서는 도깨비를 천신대감이라 하면서 굿의 한 거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무당들 신당에도 도깨비 대감, 혹은 도깨비 장군이라 하여 모시고 있는데 하나같이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모습으로 계신다. 그러나 이 도깨비가 우리의 치우천왕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좀 더 나은 모습으로 화분을 그려 모시게 될 것이다.
우리는 5월 5일 단옷날이 되면 천중부적을 만들어 집안에 붙여 귀신을 쫓는 데 사용하고 있다.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만든 부적문의 내용을 보면 「 5월 5일 천중지절에 위로는 하늘의 녹을 얻고, 아래로는 땅의 복을 받아 치우지신(蚩尤之神)의 구리머리, 쇠 이마, 붉은 입, 붉은 혀로 4백 4병이 일시에 없어져라 빨리빨리 시행하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보더라도 14대 자오지 천왕인 치우천왕이 4백 4병을 몰고 오는 악귀들을 쫓아내는 부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분류되고 있는 묘족(苗族)들은 지금도 치우천왕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한 그들이 축제를 할 때 입는 옷의 등 쪽에는 북두칠성을 수놓아져 있다. 그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동이족의 한 분파인 풍이족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서울 뚝섬에서 60년대까지 치우천왕을 모신 사당이 있어 매년 제를 드렸는데 그 제의 이름을 뚝제라고 하였다. 이 뚝제라는 이름은 치우의 깃발을 뚝기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생각한다. 이 뚝기는 조선시대까지 전쟁을 할 때 들고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그 사당도 없어져 버리고 그곳에 모신 치우천왕의 화분마저 행방이 묘연하니 치우천왕의 넋인 도깨비가 구천을 맴돌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깨비 같은 짓을 많이 시키는 모양이다.
2002년 월드컵 때 4강의 신화를 이룩했던 것은 선수들과 히딩크 감독의 공도 있지만 붉은 악마들의 힘 , 즉 도깨비인 치우천왕의 힘이 작용하였다고 본다.
치우천왕이 죽은 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붉은 옷을 입고 도깨비, 즉 치우천왕을 불러 준 적이 없기 때문에 치우의 감동이 힘으로 작용하여 우리 축구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하면 너무 억척일까?
그러나 2006년도 붉은 악마는 어쩐 일인지 붉은 색을 고집하지않기로 했단다. 치우를 대변하는 색은 붉은 색인데 갑자기 무슨 연유로 치우천왕, 즉 도깨비를 부르면서 치우의 힘을 모우자고 하면서 붉은 색을 포기하는 것은 우리 축구팀의 성적을 미리 암시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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