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검은 신이 주지만 재주는 배워야
무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내림굿을 하게 되면 신어머니와 신딸의 관계가 형성된다.
지금까지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온 삶을 접고 신의 제자로 새로운 세상에서 신의 딸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었다고 하여 신 어머니와 신딸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딸과 신어머니의 관계는 다분히 종속적인 관계로 겉으로는 부모 자식 간의 사이지만 그 내막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림굿을 하면 굿을 배우기 위하여 신어머니의 금전적인 욕심과 인간적인 모멸감 등 핍박과 고통을 받아가면서도 신어머니 집에서 가정부 아닌 가정부 생활을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년 세월을 넘게 지내는 신딸도 있다.
이렇게 어렵고 고달픈 환경 속에서 굿의 기능을 하나씩 배워 완전한 무당으로 거듭나, 굿을 완전하게 자신이 주관할 수 있을 때 신 어머니로 부터 독립하게 된다.
우리 무교는 오랜 세월 이렇게 신어머니와 신딸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굿의 맥을 이어 왔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하지 못하고 중간에 원수가 되어 헤어지는 신어머니와 신딸이 수없이 많이 있어 왔다.
그 당시에는 신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헤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 신어머니의 욕심으로 신딸에게 무리하게 금전을 요구하여 생기는 갈등과 인격적인 모멸감 등으로 헤어지곤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신어머니가 능력이나 재주가 떨어져 배울 것이 없으니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예전에는 신어머니와 신딸의 관계가 지속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굿의 기능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무속 판에서 써는 말로 "영검은 신이 주지만, 재주는 인간이 배워야 한다."라는 말이다.
그러니 죽으라고 신어머니 밑에서 굿을 배우려고 고생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한가? 신딸이 신어머니 뺨치는 세상이다.
신어머니가 조금 능력이 없어서, 자기에게 좀 섭섭하게 하는 것 같아서, 너무 돈을 밝혀서, 재주가 없어 배울 것이 없어서 등 별별 핑계를 대고 내림을 한지 석 달도 되지 않아 찢어지는 것이 요즘 시대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첫 째 내림굿할 때 많은 금전을 받았기 때문에 신어머니와 신딸이라는 끈끈한 유대가 형성되기 힘들다는 것과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의 발달로 각종 굿이나 문서 등을 신엄마가 아닌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도 있고 접근이 용이해 졌다는 것과 또 일을 맡으면 청배 다니는 무당들이 많기에 언제든지 돈만 주면 부를 수 있다는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신어머니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딸이 신어머니와 함께 가다보면 굿을 맡았을 때 금전적으로 부담이 된다. 또 이런 저런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망, 즉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것이 뛰고 싶은 욕심이 앞서서, 또 굿을 맡으면 청배 만신들을 불러서 필요한 부분을 요구하고 굿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어머니와 함께 할 때 보다 수익이 더 낫다는 짧은 생각들이 신어머니를 마냥 부담스럽기만 한 존재로 전락시키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아직도 신어머니라고 큰 소리 치고 대우 받으려고 하는 무교인이 있다면 크게 착각하는 것이다.
무교는 오랜 세월 시대에 따라 많이 변천되어 왔다. 그러면 다시 또 한 번 변해야 할 시기가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등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더 이상 신어머니와 신딸의 관계를 지속하기에 서로가 부담이 된다면, 또 신어머니와 신딸이라는 이 제도가 구습에 억매인 모순된 제도라면 과감하게 신딸과 신어머니라는 관계를 다시 정립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굿의 특성상 혼자 할 수 없기에 예전처럼 한 식구들이 똘똘 뭉쳐 다니면서 굿을 하면 좋지만, 지금은 그렇게 오랜 세월 묶여서 굿을 배우려는 제자나 신딸도 없고 하니 그냥 편하게 신 선생과 신 제자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지금 무교인들은 결속력도 예전과 같지 않고, 어제와 오늘 굿을 하는 만신들이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면 신어머니와 신딸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가만히 살펴보면 아무리 굿을 잘하는 선생들도 굿을 잘 내는 신제자 앞에서 눈치를 살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경관만신(당주 무당)이 굿을 잘하던 못하던 별 말이 없다. 그냥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경관만신의 눈치만 살피다 일당만 챙기고 가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무교인들이 굿을 배우려는 노력은 점점 줄어들게 되고, 굿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니 굿을 하는 능력과 기량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얼마가지 않아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굿을 제외하면 오랜 세월 우리 조상들이 지켜 온 많은 굿거리들의 원형들이 다 사라지고 말 것 같은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삼지창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국교는 기독교 (0) | 2008.06.24 |
---|---|
무속문화를 주도하는 굿당 문화 (0) | 2008.06.13 |
경제 최우선 가치가 국민 목숨 위태롭게 해 (0) | 2008.05.05 |
공인의식이 필요한 무교인 (0) | 2008.03.26 |
천부경을 국보 제1호로 지정하자. (0) | 2008.02.24 |